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는 당신을 같은 자리에서 기다린다

2022년 봄, 장국영을 그리워하며

by HKids
00년생의 시원, 98년생인 나은, 아림, 96년생인 수진. 장국영이 누군지 모르는 것이 당연한 Z세대들이지만, 이들은 현재 장국영을 그리워하는 중이다. 4월만 되면 마음이 시큰해져 오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요즘, 장국영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기억해보고자 한다.




장국영을 알게 된 계기와 좋아하게 된 이유


수진 : 장국영을 처음 알게 된 건 영화 <패왕별희>였다. 패왕별희가 어떤 영화인지도 몰랐는데, 그때 당시 영화관에 상영하는 영화가 많지 않아 반강제적으로 보게 됐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보게 된 영화가, 끝난 이후에 엄청난 여운을 남겼고, 한 달 동안 그 영화에 빠져 살았다. 영화에 관한 정보를 계속해서 찾아보거나 중국 역사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후 자연스레 홍콩 영화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그중에서 장국영이라는 배우의 연기가, 눈빛이, 아련함이 마음 한 켠을 자극해 좋아하게 됐다. <아비정전>, <춘광사설>, <영웅본색 1, 2>, <동사서독>, <연지구>까지… 앞으로 봐야 할 많은 영화가 남았다는 것을 알지만, 언젠가는 아쉬워할 미래를 피해 아껴두는 중이다.


나은 : 아마 많은 Z세대가 ‘패왕별희’ 재개봉을 통해 장국영을 접했을 테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유명한 작품이라고 하니 별생각 없이 봤던 <패왕별희>는 나에게 격동의 중국사와 장국영을 남겼다. 장국영은 ‘우희’와 ‘청데이’를 통해 이리저리 숨 가쁘게 바뀌는 중국의 현실 앞에서 개인이 어떻게 처절하게 무너지는지 세세히 보여줬다. 절제하고 감추다가도 패왕의 배신 앞에서 모든 것을 터뜨리는 그의 연기는 홍콩 배우의 매력을 나에게 호소하기 충분했다. 이후 장국영의 필모그래피를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캐릭터에 반해 더 젖어들었다.


아림 : 장국영이라는 존재를 인지하게 된 계기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극 중 김영민 역이던 ‘장국영’ 덕분에 <아비정전>의 맘보 춤이 꽤나 이슈였고, 왜일까 궁금해서 <아비정전>을 봤지만 그 당시만 해도 답을 찾진 못 했다. 그러다 <패왕별희>가 재개봉을 했고, 그제야 장국영이 대단한 배우임을 감각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그에게 홀딱 반한 적은 없었다. 다만 <영웅본색>, <풍월>, <해피투게더>, <성월동화>, <상해탄>, <야반가성>을 거쳐 오며 어느새 내가 그의 흔적을 열심히 좇고 있었으며 장국영이 가진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을 뿐이다. 사실 이렇게 말은 해도 나는 항상 장국영의 사진을 볼 때마다 헉, 하고 놀란다. 그에게서 풍기는 미적 아름다움은 봐도 봐도 새롭고 짜릿하다. 이쯤 되면 반한 적 없다는 말을 취소해야 할 것 같다.


시원 : <패왕별희>. 여느 때의 새벽 그리고 침대 위, 영화가 나의 습관이 되었을 때 숙제하듯 보게 된 영화였다. 작품을 보기 전의 그는 나에게 '홍콩 영화계의 전설적인 배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극이 시작되고 데이의 손가락이 잘려 운명이 강제로 틀어졌을 때, 장국영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눈물이 흘렀다. 나는 3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 동안 쉼 없이 울었다. 안타깝고 안쓰러워서, 그리고 그런 데이를 연기하는 장국영이라는 사람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엔딩 크레디트가 전부 올라갈 때까지도, 동틀 무렵이 될 때까지도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이를 계기로 장국영의 필모그래피를 전부 찾아보았다. 동시에 가수로서, 인간 장국영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알게 되어 사랑에 빠졌고 지금까지도 그를 사랑하고 있는 중이다.



장국영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수진 : 이 세상에는 많은 남자 배우들이 있다. 그들 중에는 남성성을 강조하는 듯 매우 건강한 느낌의 배우도 있고, 소년미를 가져 사람들의 마음 한 켠을 자극하는 배우도 있다. 장국영은 후자다. 아련한 느낌, 지켜주고 싶은 매력, 당장이라도 끌어안고 위로하고 싶은 매력을 가졌다. 그것이 장국영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영화는 영화적 장치로 여운을 끌어낸다면, 장국영이라는 배우는 그 배우의 눈빛과 연기만으로 여운을 끌어내는 것이다.


