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람 Oct 25. 2020

그놈의 비트매칭

좋아하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부터는 미리보기만을 제공합니다---


슬슬 좀이 쑤셔왔다. 나는 절대로 집에 틀어박혀 글만 쓸 수 있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회사에 다니더라도 항상 일만 하면서 살지는 않듯이 기분 전환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했다. 이때만큼은 뭔가를 이루겠다는 욕심 없이 순수하게 마음이 끌리는 것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7월부터는 해방촌에 위치한 조그만 연습실에서 다시 디제잉을 배우기 시작했다. 오로지 나의 기쁨과 재미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모든 일은 내 예상대로 흘러가기만 하지는 않았다.


제발 연습 좀 해주세요. 부탁드려요.



두 번째 레슨 날, 선생님은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시늉을 하며 내게 간곡히 부탁했다. 나는 그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디제잉의 기본 중의 기본인 비트매칭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비트매칭: 두 곡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곡의 빠르기와 박자를 맞추는 기술


그동안 디제잉 장비의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bpm 숫자에 너무 의존하고 있었나 보다. usb에 담긴 음악이 아닌 바이닐(vinyl)로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숫자를 보지 않고 비트매칭을 해야 했는데, 표시되는 숫자가 없으니 비트매칭이 아주 엉망이었다. 그래도 디제잉은 나름 내 오랜 취미인데 왜 이 기본적인 것도 못할까, 창피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네......”


나는 모기 만하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 후, 털레털레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아이씨, 쪽팔린다 진짜. 옛날부터 해왔다고 하지나 말걸.’ 상상 속에서 나는 방정을 떠는 주둥이를 스스로 열 번도 더 때렸다. 버스를 타러 내려가는 해방촌 언덕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문득 백수 주제에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네 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괴감에 몸을 떨었다.


그 이후로 레슨이 금요일이라면 나는 수요일 밤부터 미리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아, 또 비트매칭이 잘 안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즐기려고 시작한 디제잉인데 어느 순간 레슨이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디제잉이 실은 그렇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이 피어오르는 일이었다. 그래도 대학생 때부터 전자음악 참 좋아했는데, 파티도, 클럽도, 페스티벌도 내 생활의 일부였는데, 이렇게 레슨이 부담스러운 걸 보니 실은 그 시간들이 다 거짓은 아니었을까? 내가 그동안 디제잉에 매달렸던 건 괴로운 회사생활에 대한 보상심리일 뿐이었을까? 역시 나는 그냥 음악을 듣기만 해야 하는 사람인 걸까? 디제잉을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부정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커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브레이크 없는 걱정만 하고 있던 와중에, 나는 어떤 사실을 하나 깨닫고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음, 그러니까... 나는 정작 연습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디제잉 장비가 부모님 댁에 있다는 핑계로 말이다. 건방지게도 1주일에 한번 디제잉 클래스에 가는 것만으로 실력이 자연스레 늘기를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아마 은연중에 본업이 아닌 일은 이 정도만 해도 된다는 마음이 있었나 보다.


더 이상 가만히 앉아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방 구조 전면 개편 작업에 돌입했다. 과연 이 좁은 방에 디제잉 장비를 들여놓을 공간이 나오는지 가늠해보기 위함이었다. 요리조리 테트리스 블록 맞추듯 가구들을 재배치하고 나니, 기적처럼 침대와 방문 사이에 여분의 공간이 생겨났다. 그 길로 극성을 떨며 왕복 3시간 거리의 부모님 댁으로 가서 디제잉 장비를 곱게 싸안고 돌아왔다. 놀랍게도 장비 세팅을 마치고 나니 오히려 방이 전보다 더 안정감 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집에 있던 오묘한 빛깔의 바 조명은 클럽 같은 분위기를 내주기도 했다.


이전 18화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