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언 고닉 소설 <<사나운 애착>>
그럴 수도 있지. 엄마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p.115)
“나 좀 데려다줘요”
“어디 가시게요?”
“우리 엄마에게 갈려고요”
어느날 저녁 순자 씨가 간절한 몸짓으로 말한다. 인지능력 저하로 낳은 자식조차 잊어버렸지만, 없는 기억 속에서 떠나지 않는 한 사람. 우리 엄마.
91세 순자 씨는 오늘도 돈 벌러 나갔다. 9 출5 퇴다. 은퇴하여 실업자가 된 며느리는 집에서 순자 씨를 배웅하는 일로 일과를 시작한다.
“오늘은 안 가면 안 돼요?” 순자 씨가 응석을 부린다.
“에이 어머니 그러면 애써 잡아놓은 일자리를 다른 사람이 차지할 텐데. 그래도 괜찮아요?
오늘 벌어오는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기로 했잖아요.”
그렇게 순자 씨를 통근 차에 태워 보내고 나서야 주섬주섬 아침을 챙겨 먹는다. 옷이며 이불이며 침대 매트까지 몽땅 걷어 세탁기로 가져간다. 오늘은 주무시는 채로 큰일을 보셨다. 서둘러 샤워를 시키고, 세탁물을 처리하느라 아침내 분주했는데 정작 순자 씨는 더없이 느긋한 표정으로 앉아 주간 보호센터에 안 가면 안 되느냐고 성화를 부리고 있다. 딱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투정 부리는 미운 다섯 살 아이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는 말이 있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기르지 못한다.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새엄마보다도 껄끄러운 엄마다. 나를 낳아주고 32년간 함께 살았던 향화 씨는 엄마고, 남편을 낳았고 키워주었다는 이유로 내게 돌봄을 의탁하고 있는 순자 씨는 시어머니다. 요즘은 가끔 헷갈리기도 한다. 급하면 엄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순자 씨를 낳지 않았지만 기르고 있다. 우리 엄마가 나를 기를 때 했던 그것처럼 젖은 기저귀를 갈아 주고, 한밤중에 깨워 오줌을 누이고, 밥을 챙겨 먹이고, 옷을 입히고 벗겨준다. 몸을 씻기고 물이며 간식이며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수발해 준다. 순자 씨는 나의 품에서 자라가는 중이다.
나는 내 엄마 향화씨와 32년을 살았고, 시어머니 순자 씨와 32년을 살았다. 향화씨는 32년간 나를 먹이고 씻기고 키웠고 나는 32년 동안 순자 씨를 먹이고 씻기고 키우면서 살고 있다. 내 대부분의 기억은 순자 씨에 대한 기억이고, 향화씨에 대한 기억은 배은망덕하게도 가물가물하다. 향화 씨에겐 받은 것뿐이고 순자 씨에겐 준 것뿐이다.
비비언 고닉 소설 <<사나운 애착>>에서 딸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엄마의 말에 “그럴 수도 있지. 엄마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p.115) 라고 말한다. 나는 한 번도 엄마에게 그렇게 해 준 적이 없다. 엄마가 조금만 이상한 말을 하면 마치 훈육주임이라도 되는 양 엄마 말이 틀린 이유를 조목조목 들추며 타박했다.
그때 나도 그랬더라면.
엄마가 고향 친구인 응 아줌마와 말다툼했을 때 “엄마가 잘한 거야” 무조건 엄마 편을 들어주었더라면 속상한 와중에도 엄마의 마음은 따뜻했을까?
허름한 호텔 커피숍에서 두 엄마가 상견례를 하던 날 “나는 친정아버지 있는 집 딸을 며느리로 맞고 싶었어요. 우리 아들이 장인 사랑 듬뿍 받고 살기를 바라서”라고 말씀 하시던 순자 씨의 말을 그저 긍정하면서 웃기만 하던 엄마에게 “엄마도 똑같이 말하지 왜 바보처럼 웃고만 있었어?”라고 화내지 않았더라면 그 저녁 엄마는 좀 덜 쓸쓸했을까?
둘째 낳고 산후조리 해 주는 향화 씨에게 사사건건 트집잡는 순자 씨 때문에 산후 우울증이 오고 있을 때 “엄마는 왜 그러냐고. 왜 시어머니가 하는 말에 대꾸도 못하냐고” 쏘아붙이지 않았더라면 내가 잠든 밤 엄마 혼자 막걸릿잔을 기울이는 횟수를 좀 덜 수 있었을까?
