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른이 된다는 것

얼마 전, 인터넷에서 눈에 띄는 글 하나를 보았다.

“요즘 직장에서는 나이 많고 직급 높은 사람을 굳이 존중할 필요가 없다.”

짧은 한 줄짜리 문장이지만, 그 아래 달린 수백 개의 댓글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 중 한 댓글이 오래도록 눈에 남았다.


“어른이 되는 게 쉽지 않죠. 신체의 나이만 먹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나이든 사람들은 젊은 사람에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지금의 환경을 만든 어른들에 의해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날카로운 비판처럼 들렸지만, 동시에 고백처럼도 느껴졌다. 누군가는 ‘맞는 말’이라며 공감했고, 누군가는 ‘싸가지 없는 소리’라며 분노했다. 나는 그 댓글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어른으로 살고 있는가.”


30대 후반에, 직장생활은 어느새 십 년을 훌쩍 넘겼고, 회의실에 앉아 있는 후배들의 얼굴이 점점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처음 이 세계에 들어왔을 때, 조직에는 늘 고집 센 선배들이 있었다. “너는 아무 말 말고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해”로 끝나는 조언들. 그때 나는 그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절대 저런 어른이 되지 않겠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나는 그 선배처럼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건 말이지, 내가 예전에 해봤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 순간만큼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시간은 우리를 어른으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하는 일은, 그저 껍데기를 덧씌우는 일에 불과했다. 껍데기 안에 무엇이 담겼는지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 방식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다름을 틀림이라 말하지 않고, 다름을 통해 함께 걸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 그래서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 자신을 가장 조심스럽게 돌아보는 일이다.


그 댓글을 다시 읽는다. “신체의 나이만 먹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짧지만, 가장 어려운 말. 시간은 저절로 흐르지만, 어른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언젠가 누군가가 내 등을 보고 “그래도 저 사람은 함께 걷는 사람이었다”고 말해준다면, 그때서야 나는 어른이라 불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반드시 겪어야만 알 수 있는 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