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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치기로 했다

타협이 아니라, 계속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by 피터의펜

매주 가던 기타 학원을 2주에 한 번으로 줄였다.


처음 기타를 배운다는 기대감, 그리고 제법 괜찮은 기타를 중고로 직접 사 왔을 때의 그 대단했던 기세가

이제는 약간 꺾였다.


그래도 기타를 배우고 연습하는 일은 여전히 재밌다. 처음에는 손끝이 아파서 줄을 제대로 잡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별다른 제약이 없다. 물론 몇몇 어려운 코드에서 박자를 놓치기는 하지만 적당히 연주하면서 즐기고 산다.


그게 또 연습이기도 하다. 당장 내가 대단한 기타리스트가 되려는 꿈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적당히 기타를 곁에 두고 음악처럼 살면 되는 거다.


아이들을 챙겨야 할 일도 있고 생업전선에서 물러설 수도 없으니, 기타와 현실의 중간쯤에서 균형을 맞추는 법을 익히고 있다.


처음엔 제법 잘해왔는데, 바쁜 일정이 겹치면서 순간 느슨해진 것도 있다. 물론 연습을 해도 생각만큼 실력이 늘지 않는 현실을 조금은 직시하게 된 것도 있다.


결국에는 기타에 쏟는 노력과 시간을 조금 줄이고 현생을 돌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포기한 건 아니다. 매일 같이 기타를 손에 쥐고 코드 변환과 리듬 연습, 그리고 아르페지오 주법을 번갈아 가며 루틴처럼 연습한다.


아이들이 시험기간에 들어간 것도 하나의 이유다. 앓는 소리를 내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거실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앞에 두고 한가롭게 기타를 치고 있기도 좀 애매하다. 꼭 자기들 방은 놔두고 굳이 거실로 나와 앉으니, 그 옆에서 소리를 내기가 괜히 미안하다.


어쩌면 진짜 이유는 그거다. 내 소리에 자신이 없는 것.


공부야 음악 들으며 해도 되는 건데, 내 기타 소리가 음악이냐 소음이냐를 직접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손끝에는 굳은살이 남았다. 그건 포기의 흔적이 아니라 끝까지 버텨온 시간의 증거다.


그리고 그 굳은살 덕분에 요즘은 냄비 뚜껑 정도는 맨손으로도 거뜬히 잡는다. 이게 다 기타 덕분이라면, 나쁘지 않다. 기타를 배우며 얻은 게 연주 실력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가끔은 저녁 준비하다가 혹은 설거지 끝내고 손을 털다 말고 기타가 세워져 있는 벽 쪽으로 눈길이 간다.


그럼 그냥 가서 줄 하나를 퉁- 하고 건드린다.

별 뜻은 없지만, 그 짧은소리 하나가 괜히 기분을 고쳐놓는다.


아이들이 아직 깨어 있을 때는 굳이 치지 않는다.

그 대신 손끝의 굳은살을 만지작거리며, 소리 없는 연습을 한다.

마치 줄이 없는 기타를 치듯, 조용히 박자를 세고 코드를 눌러본다.


그렇게 오늘도, 조금은 쉬면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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