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은 원하는 데로 가고 있는가?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키건 소설

by 따시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키건 소설 홍한별 옮김 다산책방


<당신은 원하는 데로 가고 있는가?>

아파트 창문 밖으로 도로 공사장이 내려다보인다. 정확히는 개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공사다. 2차선을 4차선으로 넓히면서 기존 다리 옆에 새로 하나 놓았다. 기존 다리는 보수하는 중이다. 저 길 따라 가면 도척 IC 가 나오고 그 길에 올라서면 우리나라 전국 어디든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

모든 길은 통한다. 조금 돌아가든지, 질러가든지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멈춰 있다. 길이 없어서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멈추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는 길을 몰라서 목적지를 못 찾을 일도 없다. 내비게이션이 아주 상세하게 가르쳐 준다.


길은 거기에 있고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P.54)라고 노인은 말한다.

어디로 가나? 내가 원하는 데는 어디일까? 정말 내가 원하는 데로 가도 되나? 한 가정의 가장이자 다섯 아이의 아버지는 길이 있어도 쉽게 갈 수 없다. “그런 일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아내의 주장에 슬쩍 물러날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가는 길은 혼자만의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이유를 핑계로 삼아 묵인하고 산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라는 아내의 말처럼 내 일이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산다. 그러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까닭 없이 마음이 불안할 때가 있다. 곱씹어 봐도 어떤 큰일이 없었는데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때가 있다. 대부분 그런 일은 아주 사소한 일 때문이다. 퉁명스럽게 끊은 딸의 전화 때문이거나 길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노인을 바쁜 시간 때문에 외면하고 왔을 때. 그런 날은 종일 마음이 찜찜하다. 우리가 경험하는 큰일 중 많은 부분은 아주 사소한 일 때문에 발생한다. 부부싸움도 별것 아닌 것에서 시작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일상은 사소하게 시작된다. 사소한 것들이 모여 우리의 하루가 되고 계획이 되고 꿈이 되고 미래가 된다. 사소한 것 하나로 공들여 쌓아 놓았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허물어지기도 한다. 사소한 것은 전혀 시시하지 않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은 얇은 책이다. 문장도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힌다. 한 번 읽고 나면 뭐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두 번 읽고 나면 뭔가 손에 잡힐 듯한데 잡히지 않는 갑갑함이 생긴다. 그래서 또 읽는다. 작가의 마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P.120)의 이야기다.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P.119)던 펄롱의 마음이 드디어 느껴진다. 옮긴이의 권유처럼 여러번 읽기를 권한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4화항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