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나의 스무 살 그즈음
이제 겨우 서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 그즈음에, 그 당시만 해도 나는 내가 서른 살이 되어 결혼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를 것이다. 내 계획은 대학을 졸업한 뒤 회사에 취직을 하고 대리 정도에까지만 간신히 미래의 내 모습 그려낼 수 있었지만 서른 살 넘어까지는 무리였다. 그러니깐 서른 살 그 이후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사촌동생의 결혼식에 가는 길이다. 엄마의 여동생, 이모의 첫째 딸 D는 매제를 치의학전문대학원에서 만났고 매제가 부산에서 큰 부자라는 이야기로 한 때 엄마는 나를 위협했다고 나는 느꼈다. 엄마가 내 결혼을 부추긴 것도 사촌동생의 결혼 소식이 힘을 보탰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은 비교적 덜한 것 같은데, 지방만 하더라도 결혼하는 비율이 더 높아 어른들의 부추김도 힘이 실린다.
스물여덟에 결혼에 대한 위기감을 분명히 느꼈다. 주변에 괜찮은 사람이 없는 것 같아 불안했다. 소모적인 연애를 하는 것에 지치기도 했다. 스무 살 그즈음으로 돌아가겠냐고 물어본다면, 아니 나는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 1년 단위의 연애를 반복하며 스스로 혼란스러웠던 그때가 어지럽다. 오히려 연애를 하지 않았던 시기가 더 안정적이었다. 그렇다고 싸움이 잦았던 연애를 한 것도 아닌데, 그다지도 흔들렸던 건 스무 살 즈음의 나는 아직 너무 여렸기 때문이다. 상처를 받아도 제대로 소화할 수 없었던 연약한 마음은 조그만 일에도 쉽게 뭉개졌다. 단단한 척했지만 속은 젤리처럼 말랑해서 뭐가 맞는 건지도 몰라 어리둥절했던 나의 스무 살이었다.
연애의 경험으로 지금의 내가 성숙해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연애를 많이 해봐야 한다는 말에 지극히 동의하지 않는다. 연애에 앞서 나의 가족과 친구들과의 소중한 관계가 견고해야 한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법 혹은 사랑받는 법을 탐구하기보다 먼저 나를 사랑하는 법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했다. 유튜브와 SNS, 자기 계발서에 흔히 나오는 이야기들처럼 ‘30대가 되어서 알 게 된 20대에 해야 할 것’, ‘20대 때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과 같은 주제는 정말이지 무슨 소용인가 싶다. 그때의 나는 도무지 공감할 수 없지 않는가. 우리는 아는 게 별로 없지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신이 아는 몇 안 되는 지식을 바탕으로 일관된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그때로 돌아간다면…‘이라는 후회라던지 나보다 고작 몇 살 어린 분들께 훈수를 두는 어리석음은 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나를 스쳐 지나간 연애라는 사랑 비슷한 경험들이 나의 어린 시간들이 기억 속에 묻히는 게 조금 아쉬울 뿐이다. 기억하고 또 간직하려고 적는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에 하나로. 커피와 사과타르트를 주문하고 남몰래 둘만의 대화에 빠져들었던 봄날의 낮이라던지, 밤공기를 가슴 가득 들이켜고 알맞은 언어와 적절한 표현을 찾아 고백하려던 가을밤 이라던지.
나를 울린 남자들 그리고 내가 울렸던 남자들, 당시에는 원망했고 또 미안했지만 그래서 결국 이만큼 좋은 사랑이 곁에 왔다. 그 사랑은 내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원한 것이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 그 소중한 사랑이 포기되거나 사라질 일이 없는 건 앞으로 남겨진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