나은 : 낭만은 현실에서의 최고의 도피처다. 재거나 따지지 않고 이상을 좇으며 행복감에 빠질 수 있게 만드니까. 한 폭의 수채화 마냥 부드럽고 유한 그의 얼굴에는 낭만이 담겨있다. 미목여화(眉目如畫)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 배우가 아닐까 싶다.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선명하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그리운 그 시절을 그대로 대변하는 힘이 있다.


아림 : 영화 속 장국영의 모습은 유약해 보이지만 어딘가 꿋꿋했다. <패왕별희>에서 시대의 탄압에도 자신의 예술성을 지키려는 고고한 붓질이 그랬고, <아비정전>에서 친어머니를 만나러 갔다가 거절당하고 일종의 복수로 끝까지 뒤돌아 보지 않고 걸어가는 걸음이 그러했다. 결코 무너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 의지를 비집고 들어오는 본연의 외로움이 느껴져서, 그걸 표현해 내는 장국영이 좋았다. 어쩌면 그래서 그의 마지막 선택을 떠올리면 슬퍼지는지도 모르겠다.


시원 : 장국영은 귀엽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도 그렇고, 애교도 많고 정도 많은 그의 성격도 그렇다.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팬들이 환장할 만한 포인트밖에 없다. 외모가 무결하면 성격이라도 모나야 하는데 그는 그렇지가 않다. 아무리 많은 팬이 몰려와도 허투루 대하는 법이 없었고, 주변인이 힘들어하면 그들이 행복해질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그들을 도왔다. 사람을 웃게 할 줄 알았고 사랑할 줄 알았던, 예쁜 마음을 가진 사람. 장국영의 매 순간이 그의 매력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 한 가지.


수진 : 홍콩영화가 대세였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 분위기 자체를 경험해보고 싶다. 유년 시절 아이돌을 좋아했던 한 명의 소녀팬으로서 홍콩 배우를 좋아했던 한 명의 소녀팬의 감성을 경험해보고 싶달까. 계속해서 레트로가 유행인 이유도 이와 같지 않을까. 그때만 느낄 수 있던 감성, 기억, 추억을 공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돌아가는 것이니까.


나은 : 어린 엄마와 그 시절의 문화를 향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문화는 시대를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내고 과거의 공기를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대표적인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나이일 엄마와 함께 문화를 느끼면서 함께 살아 보고 싶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을 직접 경험한다면 경험하지 않았던 우리보다 그때를 더 궁금해하고 그리워할 수 있을까? 겪지 못해서 더 그리워하는 내 이상한 향수를 위해 나는 타임머신 탑승을 보류하려 한다.


아림 : ‘영국령 홍콩’이었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카이탁 공항으로 홍콩에 도착해서 침사추이 야경을 바라보며 마이마이로 장국영, 매염방, 장학우의 노래를 듣고 싶다. 욕심을 조금 더 낸다면 장학우의 홍캄 콘서트에도 가고 싶다. 그렇게 해 본다면, 그 시절 그렇게나 작은 홍콩에서 걸출한 아티스트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시원 : 잠깐만이라도 좋으니 장국영을 만나고 싶다. 만나서 이상한 짓을 하겠다는 건 절대 아니다. 미래에도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마 더 먼 미래에도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영원한 우리의 우상이고, 배우이고, 연인이며 친구 그리고 가족이라고.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서, 작품을 200편만 더 찍어서 남겨달라고 하고 싶다. 아무래도 이 말은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젊은 세대가 홍콩 감성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수진 : 반복되는 말이지만, 지금은 절대 느낄 수 없기에 좋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아무리 잘 꾸며놓은 홍콩 분위기의 가게를 간다고 하더라도, 그때 당시 홍콩의 감성을 그대로 옮겨놓을 순 없지 않은가. 그때 그 시절, 홍콩 현지 가게만이 표현할 수 있었던 것들 말이다. 젊은 세대는 단순히 그때의 감성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위해 계속해서 좋아하는 것 같다. 무엇이든지 경험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이니까. 그리고 그때 감성이 예쁘기도 하고.


나은 : 소위 Z세대로 분류되는 젊은 세대는 겪지 못하는 것들에 향수를 느낀다. 빠르고 편리한 지금과는 다르게 느리고 불편한, 투박하고 유치한 예전 것들에 대해 열광한다. 이는 한국에서 응답하라 시리즈가 큰 성공을 거두었던 흐름과 일맥상통한다. 직접 겪지 못해서 그리워한다. 공감할 수 없어 더 애틋해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 시대에서 청춘을 보낸 사람들의 마음을 가늠해본다.


