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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다음

정한아 소설 <<3월의 마치>>

by 따시

사람들이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 그것은 다만 죽어가는 과정이라는 것. 매끈하던 선이 뭉개지고 지워지는 과정, 조밀하던 이목구비가 흐물거리고 늘어지는 과정, 환했던 빛이 점차 희미해지는 과정. (p.213)


우리는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각각의 섬으로 살아간다. 이만큼 사는 동안 온몸으로 부딪친 파도의 흔적은 곳곳에 흉터로 남아있다. 피부에, 마음에, 몸속 장기에. 섬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파도와 맞서는 일이다. 어떤 파도는 커다란 상처를 남긴다. 두 번 다시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상처다. 상처는 오래된 흉터처럼 조용히 엎드려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면 쿡쿡 쑤시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해 여름, 남편과 아이들은 바닷속에 있었고 나는 모래밭에 앉아 있었다. 차가운 물에 몸이 젖는 것이 싫어 바닷가에서도 웬만해선 물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어쩌다 종아리 정도를 적실 뿐이다. 파도는 잔잔하다. 아이들이 자꾸만 손짓한다. 둥그런 튜브에 몸을 올리고 넘실대는 파도를 타는 모습이 썩 재밌게 보인다. ‘그래, 한번 들어가 보자’ 아이들이 건네준 튜브에 올라타려고 몸을 구푸리는 순간 내 온몸을 강타해 온 것은 파도였다. 순식간에 나는 바닷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신이 혼미했다. 겨우 몸을 일으켰는데 세상이 부윰하게 보인다. 얼굴을 강타한 파도가 상처를 남기고 안경을 가져갔다. 파도는 멀리서 바라볼 때가 멋있다. 가까이 닿으면 뭔가 흔적을 남긴다.


그해 가을. 수능을 하루 앞둔 저녁. 어둑해졌는데도 활짝 열어젖혀진 학교 후문이 눈에 들어왔다. 경비원의 손길이 여기까지 못 닿았는가 보다. 평상시 같으면 정문으로 나가면서 말했을 텐데 그날따라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 무거운 쇠문을 닫으며 뒷걸음치다가 발이 허공으로 떨어지면서 두어 계단 아래 콘크리트 위로 자빠졌다. 커다란 파도에 떠밀린 것처럼 순식간에 생긴 일이다. 창피한 생각에 서둘러 일어나려고 했다.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그런데 다리가 흐느적거린다. 내 몸에 붙어 있는데 내 통제를 거부한다. 고관절 골절이었다. 조금도 움직일 수 없이 아팠다. 아이 낳는 고통은 고통도 아니다. 꿈일 거라 생각했다. 현실일 리 없다고 부정했지만 119에 실려 갔다. 삶의 파도는 늘 예고 없이 나타난다. 그날의 파도는 내 몸에 지렁이처럼 긴 흔적을 남겼다.


그해 겨울. 새벽부터 눈이 내린 아침. 출근을 망설이다가 차를 끌고 집을 나섰다. 큰길로 나서니 눈이 거의 녹아있다. 이 정도면 출근길이 어렵지 않겠다. 직진해서 신호를 기다리면 10분, 우측 샛길로 가면 그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머뭇거림 없이 샛길로 빠졌다. 작은 방지턱을 하나 넘었다. 방지턱을 넘을 때는 살짝 브레이크를 밟고 거의 멈출 때쯤 가속페달을 밟으면 쉽게 넘어갈 수 있다. 두 번째 방지턱을 넘을 때였다. 가속페달을 살짝 밟았는데 갑자기 차가 요동을 치며 앞으로 나간다. 굽은 길을 직진 한다. 브레이크는 전혀 소용이 없다. 다리 아래 경사진 교각으로 앞바퀴가 올라간다. 이대로 뒤집히나? 숨죽이고 있는데 다행히 뒤로 미끄러진다. 롤러코스터 같다. 차가 저 혼자 움직인다. 다시 정면으로 돌진. 눈 깜짝할 사이에 개울물에 거꾸로 처박혔다. 튼튼한 차체 덕분에 내 몸은 멀쩡했지만 차는 폐차되었다. 그날의 파도는 트라우마를 흔적으로 남겼다.


지난봄. 건강검진 결과 폐에 결절이 있다는 소견이 나왔다. 의사는 폐결핵을 앓은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런적은 없지만 어렸을 때 매우 아팠던 기억은 있다. 50년 전 이야기다. 그때 나는 죽을 만큼 아팠다. 돌팔이 의사의 오진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병을 키웠다. 큰 병원으로 갔을 때 담당 의사는 살 운명이라서 이제라도 온 것이라고 했다. 의사는 그때 앓았던 흔적일 가능성을 말했다. 흔적은 몸의 거죽에만 생기는 줄 알았다, 파도는 섬의 외부뿐 아니라 깊숙한 곳에도 점점이 흔적을 남겼다,


고관절 골절 수술 후, 3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지팡이에 의존하며 움직였다. 그나마도 완전히 끝난 수술은 아니었다. 2년이 되기 전에 몸속에 부목으로 대어놓은 쇠 보조물을 제거하는 2차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한 다리엔 통증이 잦았다. 밤이면 더 심해져서 잠을 자는 것도 어려웠다. 신경통처럼 욱신욱신 쑤셨다. 어떤 사람은 고관절 수술 후 다리를 절게 되었다는 말이 들려온다. 통증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장애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수없이 인터넷 검색을 하며 생각해 낸 재활은 걷기였다. 그때까지 나는 걷는 것을 싫어했다. 특별히 걸을 일이 많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몸이 조금 회복되었을 때부터 노곡천 천변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무리 똑바로 걸어도 자꾸 기울어졌다.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 1시 학교 운동장을 열 바퀴씩 돌았다. 따뜻한 햇볕이 두 팔로 나를 안아 주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 걷고 또 걸었다.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한다. 숲속을 걷노라면 마음이 몽글몽글 해진다. 이른 아침 징검돌에 앉아 물소리를 듣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이다. 차가운 냇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사유한다. 어제를, 오늘을, 내일을. 살면서 부딪혔던 파도가 반드시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으로 인해 다른 삶으로 나아갔다. 눈에 보이는 몸의 상처는 치료하면 된다. 마음에 생긴 상처는 지나치기 쉽다. 파도를 헤치고 나왔을 때 반드시 돌아봐야 할 것은 마음이다. 마음은 스스로 돌봐야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며 몸의 상처만큼이나 아리고 쓰렸을 마음을 보듬어야 한다. 단단해진 마음은 몸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 다음 파도가 두렵지만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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