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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람 Oct 20. 2020

드디어 각 방을 쓰게 되었다

‘자기만의 방’을 위한 눈물겨운 이사의 기억

----여기서부터는 미리보기만을 제공합니다---


이 집은 차원이 달랐다.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신발을 벗기도 전에 “아, 좋네요....”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예산을 초과한 집이었기 때문에 집이 마음에 들어도 좋은 티는 안 내려고 했는데, 그만 본능적으로 반응해 버리고 말았다. 깔끔한 신축 건물에 탁 트인 전망, 따뜻한 햇살, 아담한 거실, 그리고 꽤 넓은 방 두 개까지 그야말로 완벽했다.



포기할 때쯤 만난 완벽한 집



2019년 겨울, 동생과 나는 집을 따로 또는 같이 보러 다니면서, 일명 ‘따로 또 같이’ 작전으로 서울 시내의 전세 매물을 무려 100개 넘게 둘러보았다. 한참을 우울감과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는데, 어디서 그런 집념이 타올랐는지 모를 일이었다. 부동산에서 우리를 차에 싣고 다니며 매물 투어를 시켜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집을 얼마나 많이 보고 다녔던지, 각기 다른 부동산에서 똑같은 집을 세 번이나 보여준 적도 있다. 매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중개인이 이끄는 대로 차 뒷좌석에 짐짝처럼 실려 다니다 보니, 이미 봤던 집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똑같은 집에 재차, 삼차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강남 일대의 매물은 동네의 거리나 건물 외관이 다 비슷하게 생겨서 다녀온 곳과 아닌 곳을 구분하기가 여간 쉽지 않기도 했다. 그 집에 거주하시던 세입자 분과 무려 세 번째 마주했을 때는 서로 당황하며 ‘사는 거 정말 힘들죠. 이해합니다.’라는 뜻이 담긴 눈인사를 주고받을 정도였다.


동생과 내가 원하는 집의 조건은 절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크기가 작아도 채광이 좋은 방을 원했고, 동생은 어둡더라도 크기가 큰 방을 원했다. 그리고 서로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아담한 거실, 그 정도만 있으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미처 몰랐다. 대부분의 투룸은 신혼부부용으로 나오기 때문에, 채광이 좋으면서 사이즈가 큰방이 침실로 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투룸에서 방을 나눠 쓸 경우, 한 명은 꼭 어둡고 작은 방을 써야 하는 비극을 맞는 것이 투룸 전세 생태계의 순리였다. 우리 둘 중 누구도 그런 비극을 맞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든 두 방의 조건 차이가 심하지 않은 매물을 구하기 위해, 거의 바닥까지 소진된 에너지를 있는 힘껏 끌어 모으고 있었다.


그렇게 애쓰는 것도 지쳐 그만 포기할 때 즈음, 이 완벽한 집을 만나게 된 것이다. 어제 막 나온 매물이라고 했다. 이 집의 가격 대비 컨디션을 고려해보았을 때,  만약 우리가 계약하지 않는다면 오늘 안에 다른 사람이 바로 채갈 것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방’이 필요해



충격적으로 들리겠지만, 동생과 함께 살기 시작한 지 무려 3년이 지날 동안 우리는 한 번도 각자 ‘자기만의 방’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으로부터 처음 독립했을 때는 좁은 원룸 오피스텔에 둘이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 사람이 살아도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둘이 부대끼며 살았을까 싶다. 참 대단한 우애였다. 그 이후엔 조금 돈을 모아 1.5룸 오피스텔로 옮겼지만, 역시 완벽한 공간 분리는 어려웠다. 아무리 자매가 볼꼴 못볼꼴 다 본 사이라 해도, 나 아닌 타인과 늘 같은 공간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미술 작업을 하는 동생에게 늘 책상을 양보했기 때문에, 나만의 공간에서 사부작사부작 무언가를 해 본 기억이 까마득할 정도였다. 1.5룸 오피스텔에 내 책상이 있긴 했지만 공용 침실에 놔둔 것이라 나만의 독립된 공간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회사를 다닐 때는 집 책상에 각 잡고 앉아서 할 만한 일이 거의 없었고, 가끔 생기더라도 주로 카페를 찾았다.


하지만 내가 진정한 나로서 살아가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나만의 공간이 절실해졌다. 어떤 간섭이나 방해 없이 내가 진지하게 삶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공간, 사부작사부작 무언가 끄적일 수 있는 그런 공간이 필요했다. 동생도 그즈음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은 상태였기 때문에, 혼자 작업할 만한 독립된 공간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완벽한 집은 우리의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 내 방은 작지만 남향이고, 동생 방은 크지만 동향이었다. 하지만 작은 방이라고 해봤자 다른 전세 매물의 큰 방 정도는 되었고, 큰 창이 여러 개 있는 데다가 높은 층에 위치한 집이라 남향, 동향할 것 없이 그냥 전체적으로 밝았다. 방도 각자 침대와 책상을 들여놓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크기였다.


결국 우리는 꽃피는 봄, 꿈꾸던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대학 졸업 이후 처음으로 나만의 방과 나만의 책상을 가져보니 이제 알겠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자신의 삶을 살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던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자기만의 방’이라는 물질적인 공간과 그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신만의 사유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내 방과 책상이 따로 없었을 때를 생각해본다. 퇴근하자마자 소파나 침대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의 가벼운 영상만을 소비하면서 몇 시간이나 흘려보내지 않았던가. 돌이켜 보면 나만의 공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인가를 더 생각할 마음의 공간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여유로운 마음으로 내 방 책상에 조용히 앉아 있다 보니,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말고도 몰입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호흡이 긴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글을 쓰고, 글을 쓰면서 나와의 대화도 하고, 좋은 음악도 찾는다. 신기하게도 계속 무언가를 하면서 나에 대해 더 잘 알아가고 있다. 그동안 나는 너무 남의 목소리에 집중해서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나만의 방을 갖고 나니, 서른이 넘어서야 비로소 시간을 충만하게 보내는 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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