사회적 뇌가 발달하지 못한다
80년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여름방학, 겨울방학에는 시간표 작성과 여러 가지 방학숙제가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모든 숙제를 완료하여 학교에 제출했다. 물론 방학이 끝나갈 무렵에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숙제도 있었다. 그렇지만 활동 학습과제는 방학 중에 해야만 완료가 가능하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에 하려면 마무리하기가 어려웠다.
아버지는 3남 5녀 중 셋째다. 큰고모는 충남 당진에서 농사일을 하신다. 그곳은 할아버지 산소도 있고, 아버지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바로 그곳 충남 당진에서 여름 방학 활동 학습 과제를 하곤 했다. 아무래도 도심보다는 시골에서 자연을 더 많이 감상할 수 있고 관찰할 수 있어서 방학 숙제를 하기에는 괜찮은 조건이다. 하지만 나는 충남 당진 큰고모 댁을 가기 싫어했다. 가는 내내 차 안에서 지루하기도 하고, 심한 멀미도 했다. 중간에 삽교천 방조제에 정차하여 서해 바닷바람을 쐬긴 하지만, 멀미를 가라앉게 해주진 않았다. 충남 당진에 도착하면 부모님은 항상 XX 부동산에 들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가끔 장기도 두시며 시간을 보내셨다. 이런 시간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나 지루한 시간이었다. 친구도 없고 그렇다고 나가 놀 수도 없었다. 아는 동네도 아니기에 돌아다니기가 어려웠다.
힘들게 자동차로 이동하고 XX 부동산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큰고모 댁으로 이동하면 거의 저녁이 다 되어 도착했다. 며칠 동안 적응해야 함을 알리는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큰고모 댁에는 개와 고양이가 한 마리씩 있었다. 개는 반갑게 사람을 맞아주지만 고양이는 툇마루 밑에서 웅크리고 "야아 옹~" 할 뿐이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동생 가족을 위해 저녁식사를 준비하시지만 입맛에 썩 맞지 않았다. 배고픔에 어쩔 수 없이 입에 꾸역꾸역 밥과 반찬을 집어넣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일상적인 저녁시간이 흐르고 잠들 시간에 모기장이라는 물건을 처음 보았다. 에어컨이 없었던 시골집은 여름에 방문을 모두 열고 잠을 자기 때문에 모기장 안에서 잠들지 않으면 모기에 그대로 노출된다. 모기장 지퍼를 닫는 그 순간에도 모기들이 몇 마리 안으로 들어온다. 야이! 징그러운 것들. 밤새도록 모기가 배부를 때까지 모기의 먹잇감이 되어준다. 비좁고 불편한 잠자리와 더불어 자동차에서 멀미를 이겨내기 위해 잠든 시간이 있어서인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뒤척거리다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다리를 보니 퉁퉁 부어 있었다. 이놈의 모기들 다 어디 갔지!! 잘 살펴보면 모기장 그물에 붙어 있는 녀석이 보인다. 밤새도록 물린 복수를 해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다리가 원상태로 돌아오진 않지만 아픔에 대한 복수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실 방학 학습 과제를 핑계로 부모님이 저를 충남 당진은 큰고모 댁으로 데리고 가셨지만, 언제나 활동은 혼자 했다.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부터 홀로 개구리와 고추잠자리를 잡으러 돌아다녔다. 잠자리를 잡아서 넣을 통을 둘러메고 잠자리채를 들고 집을 나섰다. 더운 여름날 신나게 잡으러 돌아다녔다. 혼자서도 잘 놀았다. 처음에는 재미없고 시시하고 지루했다.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잠자리를 열심히 잡았다. 오전 내내 열심히 잠자리를 잡고 개구리와 개울가에서 놀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그날 점심에 특별히 서울에서 온 조카를 위해 삼계탕을 큰고모께서 해주셨다. 요리를 하려고 키우던 닭을 직접 잡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솥으로 들어가는 닭도 보았다. 닭 잡는 모습과 털을 쉽게 뽑기 위해 솥에서 닭을 푹 삶는 모습을 보고 그날 점심을 맛있게 먹지 못했다. 음식으로 나오기 전까지 방에 있을걸 후회했다. 그랬다면 맛있는 삼계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점심을 먹고 개울가로 가서 다시 개구리를 잡으며 시간을 보냈다. 한 마리, 두 마리 잡아 큰 양동이에 넣고 널빤지로 뚜껑 삼아 개구리를 가두었다. 아무 생각 없이 계속 개구리를 잡아 큰 양동이에 넣었다. 가끔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면 개구리들은 벗어나려고 뚜껑 가까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개구리들을 다시 바닥으로 밀어 넣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왠지 나 혼자 오기 싫은 곳에 와서 개구리에게 동질감을 느끼라고 강요한듯하다. 계속 개구리를 잡다 보니 나와 비슷한 처지의 개구리가 불쌍해졌다. 양동이에 물을 담아 개울가에 가서 개구리들을 놓아주었다.
