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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람 Oct 31. 2020

백수 아니고요, 자기 관찰 중입니다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이 아닙니다


나이 70이 되어 돈이 부족해서
생활하기 불편해지면,
그때는 지금 쉰 시간을 절실하게
후회하게 될 거예요.



브런치에 백수 생활에 대한 첫 글을 발행했을 때, 어르신들이 내게 남겨주신 댓글이다. '후회하게 될 것이다.', '가난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등의 저주인지 악담 비슷한 조언을 남겨주셨다. 물론 오래 살아보신 분들의 말씀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되겠지만, 나는 이때 백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맞다. '먹고사니즘'은 인류가 당면한 최대 과제이며 그 자체로 너무나 위대하다. 나는 가끔 아침 일찍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일종의 숭고함마저 느낀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자리로 향하며,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는 사람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누군가가 볼 때는 한창 젊은 나이에 이 숭고한 행위를 마다하고, 가만히 멈춰서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태만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모든 것이 기약 없고 불안한 코로나 시국에 백수가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비현실적이고 배부른 소리다.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행복을 운운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강조하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살면서 아무리 생업에 치이더라도 꼭 한 번쯤은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꼭 퇴사를 하라거나 백수가 되라는 소리가 아니다. 적어도 나라는 사람이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 알고 달려야 제대로, 건강하게 달릴 수 있지 않겠는가. 맞지 않는 러닝화를 신고 달리다가는 얼마 가지 못해 주저앉아버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동생과 나는 남들이 말하는 소위 '백수'의 시간을 겪었다. 3년 전 동생이 가족들의 온갖 구박을 받으며 백수 시기를 보낼 때 나는 동생의 손에 용돈을 쥐어주면서 동생의 미래를 응원했고, 동생은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언니를 위해 생활비를 더 많이 내고, 가끔 비싼 밥도 사주면서 나를 지지해 주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서로의 시간을 응원하는 이유는 이 시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멈추어가는 시간을 겪어본 사람들로서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이 시간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돈벌이를 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통틀어 편의적으로 '백수'라고 부르고는 한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백수'의 사전적 정의는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이다.


백수가 되는 데 이렇게 많은 자격요건이 필요한 줄 미처 몰랐다. 돈도 한 푼 없어야 하고, 빈둥거려야 하며, 놀고먹어야 하고, 심지어 건달이어야 한다니! '건달'의 사전적 정의는 더욱 놀랍고 심각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난봉을 부리고 돌아다니는...), 더 슬퍼지지 않으려면 여기서 언급을 멈추도록 하겠다. 어쨌든 지금 이 사회가 돈벌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얼마나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지 '백수'라는 단어에서조차 여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놀고먹으면서 빈둥거리기만 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난봉을 부리고 돌아다니는 건달은 더더욱 아니었다. 살면서 그 어떤 때보다 치열하게 몸과 마음을 다독였고, 나를 알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 십 년 동안 내적으로 성숙한 것보다, 최근 일 년간 내적으로 훨씬 많이 성숙했다.


그러니 부정적인 의미의 백수와는 별개로, 잠시 멈추어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이 시기를 새롭게 이름 붙여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자기 관찰의 시기' 정도면 어떨까 한다. 기발하고 깜찍한 명칭이 떠오르길 기대했지만 이보다 더 적절한 명칭은 떠오르지 않았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데서 시작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다소 심리학적인 용어 같긴 하지만, 뭐가 어찌 됐든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백수건달보다는 나은 것 같다.


돈 벌어서 생계를 유지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고 삶의 방향성을 점검하는 일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러니 누군가 당신을 향해 백수라고 비아냥 거린다면 당당하게 윙크하며 ‘, 자기 관찰 !’이라고 말하자. 그리고 더욱 굳건하게 뚜벅뚜벅 나만의 길을 걸어 나가자. 적어도 여기  자매는 당신이 틀리지 않다는  알고 있다.


https://hyeee90.tistory.com/82


* 커버 출처 : https://www.google.com/amp/s/m.insight.co.kr/amp/news/261067







안녕하세요 모범피입니다.


밀리의 서재에서 <백수가 된 모범생의 각성기> 포함 브런치북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 20편이 공개되었습니다.



밀리의 서재 오리지널 <백수가 된 모범생의 각성기> 에서는 브런치 최종 수정 원고 및 추가 원고, 그리고 귀여운 일러스트까지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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