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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람 Sep 02. 2020

대한민국 모범생들의 비애

지금부터라도 나만의 가사를 써보기로 했다


모범생은 매를 맞지 않는다


*모범생 : 학업이나 품행이 본받을 만한 학생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2006년, 혈기 좋은 열일곱 살의 어느 날, 그날 저녁시간은 유난히 배가 고팠다. 하지만 학교 식당에는 엄연히 규칙이라는 것이 존재했고, 그 날은 우리 반 학생들이 거의 꼴찌로 줄을 서는 날이었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몇몇 친구들을 꼬셔서 새치기를 하자고 제안했고, 그들은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우리는 식당으로 달려 내려가 먼저 줄을 서 있던 많은 학생들을 뒤로하고, 식당 입구 쪽에서 뻔뻔하게 새치기를 했다. ‘이 정도면 자연스러웠다.’고 흡족해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의 생각만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우리는 새치기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연행되어 복도 한쪽에 주르륵 엎드려뻗쳐하게 되었다.


학생주임 선생님은 가차 없이 엎드려 있던 친구들의 엉덩이를 몽둥이로 한 대씩 때리기 시작했다. 복도에 찰싹찰싹, 듣기만 해도 매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매를 맞은 친구들은 차례차례 아픈 엉덩이를 부여잡고 교실로 돌아갔다. 나는 맨 마지막으로 엎드려 있었는데, 선생님은 내 차례에서 때리는 둥 마는 둥 대충 시늉만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친구들이 새치기하자고 해도,
너까지 이러면 돼?


순간 당황했지만 나는 발칙하게도 선생님의 말에 굳이 대답하지 않고 말을 아꼈다. 아마 내가 새치기 주동자임을 솔직히 고백했어도, 내가 더 혼나거나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학교에서 흔히 모범생으로 일컬어지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전교 1,2등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울시내 4년제 대학에 무난히 진학할 만한 학생, 특별히 큰 사고 안치고, 모난 구석 없이 교우관계 원만하고, 선생님 말도 잘 듣는 그런 학생 말이다.


나는 그때 이 사회에서 내가 편안함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어딜 가든 숫자로 줄 세우기 좋아하는 세상에서 내가 앞 줄에만 서 있으면, 또 체제에 반항하지 않고 얌전히 따르기만 하면 내 인생은 뭘 하든 탄탄대로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궤도를 이탈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jaysung, 출처: Unsplash




이딴 소설책 말고 수학의 정석



하지만 모범생의 기쁨은 시스템 속에서 안전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 딱 거기까지였다. 물론 그것도 보통 노력으로 되는 일은 아니며, 좋은 환경과 어느 정도의 운도 겸비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폄하할 의도는 없다. 하지만 모범생들은 이 기쁨을 누리는 대신 본인의 생각이나 취향을 곧잘 거세당하곤 한다.


고2 중간고사가 끝난 어느 야간 자율 학습(을 빙자한 '강제' 학습) 시간이었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날도 야자시간에 책을 읽고 있었는데, 어두운 그림자가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내 책은 순식간에 야자감독을 하던 수학선생님의 손에 넘어갔고, 선생님은 내가 보고 있던 책을 우리 반 친구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공중에 펄럭 펄럭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이 딴 소설책 볼 시간에 수학 문제 하나라도 더 풀어. 너희가 지금 이딴 소설이나 읽고 있을 때야? 너희 이제 곧 고3이야 고3!


선생님은 내 책상에 소설책을 퍽 소리 나게 집어던지고 나를 야멸차게 노려보며 교실을 빠져나갔다.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 성적만 유난히 부족해서 수학 선생님에게 쓴소리를 듣고 있던 시절이기도 했다. 나는 마지못해 읽고 있던 소설책을 집어넣고 책상 서랍에서 <수학의 정석>을 꺼내 펼쳤다. 그때 내가 서랍에 집어넣었던 소설책은 공지영 작가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였다.


내가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나 혼자 꿋꿋하게 소설책을 펼치고 있을 자신은 없다. 하지만 이 순간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내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는 이유는 아마 아쉬움 때문인 것 같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수학의 정석>이 아니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같은 책들에 있다고 믿고 있으니까 말이다. 만약 그때 선생님이 문학을 ‘이딴 소설책’이라고 칭하지 않고, 이 책을 읽고 무엇을 느꼈냐고 물어봐 주었더라면 내 인생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2020년 문학계를 강타한 키워드는 ‘페미니즘’이며, 지금 사회는 93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 쓰인 가부장제 사회와 아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 이 책을 읽고 내가 좀 더 깊이 있게 사고할 수 있었다면, 사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았을까, 그런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대한민국 모범생들의 비애



대한민국 모범생들의 비애는 ‘사춘기’라는 개념을 교과서에 나온 대로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시기’, ‘질풍노도의 시기’, ‘자아정체감이 형성되는 시기’라고 텍스트로만 달달 외웠을 뿐, 실제로 감각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탓에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누구인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먹고사는 문제는 없을지 몰라도,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것 같은 공허함에 시달리면서 말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동시에 어디에나 있구나.

우린 앞만 보고 살도록 배웠으니까,
주위에 남아있던 행복을 놓쳐
빛나지 못하는 거야.



2018년 방영된 <고등 래퍼 2>에 나온 김하온, 빈첸의 <바코드>라는 곡의 가사다. 이 둘은 모두 고등학교 자퇴생이다. 내가 대학이라는 아주 협소하고 지엽적인 꿈을 위해 열을 올리던 시기에, 이들은 자신의 꿈이 뭔지 정확히 알고 인생에 대해 고민하며 놀라운 가사를 써냈다. (전체 가사가 매우 좋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모범생의 사전적 정의는 ‘학업이나 품행이 본받을 만한 학생’이다. 그런데 학업성적이 좋고 모난 행동만 하지 않으면 과연 사람들의 모범이 될 수 있는 것일까. 학교 입장에서 너무 편의적으로 모범생을 정의 내린 것은 아닐까.


모범생의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사춘기를 제때 몸소 겪은 사람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모범생이라고 생각한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것보다,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보다, 어쩌면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우리만의 가사를 써내는 게 더 시급한 일일지도 모른다.


서른이 넘은 지금, 나는 여전히 사전적 정의의 모범생 언저리에 머물러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나만의 가사를 한번 써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 시대의 모든 모범생들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나와 비슷하게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함께 잘 해나갔으면 좋겠다.



바코드 - 김하온&빈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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