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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타의 러브스토리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

by 따시

여행을 떠난 작은 아이에게서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며칠 전 카렐 대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고가 일어났다는 뉴스를 들은 터라 조금 염려된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작가 보후밀 흐라발은 체코에서 태어나 카렐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독일군에 의해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마흔아홉 살이 되던 해 작가로 데뷔한 그는 작품이 출간되지 못하거나 출판 금지되는 핍박 속에서도 고집스럽게 체코를 떠나지 않았다. 오늘날 체코의 국민 작가로 각광받으며, ‘가장 중요한 현대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한탸는 “책들을 가까이하기 위해 폐지 압축공이 될 생각”을 했다. 만차와 어린 집시 여인과 어머니와 외삼촌 외에 그가 사랑했던 것은 책과 오래된 압축기와 작업이다. 그는 “삼십오 년째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는 이 일이야말로 온전한 러브 스토리.“ 라고 고백한다. 만차는 떠났고, 어린 집시 여인은 나치에 의해 희생되었으며, 어머니와 외삼촌 역시 죽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책과 오래된 압축기와 작업뿐이다.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 혼자인 한탸는 때때로 “너무 시끄러운 내 고독 탓에 머리가 좀 어질어질했다”라고 말한다. 그의 고독 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채워졌던 것일까? 혹은 무엇 때문에 그는 시끄러운 고독을 경험해야 했을까?


하늘은 인간적일 수 없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책을 통해, 책에서 배워 안다. 사고하는 인간 역시 인간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도,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고라는 행위 자체가 상식과 충돌하기 때문”(P.12)이라고 한다.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인간적이지 않다는 말인가.

그는 “이틀 동안 지하실을 청소하며 생쥐들을 희생시켰다.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소박한 짐승들인데, 추운 밤이면 내 품 안에서 공처럼 웅크렸던 내 어린 집시 여자처럼 몸을 사린 생쥐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고,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 한탸는 작업을 하면서 인간적이지 않은 하늘과, 또한 인간적이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지만 그래도 희망을 생각한다. 하늘은 인간적일 수 없지만 인간은 인간적일 수 있지 않을까?


시시포스 콤플렉스

부브니에서 엄청난 크기의 수압 압축기를 직접 목격한 한탸는 자신이 삼십오 년 동안 폐지를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어왔던 작업 방식에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게 되었다. 그의 용기를 결정적으로 꺾어놓은 건 젊은이들이었는데 새 인간 새 방식과 더불어 바야흐로 새 시대의 막이 오른 것이다. 그들은 불안에 곤두선 책장들을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며 그 안에 숨겨진 가치 따위는 전혀 아랑곳없이 냉정하게 작업을 이어갔다. 멈출 줄 모르는 컨베이어에서 비인간적인 일을 해치우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 “이런 일들은 내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는 왜 자신의 압축기 속으로 들어가서 스스로 녹색 버튼을 눌렀을까?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 한탸는 삼십오 년 동안 폐지를 압축해온 자신의 지하실에서 종말을 맞기로 한다. 책들과 함께 자기 몸을 압축기에 넣고 녹색 버튼을 누른다. 압축기의 중압에 몸이 아이들의 주머니칼처럼 둘로 접히는 그 순간 그는 집시 여자를 본다. ”일론카“ 그가 아직 인간적이었을 때 사랑했던 여자였다.


뜻하지 않게 읽게 된 책

한탸는 그의 천국에서 영원히 추방당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사회주의 노동단원들의 작업에 그 역량을 활짝 꽃피우는 자신의 압축기를 보는 순간 굴욕감과 배신감을 느낀다. 기계에서 느끼는 배신감이라니.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는 이제 어느 것이 내 생각이고 어느 것이 책에서 읽은 건지도 명확히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p.10)라고 말하던 한탸는

”내가 신봉했던 책들의 어느 한 구절도, 내 존재를 온통 뒤흔들어놓은 이 폭풍우와 재난 속으로 나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p.113)라고 고백한다. 책에서 느끼는 배신감.

<아가서> 와 <전도서>에 기록된 바니타스 바니타툼(헛되고 헛되니 라는 뜻의 라틴어)을 생각한다. “근원으로의 전진“이나 ”미래로의 후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된 그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보다 사라져가는 시대에 남기로 한 것인가?

세상은 서서히 바뀌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물건들은 대부분 한순간에 우리 앞에 존재한다. 사랑하는 것들도 영원할 수 없다. 책을 사랑하며 살았던 한탸는 책 꾸러미 속에서 책으로 존재할 것이다.

두껍지 않은 책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한탸의 러브스토리다. 쥐들을 포함해 그가 평생 사랑했던 것들에대한 연민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작가들의 이름이나 인용된 책 제목을 찾아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자주 되풀이되는 문장들을 소리 내 읽다 보면 주문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 정도는 나도 할 줄 안다”라는 문장을 읽을 때마다 한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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