밤새워 코피를 흘려 수북하게 쌓아놓은 피가 묻은 휴지를 주워 담으며 “왜 깔끔하게 휴지통에 넣지 못했느냐”고 타박하는 대신 엄마를 모시고 빨리 병원에 갔더라면 엄마의 아픔은 조금 덜어졌을까?
읍내까지 왕복할 차비가 없어 아픈 아이를 업고 걷다가 쉬다가 하던 그 여름날, 아프다고 투정만 부리는 대신 “엄마 나 때문에 힘들지?”라는 말을 건넸더라면 엄마의 땀에선 끈적거림이 덜했을까?
엄마랑 둘이 살던 집에서 나 혼자 주민등록을 옮길 때 “그동안 엄마 때문에 편하게 살 수 있었어. 고마워 엄마”라고 살갑게 엄마 손을 한 번 잡았더라면 엄마는 덜 서운했을까?
엄마가, 예쁘다고 “이거 나주라”고 했던 꽃무늬 접시를 뺏어 들고는 “뭘 쓰던 걸 달라고 해. 내가 예쁜 거 사줄게”라고 말하지 말고 “그래 엄마 가져”라고 드렸더라면 엄마는 그 뿌듯함으로 한동안 즐거우셨을까?
연년생 두 아이를 하나 업고 하나 안고 키워주실 때 “엄마 오늘도 힘들었지?” 먼저 엄마 잔에 술을 따라줄 수 있었더라면 엄마는 덜 외로웠을까?
엄마를 보러 갔던 5월. “기운이 없어”라고 엄마가 말했을 때 사골을 사서 냉동실에 넣지 말고 팔팔 끓여 한 그릇 드시게 했더라면 7월에 떠나실 때 조금이라도 더 기운을 차리지 않았을까?
엄마를 일찍 배웅한 딸은 삶의 곳곳에서 문득문득 엄마를 만난다. 그러면서 그때도 지금도 엄마는 듣지 못하는 속엣말을 지치지도 않고 한다.
외출을 준비하던 내가 메는 가방을 보며 “그 가방 좋다. 나 줘라.” 하는 순자 씨의 말에
“이게 맘에 드세요? 그럼, 어머니 하세요”라고 주저 없이 건네줄 때 사실은 엄마에게 끝내 건네지 못한 꽃무늬 코렐 접시가 가슴에 콕 박혀있기 때문이라는 걸 엄마는 모르지?
순자 씨의 생일상을 차릴 때마다 한 번도 엄마의 밥상을 차려본 적 없는 내가 얼마나 엄마에게 미안해했는지 엄마는 모르지?
성격이 살갑지 않다고 순자 씨가 타박할 때마다 “내 엄마에게도 나는 살갑지 않은 딸인데”라고 속엣말을 하며 엄마 뒤로 숨었던 거 엄마는 모르지?
엄마를 배웅하러 화장터에 가던 날 차창 밖으로 보이는 담장마다 능소화가 흐드러져 있어서 그날부터 능소화는 엄마 꽃이라고 이름 붙인 거 엄마는 모르지?
화구 속으로 들어가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도 할 수 있는 말은 “엄마 미안해” 뿐이어서 내가 얼마나 속상했었는지 엄마는 모르지?
밤새 축 늘어진 순자 씨의 젖은 기저귀를 갈다가 문득문득 순자 씨가 엄마에게 했던 못된 말들이 생각나면 슬쩍 한번 꼬집어 줄까, 생각해 보는 거 엄마는 모르지?
한밤중에 부침개가 먹고 싶다는 남편에게 면박을 주고 돌아서다가, 딸이 먹고 싶다는 말에 얼른 부침개를 부쳐준 이유가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였다는 거 엄마는 모르지?
엄마. 최진영은 산문 『어떤 비밀』에서 “몇몇 기억과 상처에서 졸업할 것이다. 시간이 도와줄 것이다. 잊겠다는 게 아니다. 기억하고 간직한 채로 자유로워지고 싶다.(p.366)고 말했어.
나 이제 순자 씨가 내게 주었던 상처에 대한 기억에서 졸업하려고 해. 착한 며느리에서도 이미 졸업했어. 순자 씨는 내가 며느리인 것을 기억하지 못하거든.
그리고 엄마를 그렇게 보낸 못난 딸에서도 졸업하려고 해. 엄마와 나누었던 말과, 일화들이 내 몸과 함께 늙어가느라 자꾸만 흐릿해지고 있어. 이제는 좋았던 것들만 기억하려고 해,
우리 엄마.
엄마의 나이를 지나고, 엄마보다 더 자주 술잔을 기울이면서 늙은 딸은 이제야 생각한다. 엄마도 울고 싶은 저녁이 있었으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