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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도구_걷기

꾸준함을 기르고 싶다면 걷기부터.

by 송곳독서

(일주일에 6일 넘게 만보 이상 걷는 분들이라면 이 글을 읽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저보다 더 잘 걷고 계시니까요.)


시간이 날 때마다 아들에게 최면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3년 후에는 아빠랑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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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마다 아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걷기는 싫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왜 걷기를 싫어할까요. 그 이유를 걸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동시에 제 어린 시절을 기억하면서요.


‘나는 초등학생 때 걷기를 좋아했던가?’


역시 아니었습니다. 평지라면 일단 냅다 뛰어다녔고, 친구들과 다닐 때는 신나서 더 뛰었고, 가능하면 걷기보다는 달리기를 더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과 어른들에게는 뛰지 말라는 소리는 수없이 들었죠.


그럼 언제부터 걷기가 좋아졌을까요. 생각해 보니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이동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걷는 것이 아닌 그저 걷기만을 위한 행위로써는 말이죠. 그 사실을 깨닫고 혼자서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왜 그때는 하지 않았을까?





모든 것은 다 철이 있는 거야. 철이 드는 때도 있고, 또 지날 때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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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시간이라도 모두 길이가 달라. 아니, 시간의 길이는 똑같은데 마음속에서 시간을 길게 느끼기도 하고 짧게 느끼기도 하지. 그 시간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바로 '철'이라는 말로 표현했던 거야. 그러니까 '철이 든다'는 것은 바로 시간을 느끼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해.
<이어령의 말 2>_12쪽


아마도 느끼는 ‘시간’의 차이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삶의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느꼈습니다. 학생 때는 공부를 하며 시간의 지루함 느끼고, 군생활을 하면서는 찰나의 순간순간이 길게만 느껴졌죠. 사회 초년생 때도 다가오지 않는 다음 꿈을 생각하면서 그 순간이 빠르게 오길 바랐습니다.


이렇게 현실이 느리다는 생각에 틈만 나면 그렇게 뛰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어령 교수님의 말처럼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꿈 그리고 낭만이 있었기에 더 열심히 뛰었겠죠. 뛰는 순간만은 오로지 나만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30대 후반이 되면서 시간이 천천히 흐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느리게 흐를 수 있도록 시도했습니다. 제가 양자역학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런 고민의 결과이지 않을까 싶네요.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사물의 변화에 맞춰 우리의 상황을 규정하는 방식이자 날짜의 변화와 계산에 맞춰 우리 자신을 위치시키는 방식이므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 것이다. 시간은 변화의 척도이다. 아무 변화도 없으면 시간도 없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_카를로 로벨리, 72족


그렇다면 자기계발 도구들에서 걷기가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걷기는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들에게 꾸준함과 생각시간을 던져주기 때문입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나의 자기계발은 걷기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고 말할 수도 있을 듯싶어요.


처음에는 미라클모닝을 하면서 열심히 뛰어다녔고, 뛰는 동안에는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생각을 하기 위해서 달리기에서 걷기로 변경했고, 그 시간만큼은 오롯이 나를 생각하며 걸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다른 생각을 할 때도 있었지만, 걷다 보면 삶의 궤도를 찾아가는 내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죠.




자연스럽게 언제 걸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하시겠죠. 지금은 아침 점심 저녁 할 것 없이 걸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걸으면 좋겠습니다. 혼자서 갈 때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도 교통편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걸어서 이동하는 것을 목표로 하죠. 교통비도 아끼고 건강도 챙기면서 생각할 시간까지 주며 여행하는 느낌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일단은 그냥 걷는 게 목표입니다.


걸으면서 음악을 들어도 좋고, 강연을 듣는 것도 좋으며, 아무것도 듣지 않고 주변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다가 아무 생각도 없이 하릴없이 걷는 순간이 좋아지는 때가 찾아옵니다. 조급함을 내려놓는 순간에 말이죠.


요즘 걷기를 즐기게 됐다. 걸으면서 의식을 내 몸에 집중시켜 본다. 피곤하지 않게 먼 거리를 걸으려면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합리적인 보행법은? 팔은 흔드는 게 좋을까? 체중을 약간 앞에 실으면 걸음걸이가 자연스러워지고 다리의 피로가 덜하다. 등등.
이런 몸과의 대화가 나의 감성을 원형으로 돌아가게 해 준다. 내 머리에 어느새 쌓여 있던 불필요한 정보를 제거해 준다는 것을 깨닫고 기뻐졌다.
_이노우에 다케히코(슬램덩크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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