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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준원 Nov 29. 2019

책을 읽는 진짜 이유

며칠 전 아내와 아이가 같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며 디지털 시대에 어떤 교육을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공부하는 이유가 게임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학습지와 숙제, 그리고 독서를 해야 게임을 할 수 있는 교육 방침 때문이었다. 아이는 빨리 독서를 마무리 짓고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 활자에 집중하지 못하고 단어를 건너뛰며 읽거나 의미를 파악하지 않은 채로 독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독서를 끝내고 아내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주어, 목적어를 생략하고 설명했다. 당연히 '누가', '왜', '어디서'와 같은 질문이 연달아 나오니 아이는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답답해했고, 이런 아이의 모습에 아내도 참지 못하고 호통을 치기에 이르렀다.


거의 모든 문화가 디지털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마저 바뀌고 있습니다.
<다시 책으로> 23p


사실 독서는 그저 활자를 읽고 시간을 보낸다고 문해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아이에게 근거를 제시하며 정확한 설명이 필요했고, 생활 습관을 변경해야 했다.




[위기에 처한 깊이 읽기]

아이에게 두 가지 제안을 제시했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매일 40분씩 즐기는 게임을 과감히 없애고, 주말에도 디지털 이용 시간에 제한을 두는 방향이 첫 번째 제안이었다. 다른 하나는 기존처럼 지내는 제안이었지만, 엄마, 아빠의 관심은 줄이는 요소를 추가했다. 아이는 게임도 하고 싶고, 디지털 디톡스로 책을 읽지 못하여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되기도 싫다고 대답하며 선택을 망설였다. 아이에게 깊게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오래도록 설명해 주었다. 물론 대화가 지속될수록 아이는 지겨워하고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지만, 차분히 기다려주고 아이의 선택을 기다려주었다. 선택의 다른 말은 포기라는 말도 함께 덧붙였다.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인간은 모든 것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질 수도 없다. 아이는 한참을 고민하며 망설이다가 첫 번째 제안을 선택했다. 아이와 애착형성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던 결과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선택 이후에 주말 일정을 같이 논의하며 완성했다.


아이의 선택을 지지하며, 매일 퇴근 후에 아이가 그날 읽었던 책의 내용을 듣는 시간을 보냈다. 책을 그동안 활자만 읽었던 아이는 책의 내용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다시 책으로>에 설명되어 있는 깊이 읽기에 대한 내용을 아이에게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파악해보고, 자신의 생각을 더하는 읽기 방식 말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텍스트의 기반인 여러 겹의 의미층으로 진입해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이미지의 힘입니다.
<다시 책으로> 78p


최근에 어려운 주제와 생소한 분야의 책을 읽는 나도 저자의 의도를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소설과 무협지는 텍스트가 하나의 이미지로 형성되어 이해도가 상당히 빠르다. 이미지가 생성되는 그 순간 문장은 명료해지며 상상력은 더욱 활성화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다음 문장으로 이어지고 하나의 장면이 다시 연결된다. 아이도 이러한 심리적 표상이 생기도록 독서 훈련을 하려고 한다. 이러한 독서 훈련을 통해 타인의 관점과 느낌을 가져야만 깊이 읽기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책으로>에서는 이러한 관점을 취하는 상태를 '옮겨가기'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또 다른 단어를 꼽자면 공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공감은 타인의 삶을 느껴보며 자신의 삶에도 강력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만든다. 마음의 풍성함은 신체 건강으로 이어져 활력 넘치는 삶을 살도록 이끈다. 간접 경험도 중요하지만, 직접경험이 감정을 풍부하게 해주며 이 또한, 건강한 정신을 갖도록 도와준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토론에서도 옮겨가기가 가능하다. 찬반 토론에서 찬성 입장에서 주장하다가 반대 입장에서 다시 주장하는 의식을 통해 좌절과 절망이 무엇인지를 깊게 깨달을 수 있다. 이러한 경험과 책으로부터 얻는 지식은 자아를 풍성하게 형성한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는 독서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독서를 통해 다양한 내면의 감정을 이해하며 '자아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강화하게 된다. 여기에 배경지식이 더욱 풍부해지면 당연하게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명확해진다. 가치관의 정립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무릎에서 컴퓨터로..]

하지만 현대 사회는 디지털 매체로 깊은 사색과 독서 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주의를 사로잡는 보상 체계 시스템에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집착한다. 그리고 아이마다 개별적인 특성이 다르므로 일반적인 형식이 모든 아이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맥락을 파악해야 아이에게 적절한 교육 방침을 적용할 수 있다. 아이에게 시간을 정해주고 스스로 독서하도록 장려했을 때에는 전혀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태로 방치하면 책은 읽었는데 기억에 남지 않아 오히려 독서를 소홀히 하여 문해력의 향상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눈으로 훑어보는 아이에게 낭독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물론 아이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한 페이지를 읽는 시간을 측정해보며 눈으로 읽는 독서 습관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확인했다. 낭독하기 전과 후는 시간 차이가 유의미하게 컸다. 건너뛰며 읽기가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아이는 낭독을 한다.


읽기는 속도가 아니라 의미가 중요합니다. 많은 성인 독자들처럼 훑어보기나 단어 찍기 또는 지그재그식으로 읽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다시 책으로> 264p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도 니콜라스 카가 언급했듯이 디지털 매체로 인해 사람들은 중요한 키워드만 찾으려고 한다.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이런 읽기 방식은 치명적이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읽고 분별해내는 문해력이 중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지 못하고 대량의 정보 앞에 스킵과 요약된 자료를 읽고 있다.이러한 생활 패턴이 아이들에게 대물림된다면 인공지능과 차별화할 수 없는 인간으로 육성된다. 우리에게는 단어와 문장의 '의미'가 중요하다.




[책으로 돌아오세요]

그렇다면 우리는 단지 인공지능과 차별화하기 위해 또는 남들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독서를 해야만 할까? <다시 책으로>에서는 3가지 '좋은 독자'를 언급한다. 정보를 모으고 지식을 얻는 것이 그 첫 번째이고, 즐거움을 위한 독서가 두 번째. 관조적 독서의 삶이 마지막 요소이다.


정보를 얻어 지식을 쌓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며 희로애락을 독서를 통해 얻는 즐거움을 맛보는 게 일반적이다. 저자가 '좋은 독자'라 부르는 마지막 세 번째 요소가 우리가 책을 읽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 한다. '관조'라는 단어의 의미는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조적 삶은 정보를 지식으로,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삶을 뜻한다.


지혜는 읽는 삶의 궁극적인 표현입니다.
<다시 책으로> 300p


아이의 삶도 독서를 통해 풍부한 지혜를 습득하여 인생을 살아갔으면 한다. 그리고 남은 나의 삶도 관조적 독서로 보내려고 다짐해 본다. 그러기 위해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읽고, 문장을 음미하며 삶에 적용해보려고 의식적 노력을 해본다.





참고 도서 : <다시 책으로> by 매리언 울프

#씽큐베이션 #디지털시대와아날로그감성 #다시책으로 #체인지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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