아림 : 어느 순간 왕가위 영화의 작품성이라던가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세대’라는 설명만으로는 장국영을 그리워하는 90년대생을 이야기하기엔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대체 뭘까? 뭘 더 말해 볼 수 있을까? 아직 미진하지만 그에 대한 답으로 이걸 택했다. 우리 세대들이 흔히 접하는 홍콩 영화에서 그 시절 홍콩이라는 도시 국가의 성질을 느낄 수 있어서이지 않을까. 영국령 홍콩은 중화적인 것을 바탕에 두고 바다를 통해 건너오는 서양, 다른 동양의 문화를 모두 수용하는 동시에 이렇게 들어온 이들이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든지, 누구든지 떠나올 수 있고 떠나갈 수 있는 공간이 주는 유연함과 불안정성에 어쩌면 우리 세대들이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시원 : 홍콩 영화는 어떤 작품이라도 네온사인 가득한 홍콩의 밤거리를 걷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힘이 있다. 이내 낭만이 흐르고 빛났던 청춘의 분위기 속으로 손을 잡아끈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이든 홍콩 영화를 한 편이라도 보고 난 후면 그 시절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유된 청춘은 오래된 사진첩에서 꺼내 들었을 때 일률적인 감상을 이끌어낸다. 그래, 우리는 이렇게 빛났지, 하고 말이다. 홍콩 영화는 윗세대 어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세대의 추억이다. 젊은 세대가, 그중에서도 내가 홍콩을 사랑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장국영의 작품 중 어떤 작품을 가장 애정 하나요?


수진 : 장국영을 좋아하는 마음의 시작을 함께했듯, <패왕별희>다. 몇 번을 봐도 가슴이 울리는 작품이다. 영화가 아니라 한 편의 문학작품을 읽은 것처럼 끝이 나는, 여운이 오래가는 작품이다. 인물들 각각의 서사와 스토리가 그 점을 더 부각한다. 특히 짙은 화장에 가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장국영의 애절한 눈빛 연기는 오래도록 잔상이 남는다. 매년 장국영의 기일마다 영화관에서 재상영하는 패왕별희를 보고 싶다. 언제 봐도 그때 그 시대 장국영에게 몰입할 수 있는, 멋진 작품이다.


나은 : 진부해 보일 수도 있지만... 고민하지 않고 <패왕별희>를 꼽을 수 있다. 나에게 장국영의 매력을 알린 첫 작품이기도 하나 짙은 화장 뒤에 숨겨진 비련의 주인공 ‘청데이’가 너무나도 강렬한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패왕별희>는 관람을 거듭할수록 감상의 포인트가 변화한다. 처음에는 ‘데이’와 ‘주샨’을 쉽게 내쳐버린 패왕 ‘샬루’를 비난하기 급급하다가도, 결국 소시민인 내가 ‘샬루’의 선택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좌절해버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샬루’를 사랑할 수밖에 없던 ‘주샨’과 ‘데이’의 비극적인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어서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여운이 짙다.


아림 : 나는 <야반가성>을 꼽고 싶다. 이 영화야 말로 장국영이 가진 ‘배우 아우라’를 몸소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야반가성>이 홍콩의 ‘오페라의 유령’이라고 하기에 되게 기대를 많이 하고 봤는데, 초반부의 인상은 그저 그랬다. 하지만 장국영이 등장하는 순간, 영화의 인상은 물론 그 자체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영화가 더 세련되진 느낌. 그것은 단지 장국영의 미모에서만 기인한 건 아닐 것이다. 카메라 앞에 등장함으로써 극의 전환을 이끌어 내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곧 장국영이 좋은 배우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는 무대 위에서도, 카메라 앞에서도 최고였다.


시원 : 너무나도 가혹한 질문이다. <종횡사해>의 제임스는 잘생긴 데다 멋이 줄줄 흘러서 좋고, <창왕>의 릭은 장국영이 이제껏 연기해왔던 배역들과 180도 반전된 살인마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고, <가유희사>는 주성치, 장만옥, 모순균과의 케미가 넘쳐서 좋다. 그래도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춘광사설>을 들고 싶다. 가장 좋아하는 홍콩 영화이고, 사랑하지만 표현하는 법을 몰랐던 보영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항상 가슴에 품는 가장 큰 이유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어딘가에 보영이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이런 보영을 혼자 남겨두고 온 것만 같아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