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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람 Oct 12. 2020

도쿄 츠타야 서점에서

원하는 삶의 모습을 보다

----여기서부터는 미리보기만을 제공합니다---




동생과 함께하는 도쿄 여행 날이었다. 나는 츠타야 서점에서 약간의 당황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도쿄에 가면 꼭 츠타야 서점에 가보라고 추천해줬는데 나는 금방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서점 건물이 울창한 나무들에 둘러 쌓여 있는 것도 근사했고, 책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물건을 함께 판매하며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컨셉도 멋졌지만, 딱 거기까지라고 느꼈다. 어쩐지 나만 이 곳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약간의 자괴감마저 들었다.





오랜만에 얻은 긴 휴가였다. 여행 중 하루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지만 9월의 도쿄는 아직 한여름처럼 뜨거웠고, 나는 전날 도쿄 디즈니 씨(Disney Sea)에서 에너지를 많이 소진한 상태였기 때문에 조금 피곤했다. 2층 음반 코너 구석 자리,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 동생에게 혼자 서점을 구경하고 오라며 등을 떠밀었다. 잔잔하게 들려오는 클래식은 마치 자장가 같았고, 곧 스르르 잠이 몰려왔다.


얼마나 졸았을까. 곧 돌아올 거라 예상했던 동생은 웬일인지 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어디냐고 독촉의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메신저의 숫자 1은 도통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슬슬 배고픔이 밀려왔고, 호텔 근처 맛집의 스시와 맥주만이 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결국 동생을 직접 찾아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ART/DESIGN 섹션에서 동생의 뒷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저 녀석은 내 연락도 씹고 도대체 뭘 하는 걸까. 사람이 배가 고프면 누구나 조금은 예민해지는 법이다. 나는 약간의 앙심을 품고 그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하지만 나는 쉽게 동생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가끔 무엇인가에 몰입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이유 없이 숙연해지기 마련인데, 동생의 뒷모습에서 그와 비슷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동생은 가끔 주저앉거나 까치발을 하기도 하며 그 큰 책장에 꽂힌 책을 하나하나 다 들여다볼 기세였다. 그녀에게 알아볼 수 없는 일본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닌 듯했다. 나는 선뜻 말을 붙일 수 없어 주변에서 조금 서성거렸다.


도쿄에서 와본 곳 중에
여기가 제일 마음에 들어.



얼마 뒤, 동생은 눈을 반짝거리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분명 여행 중 제일 신나보이기는 했다. 동생은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서적을 잔뜩 사갈 거라고 이야기하며 진심으로 설레 하고 있었다. 이미 그녀의 손에는 프란시스 베이컨과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트북, 그리고 두꺼운 일본 광고 디자인 서적이 여러 권 들려 있었다.


문득 굉장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거창하게 집이나 차를  것도, 억대 연봉 계약을  것도 아니었지만, 여행지의 서점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예술 서적을 구경하는 것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과 놀이가 일치하는 , 그래서 가슴 설렐  있는 삶이라면 정말 행복하겠구나. 어쩌면 이것이 내가  꿈꿔왔던 삶의 모습이겠구나.’


유시민 작가가 좋아하는 놀이를 직업으로 삼으면, 그 인생은 절반 성공한 것이라고 했던가. 방금 그런 인생을 바로 앞에서 목격한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동생은 삶이 조금 지칠 때에도, 입버릇처럼 ‘파리의 어느 카페에 혼자 앉아 그림이나 그리고 싶다’라고 말하곤 했다. ‘미술'은 동생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큰 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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