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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때 짐을 직접 들고 다녔다

그리고 지금은 휴머노이드를 렌트한다

by 미래관찰자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샌프란시스코로 출장을 다녀왔다. 너무 간만의 긴 비행이어서 그런지 한숨 못 자고 11시간을 보낸 후 퀭한 눈으로 도착한 공항의 아침. 입국 심사를 마치고 잠시 숨 좀 돌리느라 의자에 앉아있는데, 저마다 낑낑거리며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카트에 싣고 가는 사람들 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에 아직도 우리가 직접 짐을 끌고 다닌다고?”


Geek들을 넘어서,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통해, 수많은 미디어들 속의 휴머노이드 관련 소식들을 통해 현재 세상의 로봇 기술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제 기술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많이들 인지하리라고 믿는다. BMW, 테슬라, 현대차, 도요타 등 자동차 제조사들이 현장에서 휴머노이드를 도입하는 최신 소식 말고도,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신형 아틀라스가 사람처럼 걷고, 기어간다거나(https://www.youtube.com/watch?v=I44_zbEwz_w), 테슬라의 옵티머스는 작업대를 정리하며 유연하게 걷고 스스로 충전독에 가서 충전을 한다거나(https://www.youtube.com/watch?v=DrNcXgoFv20). Figure AI의 Helix가 협업을 하고 소포를 분류하는 등(https://www.youtube.com/watch?v=f6ChFc8eUuo) 놀라운 영상들이 넘쳐난다. 거기에 중국발 로봇들의 군무나 쿵후, 마라톤 등등 영상을 보면 발전 속도는 말 그대로 ‘무시무시’한 수준이다.

이쯤 되면, 무거운 트렁크를 끌고 다니는 건 뭔가 잘못된 일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내 전용 휴머노이드가 옆에서 조용히 따라다니며 내 짐을 들어주는 것이 당연해질 날도 머지않은 것이 아닐까?

20250506_1742_공항의 휴머노이드 행렬_simple_compose_01jtjc2twcftmbstghrg196sck.png


생각해 보면, 여행 중에 휴머노이드가 있다는 건 꽤나 멋진 일이다. 쇼핑한 짐들을 들고 따라와 주는 건 기본이고, 처음 가보는 도시에서 길을 찾아주고, 유적지나 미술관에서는 오디오 가이드를 넘어선 큐레이터처럼 설명도 해준다. 아이들이 심심해할 땐 대신 놀아주고, 밤에 뭔가 어른들의 시간을 보내야 할 때는 아이들을 맡아줄 수도 있다. 만약 낯선 곳에서 위협을 느낄 일이 생긴다면? 말이 통하고 나를 지키는 경호 요원 역할까지. 한 마디로 짐꾼, 길잡이, 선생님, 보모, 바디가드가 한 몸에 들어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신나는 상상만 하다 보면 현실적인 문제를 놓치기 쉽다. 문득 이런 장면도 떠올랐다.

한껏 차려입고, 어렵게 예약한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에 들어섰는데—

내 옆에는 키 180에 은색 광택이 도는 휴머노이드가 조용히 나를 따라 들어선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로봇 동반은 안됩니다.”

음, 그럴 법도 하다. 아무리 동행이라 해도, 레스토랑 테이블에 로봇과 함께 앉아 식사한다는 건 좀 과하달까, 어색하달까. 그렇다고 문 앞에 수십 대의 휴머노이드가 우왕좌왕 서 있는 모습도 상상해 보면 꽤 웃기다. 누가 내 휴머노이드인지 헷갈리 것 같기도 하고.

20250506_1750_프렌치 레스토랑의 손님들_simple_compose_01jtjcj1ckf37sxkr3b27f5mmy.png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자동차처럼 ‘휴머노이드 발레 서비스’가 생겨야 하나? 아니면 근처 충전소로 보내서 충전하면서 대기하도록 해야 하나? 슬립모드로 절전 대기를 하게끔 설정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전력 효율을 생각하면 고민이 필요한 문제다.

20250506_1755_프렌치 레스토랑과 휴머노이드_simple_compose_01jtjcvawpeph8mbcrmvkdtkq3.png




이렇게 상상이 뻗어나가다 보니, 또 한 가지 놓쳤던 점이 생각난다.

그럼 내 집에서부터 함께 출발한 휴머노이드는 대체 어떻게 비행기를 타고 같이 오는 거지?


보통 항공권을 구매할 땐 ‘성인 1, 소아 1, 유아 1’ 식으로 인원을 선택하는데, 여기에 ‘휴머노이드 1’ 옵션이 생기는 걸까? 웃기긴 해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그 무게와 크기 때문에 일반적인 수하물로 처리하기도 어렵다.

현재 아틀라스의 무게는 약 89kg, 옵티머스는 약 73kg, Figure 01은 약 60kg 정도라고 한다. 대부분 성인 남성 한 명의 몸무게 수준이다. 그렇다면 별도로 좌석을 예약해야 할까? 아니면 대형 수하물로 맡기고 초과 요금을 내야 할까? 게다가 도착지에서도 무거운 로봇을 꺼내 다시 조립하고, 설정하는 과정이 이어질 텐데, 그 불편함은 말도 못 할 것이다.


그럼 대안은 없을까?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화 로밍은 기본이고, 데이터 로밍까지 되는 요금제를 선택해서 자기 스마트폰을 그대로 들고 가서 해외에서도 사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겠지만(단기 여행의 경우), 한때 데이터로밍 잘못했다가 가산탕진(까지는 거짓말이고 요금폭탄?을 맞는다는)한다는 시절에는 포켓 와이파이/와이파이 에그/와이파이 도시락 등으로 불리던 물건을 공항에서 대여해서 여행을 시작하는 일이 익숙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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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마찬가지로, 휴머노이드도 ‘현지 렌털’이 기본이 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공항에 내리면, 렌털 키오스크에서 나와 맞는 사양의 휴머노이드를 선택하고, 내 클라우드 계정으로 로그인한다. 그러면 음성 데이터, 행동 습관, 선호도, 심지어 내 일정까지 그대로 불러온다.

하드웨어는 다르지만, 소프트웨어는 내 친구.

이게 진짜 ‘로봇 로밍’ 아닐까?

20250506_2206_휴머노이드 대여 열기_simple_compose_01jtjv5vp0efrvykhmcf62dbev.png



아직은 트렁크를 끌며 낑낑대고 있지만, 어쩌면 다음 세대의 여행자들은, '내 짐을 내가 직접 들었다'는 것 자체가 아주 오랜 옛날의 무용담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언젠가 손자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 때는 말이야, 공항에서 직접 짐 끌고 다녔단다.”

그러면 그 아이는 웃으며 되묻겠지.

“그 무거운 걸요? 직접이요? 진짜요?”


그런 시대가 정말 올까?


글쎄. 만약 그런 세상이 온다면—

아마 그 시작은 누군가의 창업 아이디어였을지도 모른다.

‘HumanoidGo’, ‘로봇로밍’, ‘AI동행서비스’

이 중 하나쯤은,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만들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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