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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얘기 꺼냈다가 망한 날

아빠의 역할을 다시 생각한 날

by 피터의펜

애니메이션 영화를 본 뒤로, 우리 집에서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아이들이 일본어에 묘하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확한 뜻은 모르면서도 들리는 대로 흉내를 내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성우처럼 목소리를 낮게 깔아 대사를 따라 한다.


"오니니 나레, 큐쥬로-"


우리도 그 장면이 떠오르면서 한참을 웃었다.


한동안은 한국 영화만 보려고 했는데, 극의 흐름과 상관없이 '욕설'이 너무 많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좀 찜찜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애니메이션을 제안했다. 나쁜 말이라고 해봐야 "빠가야로" 정도겠지 싶어서, 귀도 조금 편해질 거라 믿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게 스토리는 탄탄하고, 그림체는 환상적이고, 캐릭터는 매력이 철철 넘친다. 우리는 금세 푹- 빠져들었고, 아이가 대사를 따라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또 이게 부모라는 자리가 참 묘하다. 방금 본 주인공을 따라 하며 일본어 한두 문장을 내뱉을 때까진 나도 세상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흐뭇하게 바라봤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빠, 이건 무슨 뜻이야?"

"글쎄다. 아빠도 일본어는 잘 모르니깐."

"알았어. 내가 찾아볼게."


그때, 나는 또 쓸데없는 욕심과 불필요한 조급함에 사로잡혀 결국 한마디를 내뱉고 말았다.


"영어를 그렇게 한번 해봐."


나는 분명 웃으면서 말했고, 가벼운 조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이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공기도 싸늘해졌고, 방금까지의 흥은 그대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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