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차]5.나보다 나은 동료를 갖는다는 것.
누군가에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
영업소에 있을 때는, 서로 담당하는 병원들이 겹치지 않은 상태에서 각자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우선 과제였으므로 같은 영업소 이긴 하지만 상대방이 그렇게 크게 견제되는 느낌은 없었다.
물론 영업소에 오래 있는 과, 차장급의 경우에는 승진을 앞두고 소 내에 다른 소원이 경쟁자가 될 수 있으므로 다른 얘기일 수 있지만, 적어도 1년 차 2년 차를 영업소에서 보낸 나는 누군가에게 경쟁 심리를 느낄 이유도, 겨를도 없었다.
마케팅 부서에 발령을 받으면서는 조금 달랐다.
나는 2년을 영업부에 있다가 마케팅부서로 발령을 받았는데, 나와 같은 팀에 입사한 지 1년 만에 마케팅부로 발령을 받은 후배가 한 명 있었다.
S대 약대 출신 신입사원의 경우에는 영업소에 1년 정도 있다가 다른 부서로 이동하기 마련인데, 그 후배는 S대 약대도, 다른 약대 출신도 아니었다.
하지만 특별했다.
그 후배는 입사 전 회계사로 일하다 온 나보다 4살 많은 후배였으며, 알고 보니 아버지가 꽤나 유명한 제약회사를 운영하고 계셨다.
내가 이 후배에게 경계심을 가진 이유는 이렇듯 후배의 특별한 배경 때문은 아니었다.
'회계사'가 얼마나 되기 어려운지 알기 때문에, 후배가 명석하다는 것은 이미 증명이 된 것이고, 나름 본인의 전문 분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배우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과정을 겪어낸 다는 것은 존경할만한 부분이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열심히 살아온 그 후배는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마저 모난 곳 없이 없었으며, 때로는 상대가 더 편안할 수 있도록 가볍게 그러나 중요한 순간에는 본인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할 줄 아는 난 사람이었다.
못난 나는 그래서 초반에 후배를 경계했다.
나를 위한 변명을 해보자면, 나는 '한국식 경쟁'에 너무나 익숙한 사람이었다. 교실 벽면 뒤에 출석부 이름 순으로 만들어진 칭찬 게시판에 누구보다 더 많이 '칭찬 스티커'를 받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던 초등학교 1학년을 시작으로 성적으로 더욱 극명하게 나래비를 세운 중학교를 지나, 특목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내 옆에 있는 친구들은 '친구'이자 동시에 '경쟁자'였다.
아무리 나와 친하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일지라도, 우리 앞에는 등수가 매겨졌고 내 친구보다 높은 등수와 점수를 받아야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상황들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은연중에 나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경쟁자로 바라보는 습관이 들어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 옹졸한 자세였다.
너무나 감사히도, 이 후배는 내가 나의 나쁜 습관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후배는 나보다 너무나 나은 사람이었다.
나와 후배는 서로 다른 제품을 담당하고 있었고, 같은 영업부와 함께 일을 했기 때문에 나는 항상
'어떻게 하면 내 제품을, 영업부가 더 많이 팔 수 있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후배는 좀 더 넓은 시야와 식견으로
'팀이 같이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먼저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본인을 모두 희생하는 바보는 아니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본인의 잇속도 챙기지만, 시작은 항상 '팀'이었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그가 본인의 이익을 위한 것 같이 보이는 순간에도, 경계를 허물고 그의 말을 따르게 되는 확률이 높았다.
자칫 이기적 이어 보일 수 있는 나의 발언에도, 그 자리에서 맞서지 않고 한 발 물러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가 한 발 물러날 때, 나는 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후배와 함께 팀 생활을 한 기간은 3년 남짓이었지만, 나는 팀장보다 후배를 통해 더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
함께 일한 첫 반년동안 나는 못난 모습을 많이도 보였다. 후배라고 하지만 나보다 사회생활을 2년 정도하고 들어왔으니 어쩌면 사수의 관계였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나 나에게 깍듯이 대했으며, 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되 모범을 보이며, 내가 그를 닮고 싶게 만들었다.
그다음 해에 우리는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손 발을 맞춰 같이 일하고, 나는 처음으로 '동료애'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함께 준비한 프로젝트로 회사에서 큰 상을 받게 되었을 때도, 그와 함께 이 여정을 할 수 있어서, 내가 그를 통해 더 성장한 것 같아 감사했다.
닮고 싶은 마음에서, 감사한 마음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는 경영 수업을 위해 해외 MBA 입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함께 한 마지막 한 해에 그는 나에게 MBA 추천 서류를 부탁했다. 나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너무나 기뻤다. 개인의 역량은 차치하고, 함께 일한 시간 동안 그가 얼마나 협업과 팀을 이끄는(리더는 아니지만) 역량이 뛰어난지, 내가 어떤 것들을 그에게 배웠는지를 정말 정성을 다해 적어 주었다.
그와 함께 한 시간 이후,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지만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내가 함께 일하는 사람을 경계하는 태도보다 나보다 나은 점을 먼저 발견하려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음속 나의 사회생활 첫 사수로 여기고 있는 그에게 직접 전한 적은 없지만 꼭 전해주고 싶다.
그때의 어리고 많이 부족했던 나를 선배처럼 가르치고 보듬어줘서, 함께 일하는 법을 알려줘서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