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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람 Sep 05. 2020

나를 찾는다고 떠나봤자 고막만 터지지

일상으로 돌아가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삼재의 제주도 여행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흘러나왔다. 제주 종달리 어느 히말라야 풍 식당 앞의 나무 그네에 앉아 나는 미친 사람처럼 실실 쪼개고만 있었다. 혼자 제주도에 여행 온 사람이 서핑하다 한쪽 고막이 터지고, 렌터카 배터리까지 방전될 확률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걸까. ‘내가 바로 그 두 개를 모두 해낸 사람입니다!’라고 크게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웬만한 식당은 모두 일찍 문을 닫는 종달리에서 겨우 식당 하나를 찾아 밥을 먹고 나왔더니 자동차에 시동이 안 걸리는 황망함이란. 어느 여름 고요한 종달리의 밤, 나는 자동차 긴급 출장 서비스를 기다리면서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삼재였다. 가끔 신점을 보러 가는 곳에서 그 해에는 아무것도 할 생각 말고, 국으로 납작 엎드려 있으라고 했었는데, 그즈음 나는 인생의 길을 잃은 기분에 자주 어딘가로 훌쩍 떠났다. 떠나면 뭐라도 조금 달라질 줄 알고 말이다. 하지만 약간의 기분 전환, 내게 주어진 것은 그게 다였고 나머지는 삼재를 증명이라도 하듯 대부분 망했다. 어째 발악하면 할수록 더 꼬이기만 하는 기분이었다.




서른 넘으면 되게 멋질 줄 알았어. 오피스텔 살면서 자가용 끌고 일 년에 한두 번 해외여행 가고 무슨 배짱으로 서른은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는지 몰라.



드라마 <또, 오해영!>의 대사처럼 ‘되게 멋진’ 서른이 이런 거라면 난 이미 ‘되게 멋진’ 사람이건만, 난 스스로가 너무 후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회사는 충분히 합리적인 곳이었고 멋진 사람들이 가득했지만, 왠지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불행한 건 결코 아니었지만, 나는 내가 누릴 수 있는 완전한 재미와 최대치의 행복을 원했다. 좀 더 ‘나로서’ 살고 싶은 마음, 하지만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다른 직장인들처럼 운동과 취미에도 빠져보고, 가끔 비싼 거 사서 스트레스도 풀어보고, 진탕 술도 마셔보고, 가끔 해외여행 다니면서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잖아. 이게 인생이지 뭐 별거 있어?’라며 애써 위로하고 살았다. 뭐랄까, 현실을 바꾸려고 하지는 않으면서, 주어진 현실에 백 프로 순응하지도 않는 치기 어린 삶이었다.


그런데 멀쩡하던 오른쪽 고막에 구멍이 뻥 뚫리고, 자동차 배터리가 나간채 홀로 오도카니 나무 그네에 앉아있자니, 정말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드는 것이었다. 망상일지도 모르지만 이 정도면 저기 어딘가 있는 신이 나보고 정신을 차리라고 있는 힘껏 경고를 해주는 듯했다.


별이 총총 떠 있는 밤하늘을 보며 혼란한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어느새 긴급 출장 서비스가 도착했다. 출장 기사분은 능숙한 솜씨로 배터리 충전을 진행하면서, 경차는 여름철에도 배터리가 방전되는 일이 종종 있다고 했다. 종종 있는 일이라니 나만 이렇게 불운한 건 아닌 것 같아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시동 바로 끄면 다시 방전될지 모르니 한 시간 정도 시동 켜 놓으시고요. 출장비는 7만 5천원입니다.”


썩을, 7만 5천원. 역시 올해는 삼재가 맞구나. 배터리는 소모품이라 보험이 안된다고 했다. 이럴 거면 나는 왜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완전 자차 보험을 들었을까. 진짜 되는 일이 더럽게도 없었다. 도저히 웃어지지 않는 얼굴로 출장 기사 분께 값을 지불하고는 터덜터덜 자동차에 올라탔다. 그날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고 우울했다. 밤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어두운 종달리에서는 드라이브를 할 수도 없어서 시동을 켜놓은 채 홀로 오도카니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가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한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밀려오는 무료함에 결국 인스타그램을 열고 말았다. 제주 여행에 집중하기 위해 되도록이면 SNS을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쏟아지는 악재에 별 수 없었다.


피드 제일 처음에 동생의 포스팅이 보였다. 갤러리아 포레에서 열리고 있는 동생의 전시 작품 사진이었다. 동생은 연초에 유명 래퍼의 뮤직비디오 작업을  이후, 최근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포스팅마다 달려있는  백개의 좋아요가 새삼스러웠다. 분명 2 전만 해도 동생은 백수였고 사회 초년생이었던 내가   원씩 용돈을 쥐어주곤 했었는데 말이다. 동생은 2 사이에  개인전도 하고 코엑스 국제도서전과 제천 국제 음악영화제에 참여하는   많은 성취를 이뤘다. 부모님의 관심도 어릴  모범생이었던 나보다 문제아였던 동생에게 옮겨간지  되었다. 문득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행복하냐


갑자기 전화해서 웬 미친 소리냐고 묻더니, 동생은 행복하다고 답했다. 그 목소리에서조차 행복감이 묻어났다. 그 순간 자동차 거울을 통해 본 내 모습은 참 못났었다. 다친 귀 쪽으로는 통화하지 못해서 어색하게 왼쪽 귀에 핸드폰을 갖다 대고 울기 직전의 표정을 하고 있는 꼴이란.


나는 알아야만 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는지 말이다. 거기서부터 되짚어 나가다 보면 답답한 내 인생에도 한 줄기 빛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렇게 맥락 없이 아름다운 제주도에서 그 답이 찾아질 리가 없었다. 나의 서사와 흔적이 가득한 곳,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 그 답을 한 번 열심히 찾아보기로 했다.


나 집에 갈래. 여행 온다고 뭐 달라지냐.


예정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예약한 숙박일을 다 채우지 못한 숙소는 아마 환불받지 못할 테지만 마음만은 정말 가벼웠다. 자동차에서 느껴지는 작은 진동이 참으로 편안하고 고요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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