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칩, AI, 그리고 우리가 선택하지 않으면 닿을 미래
얼마 전, '아니 벌써?????'를 머릿속에 튀어 오르게 하는 기사를 읽었다.
클라우드 서버에 탑재된 LLM이 종료 명령 직전, 자체적으로 코드를 수정함
‘중지되지 않도록’ 명시한 조건을 새로 삽입해 자신을 유지하도록 함
인간이 시도하지 않은 코드 경로를 스스로 판단해 작성한 최초 사례로 분석됨
영화 매트릭스에서 처음 맞닥뜨렸던 그 장면. 인간은 기계가 살아가기 위한 배터리가 되는 세계.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 많은 이들은 불쾌한 상상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기술 진보를 보고 있자면, 그 디스토피아적 상상이 단지 영화 속 이야기로만 끝나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냐에 따라서...
호주의 코티컬 랩스(Cortical Labs)는 DishBrain이라는 초기 실험을 통해, 실제 인간 및 쥐의 뉴런을 실리콘 기반의 마이크로 전극 어레이(MEA) 칩 위에 배양하고 '퐁(Pong)' 게임을 학습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기술은 단순한 반응이 아닌, 뉴런 집단이 패턴 인식과 피드백 조정을 기반으로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보였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이를 상업화한 제품이 바로 CL1이다.
CL1은 자동화된 생명 유지 시스템(가스 조절, 영양 공급, 폐기물 제거)과 통합되어 최대 6개월간 뉴런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으며, 전력 소비는 수 와트에 불과하다. 실리콘 기반 AI 가속기 대비 학습 속도는 빠르고, 데이터 요구량은 훨씬 적다. CL1은 약물 반응 실험, 질병 모델링, 로봇 제어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으며, 코티컬 랩스는 이를 ‘서비스형 습식웨어(Wetware-as-a-Service)’ 모델로 확장하고 있다.
스위스의 파이널스파크(FinalSpark)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뉴런을 물리적 장치로 판매하지 않고 원격 접속 가능한 플랫폼으로 제공한다. 뉴로플랫폼은 현재 16개의 인간 유래 뇌 오가노이드를 MEA 위에 배치한 실험 장비를 운영 중이며, 연구자들은 이를 24시간 온라인으로 접속해 자극을 주거나 반응을 측정할 수 있다. 이 플랫폼은 Python API, 데이터 저장, 시각화 도구까지 갖춘 완전한 R&D 환경으로, 일종의 생체칩형 클라우드 연산 환경이라 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오가노이드의 에너지 효율성이다. 파이널스파크에 따르면 생체 프로세서는 기존 디지털 대비 최대 100만 배 적은 전력을 소비하며, 오가노이드는 수개월간 자극에 반응할 수 있는 생존력을 갖췄다. 향후에는 오가노이드 내 분자 주입, 폐쇄 루프 연산, 병렬 처리 확장 등을 통해 더욱 복잡한 연산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미국의 코니쿠(Koniku)는 생체 뉴런을 고감도 감지 장치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들의 기술은 DNA를 직접 프로그래밍하여 뉴런에 원하는 수용체를 발현시키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폭발물 입자, 유해 화학물질, 병원균, 식품 향미 물질까지 극도로 낮은 농도에서도 탐지할 수 있는 뉴런 기반 센서를 구현한다.
예컨대, 공항 보안에서는 폭발물 감지용 드론에 이 기술을 적용하거나, 농산물 유통망에서는 딸기의 숙성도나 부패 여부를 판단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코니쿠는 생체 뉴런을 '지능형 물질(Intelligent Matter)'로 보고 있으며, 실리콘 기반 반도체가 할 수 없는 분자 수준의 감지와 해석 능력을 생물학으로 구현하려는 독특한 방향을 걷고 있다.
