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티브 -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의 섬세함
예민함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자신을 위해 예민한 사람, 다른 이를 위해서만 부러 예민해지는 사람. 타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오직 기민한 배려를 위해 촉수를 세우는 이는 얼마나 즐겁고 계획적인 인생을 살 수 있을지.
누구나 예민함 정도 차이일 뿐, 우리는 모두 ‘센서티브한 사람’이지 않나. 공공장소에서의 음악 볼륨, 사무실의 습도, 향기 나는 화장실, 분홍색 베갯잇의 촉감 등등 남들에게는 사소한 일말의 것들이 내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게 한다. 타인에게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이라 인식되고 싶지 않아 참고 견디는 일이 종종 일어나 내 안에 분노는 꿈틀거리고 이내 슬픔으로 바뀐다. 책을 읽다 보면 남들보다 민감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어 책 한 권이 나를 어르고 달래는 자장가 같다.
민감한 사람은 대개 자신에 대한 기준점이 높고 자존감이 낮은 편이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취약점을 가졌다. 요가를 통한 명상에서 마주하는 내면아이같이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하는 그 아이를 포근하게 안아주는 일은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경험이다. 오랜 시간 끊임없이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인정할 줄 모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나에게 휴식과 평안을 주는 그 일은 매일 같이 해줘야 한다. 나의 특별히 예민한 신경 시스템은 숨어 있는 뉘앙스를 남들보다 더 많이 인식하고 더 깊은 곳에 입력이 되어 활발한 내면세계를 창조하는 일에는 퍽 도움이 되지만, 그만큼 나의 ‘하드 드라이브(hard drive)’는 빠른 속도로 채워져 그 결과 과도한 자극으로 인해 금세 탈진하게 된다.
바깥에서는 억지로 그 자리를 지키고 남들이 하는 그 이야기가 재미가 없을지 언정 침착함을 유지하고 심지어 즐기는 척을 해보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어 절실히 나의 따듯한 집에 혼자 있고 싶다고 느낄 것이다. 최근에는 예민해진 나의 신경을 잠재우는 소일거리로 반찬 만들기를 택했다. 문득 토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기분이 좋지 않아 남자친구의 연락을 뒤로한 채, 한 시간 동안 당근라페와 감자샐러드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현대사회의 인간은 단 15분도 집중하지 못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 시간 동안 온전히 정성스러운 반찬 만들기에 집중하는 나의 머릿속은 잡념을 가라앉히고 아주 조그마한 일이지만 성취감과 행복감을 선물한다. 그렇게 내 기분을 긍정적으로 바꿔준 다음 소중한 사람들과 다시 연락에 닿고는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남들이 기대하는 모습에 맞추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고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새롭고 긍정적인 경험을 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나의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더 좋아한다. 가령, 일할 땐 똑똑한 체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영 못 미더운 길치라던지. 여우 같은 여왕벌 언니들에게 속아 꼽을 당해 놓고 그런지도 모르는 멍청순진한 모습이라던지. 그래도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진정한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갈 용기를 얻고, 또 그들과 더 오랜 시간 즐겁게 어울리면서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 있게 된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데, 그 시간은 그날의 기분과 날씨에 따라 종종 변화한다. 자연을 즐긴다던지, 조용히 그냥 정말 앉아있다던지, 햇살을 맞으며 달리기를 하는 것, 허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그림 그리기에 빠져드는 것, 나의 짝꿍과 보내는 즐거운 시간은 민감한 나를 행복하고 또 풍요롭게 해 준다.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아는 것만큼 행복하기 쉬워지는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제일은 내게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을 정비하는 이 무위의 시간으로 모든 에너지를 내부로 집중시키고, 이미 받아들인 인풋이 내면에서 분류되는 작업을 통해 나중에는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찬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10월에는 공휴일이 제법 많아 혼자 쉬는 시간을 양껏 누릴 수 있어 행복했다. 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방법을 섬세하게 배우고선, 대단하지 않은 나의 노력들을 열거하며 자신의 노력을 칭찬해 주는 한 사람 바로 내가 되기로 했다. 차곡차곡 “나 잘했어” 격려해 주는 일로 나의 민감함은 내 내면세계를 풍부하게 만드는 장비가 될 것이야. 그러니 예민한 자들은 자기 자신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스스로를 대면하면 좋겠다. 민감함은 결함이 아니며, 그냥 자신의 일부라 그대로 인정하고 긍정적인 관점으로 솔직하게 받아들여 보자. 누구나 원기 왕성, 외향적, 에너지가 넘치고,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고, 개방된 사무실에서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건 아니므로. 내게 기대하는 그 일들을 왜 내가 할 수 없는지 이해하고 남들과 스스로에게 변명하지 말자.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 과도한 자극을 받아서 휴식이 필요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