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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경 Sep 14. 2024

결혼을 앞두고 읽는 양귀자의 장편소설 <모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는 소설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 풍요과 빈곤. 이런 식의 서로 상반되는 단어들의 조합. 하나의 개념어에 필연적으로 잇따르는 반대어, 거기엔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은 1998년에 나온 소설로 26년이 지난 2024년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에 올라 두고두고 읽히는 소설이다. 책은 주인공 안진진의 부르짖음과 함께 시작된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자신의 생을 유심히 관찰하며 되어 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라는 결심과 함께 시작되는 소설의 전반부에는 인생은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라 말한다. 그리고 일란성 쌍둥이라는 어머니와 이모의 너무나도 대조적인 삶과 김장우와 나영규 사이에서 일어나는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소설 끝으로 가게 되면 외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라고. 실수는 되풀이되며, 그것이 인생이라 말한다.


남편의 폭력과 가난, 사고를 일으키는 아들까지 기구한 팔자로 쉴 날이 없는 어머니의 삶을 불행으로 치부하기엔 그 반대에 있는 이모의 불행은 더 견딜 수 없는 무엇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게도 도무지 평탄하다 못해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한 무덤 같은 삶을 살았다는 이모의 편지는 삶에 대한 영성을 일으킨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이 읽힌다.


마음에 들지 않는, 화가 나는 나아가 견딜 수 있는 일일지언정 그 뒷면을 들추어보자. 행복에 겨워 눈물이 나는 일일지언정 뒷면에서 우리가 찾지 못한 결핍을 찾아보자. 나의 보통의 삶에 표면과 이면에도 모순이 가득하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원하던 일을 성실히 하고 있지만 이면에는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방전된 주말의 내가 있다. 정신과 육체 모두 요가 강사를 꿈꾸지만 늘지 않는 아사나에 직장인으로서의 삶 또한 나쁘지 않다며 몽상하는 내가 있다. 안진진의 어머니처럼 아침마다 건전지를 갈아 끼운 기계인간처럼 싱싱하게 일어나 온종일 뛰어다니다 저녁이면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일과는 누군가에게는 힘듬이나 누군가에게는 감사다. 삶은 안진진의 어머니처럼 굳세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넘어질 순 있으나 입술 한 번 깨물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인생이 단조로워 불행하다면 활력 있는 도전을 해야 하고, 지나친 풍요로움에 화를 입는다면 결핍을 반추해야 한다. 그저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 인생이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세상과 우호적으로 지내기 몹시 힘들었던 올여름은 이 계절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만으로도 벅찼다. 추석이 지나고 에어컨 리모컨을 다시 서랍 속으로 넣을 수 있는 계절이 오면 상쾌한 마음으로 조금 더 한 발자국 나아가야지. 내 삶을 사랑하고 요가하는 마음으로 탐구하겠다. 푸르른 초가을 일몰의 시간에 읽는 <모순>은 삶에 대한 탐구 그리고 묵묵히도 아름다운 문장들로 무겁지만 가벼웠다. 시간이 지나 천천히 또 아주 천천히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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