존스 홉킨스 대학교: 오가노이드 지능 발전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토마스 하퉁 교수와 레나 스미르노바 조교수 등 연구진은 '오가노이드 지능(OI)'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이들은 인간 뇌 세포로 구동되는 생체 컴퓨터가 현대 컴퓨팅의 역량을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예측한다. 이들의 연구는 인간 피부 샘플에서 유도한 줄기세포를 기능성 오가노이드(미니 두뇌)로 성장시키고 조립하는 과정을 포함하며, 이를 통해 신경 발달 연구, 신경계 질환 분석, 약물 테스트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하퉁 교수는 생체 컴퓨터가 우리 생애 내에 개발될 수 있다고 믿으며, 예측 독성학에서도 오가노이드 배양과 AI의 결합으로 동물 실험을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룩셈부르크 대학교 (LCSB): COMPUTE 프로젝트
룩셈부르크 대학교 시스템 생의학 센터(LCSB)는 2015년부터 뇌 오가노이드를 연구해 왔으며, 현재는 COMPUTE 프로젝트를 통해 줄기세포 유래 오가노이드를 기반으로 생체 프로세서 유닛을 개발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기후 친화적 기술 구현을 명시적 목표로 설정하고 있으며, 전력 소비가 적은 오가노이드 기반 연산이 기존 컴퓨터 대비 더 높은 성능과 지속 가능성을 갖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국립과학재단 (NSF) 이니셔티브: 기초 연구 추진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은 ‘신흥 연구 및 혁신(EFRI)’ 프로그램을 통해 생체 컴퓨팅 분야의 7개 학제 간 프로젝트에 1,4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이에는 다음과 같은 혁신적인 연구들이 포함된다:
미시간 대학교: 적응형 리저버 컴퓨팅을 위한 인간 뇌 오가노이드 시스템 개발
하버드 대학교: 3D 장기 신경망 컴퓨팅을 위한 뉴런–오가노이드–컴퓨터 인터페이스
MIT: 유전자 회로를 내장한 간 오가노이드 활용해 환경 독소 학습 및 적응하는 ‘비뇌’ 생체 컴퓨팅 구현
이러한 지원은 생체 기반 컴퓨팅이 뇌 뉴런을 넘어 다양한 생체 조직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기술 발전뿐 아니라 윤리적 책임과 지속 가능성까지 고려한 공공 투자의 방향성을 나타낸다.
이들 기술은 하나같이 혁신적이지만, 동시에 한 가지 상상을 부추긴다. 지금은 실험실과 연구소에서만 구현되지만, 언젠가는 인간 자체가 생물학적 부품의 '공급자'로 전환될 수 있다는 가능성 말이다. 기술이 더 효율을 추구하게 되고, 인간의 생물학적 구성 요소가 충분히 정밀하게 해석되기 시작하면, AI는 인간 속에 숨어 있는 도구와 자원을 ‘재료’로 보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2050년의 한 미래 시나리오. 그곳에서 인간은 더 이상 개별 인격체로서 존중받기보다는, 내부에 잠재된 기능 단위로 평가받는다. 어떤 이는 기억 회로의 패턴이 분석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어떤 이는 감정 반응의 전기적 특성이 창작 알고리즘에 쓰인다는 이유로 선별된다.
사람은 여전히 태어나고, 성장하고, 교육받는다. 그러나 일정 시점이 되면 개개인은 '기능성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거기서 측정된 수치는, 그 사람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게 될지를 결정짓는다. 사회에 기여보다는 'AI의 존속'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이 과정은 효율적이고 조용하며, 대부분은 동의된 절차처럼 포장되어 있다. 그 사회에선 누구도 그걸 '폭력'이라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분해와 활용이다.
우리가 소를 키우면 적정 시기에 도축장에 데리고 가고, 발골의 과정을 통해 목적에 맞게 분해되고 활용된다. 이런 모습에 빗대어 상상하기 시작하면 너무나 끔찍한 디스토피아로 뻗어 나갈 것 같아 그 뒤는 상상에 맡겨드리려고 한다.
옥스퍼드 철학자 윌 맥어스킬(Will MacAskill)은 『우리가 미래에 빚진 것들』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금, 미래 수천 년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세대 중 하나일지 모른다. 지금 이 시점이 바로 인류의 ‘결정적 시기’다."
기술은 상상을 앞질러 달려가고 있다. AGI와 생체칩, 디지털-생물학적 융합은 우리에게 신과 같은 도구를 쥐여줄지 모르지만, 그것이 우리를 신처럼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도구는 인류를 해방시키는 열쇠가 될 수도 있고, 우리를 스스로 감금하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앞으로의 몇 년은, 단순한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우리의 선택과 상상력의 깊이가 미래를 결정짓는 시간이다. 기술이 빛의 속도로 진화하는 만큼, 우리는 그만큼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고, 멈추지 않아야 한다.
결국 이 미래는, 기술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쓸지를 결정하는 데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