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choonsam Sep 26. 2024

허풍? 장풍으로 만들면 그만이야

https://youtu.be/3iHBlNgjQQo?si=tbfEvEIhQAvqCzeD

최선을 다해 쉬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렇게 무방비하게 쉰 적이 있었던가. 스물대여섯 무렵부터 시작한 사회생활, 언제나 비빌 언덕을 만들어 두고 직장을 그만두곤 했다. 소속감이 없으면 금세 무너지고 마는 내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참기 어려웠다. 수없이 오고 가는 욕설 섞인 고성, 그리고 내 잘못도 아닌 일에 연거푸 고개 숙여 가며 계속 일 할 자신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회사를 나왔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퇴사를 내질렀다. 이제 한창 일의 흐름을 잘 알게 된 시점인데 아깝지 않느냐는 부서 상무님의 말씀에 "이게 다 상무님 덕분입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좋은 곳에 이직하게 됐다고 에둘러 말했다. 뭔가 후련했다. 합이 잘 맞았는데 그만둬서 참 아쉽다는 말씀을 해 주신 협력사 담당자님의 말씀에 '내가 참 열심히 잘 하기는 했구나' 하는 뿌듯함이 일기도 했다.


일을 하지 않는 요즘은 실컷 게임을 즐기기도 하고 산책을 하면서 멍하니 하늘을 보곤 한다. 평소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과 친구들을 만나거나 오랜만에 본가에 들러 보고 싶었던 가족들과 강아지도 봤다. 운동복과 러닝화를 새로 사서 동네 달리기를 하는가 하면, 이곳저곳 예쁜 카페들을 찾아 돌아다니는 등 내 나름대로 바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무엇보다 요 근래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일은 '음악 감상'이다. 하루 종일 집에 음악을 틀어두고 있다. 1990년대 가요부터 뉴진스까지 세월과 세대를 아우른다.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공허함을 느끼나 보다. 며칠 전부터는 취미에도 없던 1~2시간짜리 클래식 공연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는 등 그 영역을 차츰 넓혀 가고 있다.


하루의 시작은 잔잔한 음악이다. 활기찬 점심 무렵에는 생동감 넘치는 노래를 틀어 둔다. 그리고 오후부터 저녁까지는 은은한 재즈를 틀어 두며, 잠에 들 무렵에는 조용한 음악으로 회귀한다. 잠자리에 누워 평소 좋아하는 가수의 라이브 공연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고,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숨은 명곡은 없는지 유튜브 공간을 샅샅이 유영해 본다.


그렇지만 하루의 끝은 언제나 '언니네이발관'이다. 언니네이발관의 문을 열고 "저 또 왔어요" 하고 미용 의자에 누워 이석원 삼촌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에 든다. MP3에 잔뜩 노래를 넣어 두고 듣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나만의 오랜 관례다. 잘 알려진 음악을 멀리하고 마이너 한 음악만 고수한다는 '인디병' 혹은 '홍대병'은 한사코 아니다. 단지 그저 예전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한 습관일 뿐이다.


대학 시절 한창 몰두했던 싸이월드 미니홈피 꾸미기, 가장 열심이던 때 내 미니홈피 배경음악 재생목록 첫 번째 곡은 언제나 언니네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였다. 사람 홀리는 묘하게 맥 빠진 기타 전주와 그 음색이라니. 방명록 한 바퀴 읽어주고 일촌평 파도타기를 하기에 최적의 BGM이었다. 그 외에 '푸훗', '어제 만난 슈팅스타', '산들산들' 등 오명가명 듣는 명곡들이 참 많다.


알게 된 계기는 무척이나 우연이었다. 바로 2004년 중2 여름방학에 고모댁에서 지내던 때 들었던 라디오, 그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나를 잊었나요?'라는 노래였다. 밝은 듯하면서도 어딘가 우울한 느낌의 정서가 풍기는 목소리에 경쾌한 기타가 어우러져 꽤나 충격적이었다. 무척 산만한 중2병 남자애가 하던 것을 멈추고 멍하니 앉아서 끝까지 들을 정도였으니.



https://youtu.be/1 UcHGQNqV4 c? si=yqxr7 Md5 uOoZJo5 K


언니네이발관은 거짓말, 속된 말로 '구라'에서 비롯된 밴드다. 1990년대 하이텔 시절, 메탈동아리라는 곳에서 'mypsb'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던 이석원으로부터 시작됐다. 이석원은 PC통신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던 중, 본인이 음악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들킬 것 같다는 불안감에 언니네이발관이라는 밴드의 리더라고 거짓말을 해버렸다.