"잘 가, 얘들아!! 다신 잡히지 마라!!"
한참을 개구리와 놀고 입맛에 맞지 않는 밥을 먹고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정말 많은 파리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큰고모가 파리채로 한 마리 잡는 모습을 보며 흥미가 갑자기 폭발했다. 방에 있는 파리를 다 잡아버리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놈의 완벽주의는 어린 시절부터 있었나 보다.
휘이. 팍! 한 마리, 두 마리, "이거 재밌는데!!"
천장에 붙어있는 파리는 조금 힘들었다. 그래서 파리를 퇴치하다가 텔레비전을 보며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잡기를 반복했다. 어떤 파리들은 정말 잡기가 어려웠다. 특히 천장의 파리는 점프를 통해 잡아야 하기에 체력 소비가 유달리 심했다. 모든 파리의 DNA는 비슷해야 하는 거 아닌가. 유독 몇 마리는 정말 눈치가 빠르다. 그만할까 하다가 다시 힘을 내어 잡아보았다. 결국 파리의 승리. 아무래도 환경에 금방 적응한 파리는 훌륭한 유전자를 후세에 남길 것이다. 진화론을 믿어 본다. 아마도 그 후에 생존한 파리들은 인간의 파리채에서 자유롭진 않더라도 생존 확률이 조금은 올라가지 않았을까 한다.
자연탐구생활은 시골에서 활동한 내용을 적었다. 잠자리와 개구리의 모습. 그리고 처음으로 닭을 잡아 삼계탕 하는 모습. 물론 파리 잡은 건 빼고. 아무 문제없이 며칠 지내는 모습을 본 부모님은 다음에 또 오자고 하셨다. 오기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싫다는 말도 못 하고 조용히 "네."라는 대답만 했다. 혼자 노는 거 싫은데 꾹 참고 지낸 모습에 이제는 속 시원히 말하고 싶다.
"혼자 고추잠자리, 개구리 잡는 거 싫다고!!"
놀이는 아이가 성장 과정에서 상호작용을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다. 아이는 놀이를 통해 정서적, 인지적 상호작용을 하면서 여러 가지 발달 과정을 겪는다. 특히 부모와 함께 하는 놀이를 통해 아이는 타인과 상호작용에 필요한 것을 배운다. 부모와 함께 하는 놀이에서 규칙, 존중, 배려, 공감을 습득한다. 어린 시절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회성은 중년의 나이에도 대인관계에서 적절하지 못한 행동으로 나타난다. 어려운 문제를 함께 해결해가는 과정을 습득하지 못하여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고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공감 부족의 어른으로 자란다. 따라서 놀이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아이의 발달 과정이다.
요즘은 부모가 힘들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디지털 기기를 주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뇌를 길러야 하는 시기에 테크놀로지에 의존하면 관계 속에서 길러지는 다양한 사회 적응력을 습득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성은 집단 안에서 서로의 행동으로 배워야 한다. 지식도 물론 중요하지만 경험은 꼭 필요하다.
아이와 놀아주는 그 시간은 아이와 부모 모두 즐거워야 한다. 열심히 놀아줘도 아이가 짜증을 낸다면 아이와 소통에 문제가 없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놀이의 주도권은 당연히 아이에게 있어야 한다. "우리 이거 한번 해보자."라는 부모의 말은 아이에게 부적절하다. 아이가 소꿉장난을 하고 싶어 하면 그걸 하면 된다. 공놀이처럼 몸으로 하는 신체놀이는 아이의 수준에 맞춰야 한다. 놀이 중에는 아이의 말, 감정, 행동에 반응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놀이를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며 능력도 발달할 수 있다.
나는 아이와 함께 놀며 어려서 얻지 못한 성취감을 같이 얻고 있다. 몸으로 하는 놀이를 하는 상황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아이의 행동에 대한 폭풍 칭찬과 아이의 아쉬운 감정을 존중하는 공감을 적절히 사용한다. 아이의 활짝 웃는 미소는 아이의 성취감뿐만 아니라 어릴 적 얻지 못한 나의 정서적 안정감을 회복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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