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는 크게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등성이를 이루는 지붕이나 산 따위의 꼭대기. 둘째는 집채 안에 바닥과 사이를 띄우고 깐 널빤지. 마지막으로 셋째는 어떤 사물의 첫째 또는 어떤 일의 기준을 말한다.
학창 시절부터 불과 얼마 전까지 나는 세 번째 마루인 일등이 되기를 쫓았다. 어디서든 일등이 되고 싶다는 과한 욕심으로 살았다. 승부욕과 인정욕구까지 높았기에 그 일등의 목표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일등의 자리는 대부분 하나였기에 성취감보다는 좌절감을 자주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가끔이나마 그 자리에 오를 때 느낄 수 있었던 도파민 덕분이었다. 도파민은 실패에도 멈추지 않는 동력을 제공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면 경쟁의 판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일등은 존재했다. 남편, 아빠, 아들 그리고 직장동료 등 다양하게 주어지는 역할 속에서 선두에 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아니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은 수없이 읽은 자기계발서 덕분에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믿기 어렵겠지만, 인생을 게임처럼 생각하면 또 그렇게 느껴지기도 한다.
변화의 시작은 가벼운 독서 모임이었다. 책을 읽기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운명처럼 찾아온 책이 <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이다. 프랭클린은 1727년, 21살의 나이로 '준토(Junto)'라는 모임을 만든다. 단순한 독서 모임보다는 서로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지식인 클럽이었다. 그들은 매주 모였으며, 다양한 책을 읽었고 또 직접 쓴 수필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었다. 대화의 주제도 철학부터 과학, 정치까지 어느 하나에 매몰되지 않는 열린 집단이었다.
프랭클린 자서전을 읽을 때의 내 나이는 27살이었는데,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던 시기였다. 이제 와서 다시 그때를 돌아보니 독서도 일등이 되기 위한 욕심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읽기에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싶었다는 것이다. 첫 독서 모임의 이름은 '구서회'였는데, 조선시대 유명한 간서치인 이덕무의 책을 다루는 아홉 가지 방법에서 따온 이름이다. 구서는 책을 읽고, 보고, 간직하고, 필사하고, 바로잡고, 비평하고, 쓰고, 빌리고, 바람에 쏘이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시작한 독서와 독서 모임이 조금씩 나를 변화시켰다.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해주었고, 더 큰 세상과 연결해 주었다. 일등을 쫓아 달리던 마루에서 넓은 마루로 나올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책과 독서 모임 그리고 사람의 소중함을 배웠다.
그 작은 시작이 오늘의 나를 여기 마루로 이끌었다. 내가 꿈꾸는 것은 넓은 마루에 모여 앉아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나누는 판을 만드는 것이다. 양자역학에서 시작해 역사, 문학 심지어 꿈 이야기까지. 그 판을 제대로 깔려면 스스로가 먼저 마루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항상 열려 있으며, 경청할 자세가 되어 있고, 자기 생각을 담백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마루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