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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람 Aug 31. 2020

백수와 예술가의 아침

나도 충분히 열심히 살았는데, 우린 뭐가 달라?


백수와 예술가의 아침



어느 잔뜩 찌푸린 날 아침, 느지막히 눈을 뜬 백수는 거실 창가에서 은은한 샌달우드 향을 피우고, 스포티파이에서 'Indian Chill'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코끼리 금장이 박힌 인센스 홀더에서 연기가 흐느적흐느적 춤추듯 흘러나오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이국적인 분위기가 한껏 고취되면 불편한 몸뚱이를 이끌고 무엇엔가 홀린 듯 요가 기본 동작을 시작한다..


이것이 나, 3개월 차 백수의 아침이다. 팔자 좋은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은 시시때때로 엄습하는 불안을 다스리기 위한 백수의 의식화된 습관이자 과장된 몸짓일 뿐이다. 백수 초기엔 낮밤이 바뀌는 등 불규칙한 생활을 유지했지만, 3개월 차쯤 진입하면 그 불규칙한 생활 속에서도 루틴이 생기는 신기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읏차, 끙차'


옆에서는 어느새 눈을 뜬 건넌방의 예술가가 거실로 나와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지난밤, 전시 준비를 막 끝낸 예술가는 한껏 쪼그라든 모습이다. 사람이 어떤 일에 영혼을 쏟아부으면 실제로 작아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 예술가를 통해 알게 됐다. 이제 막 방에서 나온 서로의 몰골이 낯설어서, 우린 우리가 '자매'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약 3초 정도의 버퍼가 걸린다.




백수가 된 모범생,

아티스트가 된 문제아



거기 누군가 계시다면 내 얘기를 좀 들어봐 주시라. 사실 나는 매우 억울한 입장이다.


나는 인생 탄탄대로 굴곡 없이 살아온 평범한 '모범생'이었다. 항상 어른들의 기대와 관심을 받으며 자랐고, 대학부터 직장까지 쉼 없이 착실하게 단계를 밟아왔다. 그렇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대기업에 다녔지만, 지금은 그냥 퇴사를 꿈꾸는 휴직자가 되었을 뿐이다.


반면, 동생은 인생의 주요 순간마다 삐걱대며 방황한 '문제아'였다. 늘 어른들의 눈밖에 나고, 학교생활에 충실하지 않았던 존재였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백수로서 온 집안의 멸시와 구박을 받았으며, 자기 돈으로 아메리카노 한 잔 사 마시지 못했다. 그랬던 문제아가 지금 내로라하는 곳에서 작업 제안이 들어오는 성공한 예술가가 된 것이다. 이 어려운 코로나 시대에 타격이 없는 것을 보면 감히 성공했다고 이야기해도 될 것 같다.



나도 충분히 열심히 살았는데, 우린 도대체 뭐가 달라?



그때부터 이 물음을 끌어안고 끙끙 앓으며 고민했다. 어떤 차이가 이런 결과를 낳았을까. 다행히 우리는 3년 동안 하우스메이트로 함께 살며 서로의 일상을 익스트림 클로즈업 수준으로 들여다보고, 서로의 차이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모범생이었던 내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이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백수가 된 모범생이 성공한 문제아를 보고 느낀 작은 '생각의 전환'에 대한 기록이자, 서른이 넘어 '나'를 찾아가는 내밀한 고백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자기만의 길을 찾고 있는 많은 '어른이'들이 함께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CAST


언니 (1990)

- IT기업 뮤직 컨텐츠 기획자

- 매일 쓰고 싶은 사람이자 방구석 DJ

- 백수기간 : 2020.04 ~ 2020.11


동생 (1992)

-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애니메이터

- 주로 움직이는 그림을 그린다

- 백수기간 : 2017.02 ~ 20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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