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22살에 CC로 시작한 연애는 어느덧 3000일을 넘었고, 나는 30살이 되었다. 내 20대를 한 사람과 온전히 함께 보내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랍기도 하고 새삼스럽기도 하다.
한 사람과 8년쯤 만났다고 하면 다들 자연스럽게 결혼 얘기로 넘어간다. 그리곤 자신들의 연애사를 나에게 털어놓는다. 아마 나를 연애고수쯤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나는 여전히 연애가, 인간관계가 어렵다. 3년 차에, 5년 차에 하던 고민을 여전히 한다. 나는 왜 이 사람을 좋아하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하지만 이 관계에서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 하나 존재한다.
오래 함께 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별개의 인격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연애 5년 차에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책을 읽고 쓴 독후감 일부를 가지고 왔다. 조금 낯간지럽지만 그때의 고민과 감정이 잘 담겨있어 좋아하는 글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외모가 100% 내 취향도 아니고 머릿속 생각들이나 어떤 책을 읽고 난 소감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것도 잘 안된다.
어떤 깨달음을 얻거나 무릎을 탁 치게 되어 신나게 얘기하면 그의 반응에 힘이 탁 풀린다.
나와 지향점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나의 말들이 따분하니?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바꾸고 싶다.
불가능한 일이지. 그게 한계이다.
연애 초부터 늘 느껴왔다. 이 사람은 나랑 참 다르구나, 달라서 좋았고 달라서 싫었다. 싫을 땐 바꾸고 싶었고 좋을 땐 지키고 싶었다.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마음에 나는 참 변덕스럽게 행동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런 고민이 한 점도 없는 듯, 소나무 같았다. 때론 답답하기도 했다. 이 사람은 왜 나에 대해 고민하지 않지? 왜 내 마음을 듣고도 그냥 웃고 마는 거지? 권태로웠다. 늘 나만 머리 싸매는 것 같아서.
고민하기 싫었다면 그냥 헤어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나도 참 나다. 이 사람은 왜 그런지 근본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 이해하고 싶었다. 어떤 마음인지 꼭 알고 싶었다. 이런저런 심리테스트, mbti, 성격검사…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았다.
그럴수록 뚜렷해지는 것은 이 사람과 나는 정반대에 위치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히려 섞일 수 없다는 것을, 환상의 짝꿍은 될 수 없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인정한 그 순간부터 권태로움과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기대를 버린 것이고 포기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르다.
그저 인정한 것이다. 우리는 별개의 인격체라는 것을.
그 인정을 통해 나는 상대방의 실체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그제야 보였다. 정반대에 위치한 우리가 만나기 위해서는 서로 노력해서 가운데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 ‘저 사람은 오지도 않고 나만 가네’, 그건 내 착각이었다. 그저 덤덤할 뿐 나 만큼이나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성격, 특징,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가까운 사이일수록, 특별한 사이일수록 이 당연한 사실을 예외처리하곤 한다. 가족이니까, 연인이니까, 그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나 또한 그래왔고, 하지만 이것은 상대방의 정체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행위일 수 있다.
관계의 이름을 떠나서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싶다면 첫 번째 단계는 우리가 별개의 인격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그 어떤 고민도 필요 없을 것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나와 다른 너라서, 무엇 하나 맞는게 없는 너라서,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