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 ·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2008년
영국의 작가 도리스 레싱은 인터뷰에서 “나는 엄마를 싫어했고, 엄마도 나를 싫어했으며, 우리는 기질적으로 맞지 않았다”며 “엄마에게는 비극이었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경기일보 <英 레싱 ”노벨상은 지독한 재앙“> 2008.5.12.)
『다섯째 아이』에서 해리엇과 벤의 관계를 보며 레싱의 인터뷰 내용이 생각났다.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다섯째 아이로 태어난 벤은 불행했을까? 벤이 아직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소설은 끝이 난다. 세상으로 나간 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정덕애 작가는 <작품해설·레싱의 생애와 작품세계>에서 이렇게 말한다. “소설을 끝내면서 우리는 벤이 앞으로 무슨 일을 저질러 대도시를 공포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레싱은 2000년 발표한 후속작 『세상 속의 벤』에서 집을 떠난 벤이 그의 힘과 모자란 지능 때문에 어떻게 인간들에게 착취를 당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로 브라질로 안데스산맥으로 끌려다니며 원치 않는 여행을 하는 벤의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자신과 같은 종족을 찾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든 아니든 레싱의 시각은 집단으로부터 고립된 존재 쪽으로 향하고 있다.“
벤은 고립된 존재다. 원하지 않는 시기에 잉태되었다는 이유로 파티에 온 사람들에게 축복받지 못했다. 배 속에 있을 때 엄마 해리엇은 진통제를 들이부었다. 해리엇은 벤을 지칭할 때
’괴물‘ ’도깨비‘ ’요괴‘ ’네안데르탈인‘ 등의 언어로 말한다. 뱃속에서부터 엄마에게 원수로 여겨지던 벤은 위의 4명의 형, 누나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 다른 체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다. 벤은 잠깐 가족들로부터 격리되었다 돌아왔지만, 그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공격적이고 소통하지 못하는 벤은 가족들에게 공포의 벤이 되었다. 가족들은 그와 해리엇을 두고 다 떠난다.
해리엇 역시 고립된 존재다. 시어머니 몰리와 남편 데이비드에 의해 벤이 요양소로 보내질 때 해리엇은 침묵했다. 잠깐 집안은 평화를 찾은 듯했지만, 해리엇은 평안치 않았다. 다만 한 번 벤을 보려는 마음으로 요양소로 향했던 그녀는 거의 죽어가는 벤을 무작정 집으로 데리고 온다. 이 일로 아이들은 집을 떠났고, 데이비드는 회사 근처에서 지냈다. 저택에서 행복했던 해리엇은 이제 혼자 남았다. 사람들은 대개 무책임한 해리엇, 이기적인 해리엇, 미친 해리엇……이라고 수식어를 붙였다. “벤이 살해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은 여자“ 해리엇은 이런 생각으로 자신을 옹호했다.
“해리엇은 누군가 고통을 같이 짊어졌으면 했다. 단지 이해받기를 원했고 그녀의 곤경이 제대로 평가받기를 원했다.” (p.138) 전문가 길리 박사는 ”문제는 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있어요. 당신은 그 애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죠. (P.139)“라고 말한다. “난 벤이 태어난 이후 줄곧 벤 때문에 비난을 받아온 것 같아요. 난 죄인처럼 느껴요. 사람들이 내가 죄인처럼 느끼도록 만들어요.” (p.140) 길리박사는 자신이 동물원에 편지를 써 주기를 원하는지 해리엇에게 물었다. 그리고 해리엇의 요구대로 진정제를 많이 처방해 준다. 이제 해리엇은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을까? 홀로 고립되었다고 생각하던 세계에서 조금이나마 숨을 쉴 수 있을까?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게 태어난 벤. 그는 어디에서 왔을까? 무엇일까?
“벤을 보면 생각하게 돼요. 이 지상에서 한때 살았던 모든 다른 사람들, 그들이 어딘가 우리 내부에도 틀림없이 있다고요.” (p.154) 해리엇은 “격세 유전”을 생각한다.
인간의 DNA에는 무엇이 숨어 있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극강의 위험이 감지되면 초능력이 발현된다고 한다. 벤의 이야기는 흔하게 하는 밟으면 꿈틀대는 지렁이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야생성이 사라지고 서로를 배려하며 온순하게 살아가는 것이 진리가 되어버린 종족들의 세상. 호모사피엔스 종족의 세상에 태어난 벤의 종족. 완전히 다른 종족인 네안데르탈인은 과연 살아낼 수 있을까? 자신들과 다른 인류를 몰아내고 굳건하게 터전을 만들어 놓은 호모사피엔스들은 네안데르탈인과 동거하는 것을 묵인할 수 있을까?
“우린 벌 받는 거야. 그뿐이야”
“잘난 척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해야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행복해서” (P.159)
행복은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내가 행복해야겠다고 결정하면 정말 행복해지는 것일까?
해리엇은 흥분의 절정에서 노래인지 고함인지를 지르며 입을 벌리고 있는 자기 아들 벤을 보았다. 황홀경. 그녀는 그 애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행복인가? 그 말이 맞는 말인가?
“벤이 그 패거리들에게 애완견이나 마스코트같이 되었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그들은 그 애를 거칠게 또는 불친절하게까지 다루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 애를 멍청이, 난쟁이, 2번 외계인 호비트, 그리고 꼬마 마귀라고 불렀다. (...) 그러나 그 애는 행복했다.” (P.127)
가정 안에서,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버려진 벤은 자기가 받아들여지는 존과 그 일행들과 함께 있을 때 행복했다. 행복의 결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거기에서 정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섯째 아이』의 작가 도리스 레싱은 영국의 작가지만 이란에서 태어났고, 남로디지아(짐바브웨)에서 성장했다. 1950년 31살에 소설 ’풀잎은 노래한다‘로 데뷔, 2007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3년에 뇌졸중으로(94세) 사망했다.
소설 『다섯째 아이』는 1960년대 이야기지만 그 서사를 2024년 현재로 가지고 와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을 내용이다. 평범한 가정에 장애가 있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가 다른 가족들의 행복을 위협하는 존재일 때 엄마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 작가는 그 해답을 명쾌하게 적시하지 않는다. 이것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다. 다만 개인적인 바람은 벤이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벤의 종족‘을 찾아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