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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람 Oct 16. 2020

나와의 대화, 그 대책 없는 결론

아무래도 글을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날에 걸친 나와의 대화를 통해 당장 해야 할 일이 눈앞에 보이고, 미래의 모습이 청사진처럼 그려졌다.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참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기적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애써 외면해 온, 아니 외면하다 못해 내면 깊숙이 파묻어버린 나의 마음의 소리를 조금은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시도해봤던 것들의 결과를 살펴보았을 때,


시도 1: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하며,

시도 2: 창작 계통의 일을 할 때 기쁨을 느끼고,

시도 3: 내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구성하여 표현하는 능력이 핵심 역량이며,

시도 4: 남들이 볼 때, 강단 있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색과 예술을 좋아하는 나는


아무래도 글을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고작 그거야?’라고 말할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는 내가 이제 와서 글을 쓰겠다고 하는 것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모든 표현의 기초는 글이었다. 학교에서 교내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도, 취재 기사를 쓸 때도, 시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도, 심지어 바이럴 영상을 제작할 때도 나는 항상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분명히 있었고, 그 시작은 항상 '글'이었다. 회사에서도 프로젝트를 끝까지 꼼꼼히 완수해내는 능력보다는 내가 기획한 내용을 잘 다듬어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획/보고 문서에 더 재능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이 글이라면, 멀리 갈 것 없이 우선 그냥 써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 Deeezy, 출처 Pixabay


내가 가진 성향 또한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많았다. 풍부한 감수성과 예민함은 남들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문제나 감정들을 한번 더 들여다보게 해 주었으며, 자기주장이 강하고 매사에 비판적인 태도는 글감을 찾고 글의 주제를 확실하게 드러내는 데 더없이 좋은 역량이었다. 또,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행위 또한 바로 글이었다. 글을 쓰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 없었다. 종이와 펜, 또는 태블릿 하나면 족했다.


물론 당장 글로 벌어먹고 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내가 그런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그게 당장 현실적으로 가능할 리 없었다. 다만, 나의 인생 2막은 글과 함께 시작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 내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였다. 그동안 블로그나 에버노트에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메모해 놓은 영화/독서 감상 노트나, '저게 말이 돼?'라며 분노했던 사회 이슈들, 그리고 '씨발, 씨발'만이 가득한 나의 문제적 일상이 담긴 일기가 그랬다. 또 동생과 여러 날, 밤새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던 서로의 사춘기에 대한 비교도 그냥 흘려보내긴 너무 아까웠다. 꼭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동안은 술 먹고 클럽 가고 디제잉하는 것 말고는 마음이 끌리는 게 전혀 없었는데, 오랜만에 진심으로 해보고 싶은 게 생겨서 기뻤다. 그것이 단순한 호기심이나 흥미가 아니라, 내 인생의 궤적에서 건져 올린 필연적인 결과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커버 출처 : © milkovi,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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