시간이 흐르며 이석원은 본인이 저지른 거짓말을 수습하기 위해 허상의 밴드에 멤버까지 모집하게 되는데, 그렇게 모인 멤버들 역시 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이석원에게 거짓말을 하고 밴드에 합류한 것이다. 무엇보다 밴드명은 일본 포르노에서(우노 고이치로의 자매이발소) 착안해지었다고 한다. 참으로 놀랍고도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시작은 거짓말이었지만 그 후 그들은 '진짜'가 됐다. 한 펜션에 들어가 장기간 합숙 훈련을 거쳐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진정한 밴드의 모습으로 거듭났다. 커버곡 공연이 만연하던 당대 인디씬에서 본인들의 자작곡을 만들어 공연하며 입지를 공고히 했다. 여러 명반들을 내며 결국 훗날에는 현존하는 인디밴드들의 모태가 되었다는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그야말로 구라로 시작해 전설이 된 이 밴드의 탄생 비화는 내 삶의 모토와 닮아 있다. 바로 "일단 내뱉고 보자"는 마음가짐이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설령 해낼 자신이 없거나 어렵다고 생각되는 일을 마주하더라도 "그게 뭐 어려울까?" 라며 기운차게 말하고 시작한다.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어려운 미팅 자리에 임하게 됐을 때에도 "하나도 안 떨린다. 다 아무것도 아니다" 하는 혼잣말을 강단 있게 읊조린다.


작게나마 내뱉던 이러한 습관들은 스스로 거는 최면처럼 작용했다. 어떤 일이든 걱정부터 앞섰던 성격은 작은 일부터라도 일단 시도하고 보는 성격으로 바뀌었고, 또 사소한 일도 긴장하곤 했던 내 모습을 사람들 앞에서 잘 떨지 않는 모습으로 바뀌도록 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드라마틱하게 나타났던 것은 아니지만 내 안에서 뚜렷하게 느껴졌다.




내 기억에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경험이 하나 있다. 군대 전역 후 갓 복학했던 시기, 영문법 교양 수업을 들었을 때다. 학기 중에 특정 영문법과 관련된 발표를 해야 하는 수업이었다. 나는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던지라 숫기도 없고 부끄럼이 많아 참 곤란했다. 자료와 스크립트는 준비를 잘해서 걱정이 없었는데, 문제는 학우들 앞에 서서 발표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발표 당일에 무척 긴장했던 나는 모든 학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마리 처량한 염소가 되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을 이어 나갔다. 내 나름대로 팔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열심이었는데, 문제는 너무 떨다 보니 손목에 찬 메탈 시계가 차륵차륵 소리를 낼 정도였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학우가 그 모습을 보고 비웃듯 피식- 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 광경이 내 기억 속 상처로 남아 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크든 작든 사람들 앞에 서는 자리가 있을 때면 수도 없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반복했다. 성공적으로 발표를 마친 후, 강단에서 웃으며 인사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입 밖으로 계속해서 "다 쥐뿔도 없다"는 말을 되뇌곤 했다. 이 습관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지금은 사람들 앞에서 크게 떨지 않는 성격이 됐다.




모쪼록 언니네이발관의 노래를 들을 때면 그들의 탄생 비화를 떠올리게 되고, 또 내 이전의 경험을 떠올리게 되곤 한다. 물론 인생을 살아가며 신중하게 고민하고 걱정하는 일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대체로 걱정하는 만큼 복잡하지 않고 고민하는 만큼 어렵지 않았던 듯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는 것, 그리고 피하지 않고 해 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며칠 전 집 근처에서 산책을 하던 중, 도서관 앞에 걸린 '문학 작품 공모전' 현수막을 봤다. 잠시 멈춰서 생각했다. '내가 참가하면 장려상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하다가,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던 중, 결국 '그까짓 거 장원급제는 나지'라는 자신감으로 귀결됐다. 다행히 주제와 비슷한 글을 써 둔 것이 있어 집으로 바로 돌아가서 바로 글을 다듬고, 두어 번 퇴고한 후에 그날 바로 제출했다.


참 어렵다. 바로 행동해야 하지만 덜컥 겁이 나는 일이 있고, 내 능력 밖의 일이라 엄두조차 나지 않는 일도 많다. 혹여 스스로 이러한 상황에 처했다면, 나는 일단 허풍일지언정 "어떻게든 되겠지"를 내뱉고 작은 일이라도 시작해 보길 권장드린다. 무책임한 뉘앙스가 아닌,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마음가짐을 담아 시작의 발걸음을 떼 보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걱정과 불안을 다스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큰 덩어리의 불안과 걱정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작은 것으로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일단 '별 것 아니다'라고 허풍이라도 내뱉고 시작해서 차근차근 목표를 실현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천릿길을 넘어 만릿길을 걷는 자신을 보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그저 말 뿐인 허풍선이로 그칠 스스로가 아님을, 그리고 종국에는 해낼 수 있음을 굳게 믿는 것.

작가의 이전글 눅눅한 붕어빵을 잊지 못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