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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인 Jul 31. 2024

뉴스레터, 돈도 안 되는데 왜 계속해요?

뉴스레터 5년 차의 소회

어느덧 뉴스레터 발행 5년 차가 됐다. 처음 시작할 땐 이렇게 오래 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발행하다 보니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5년 차가 된 시점에서 왜 오랫동안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는지 짚어보면 의미 있을 것 같아 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시원하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순전히 나만의 콘텐츠를 계속 갖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콘텐츠를 대단히 사랑해서가 아니라 ‘갖고 싶다'는 소유욕이다. 회사의 매체가 아니라 나만의 것을 갖고 있다는 감각이 필요했다. 나답게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매출이니 뭐니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운영할 수 있는 콘텐츠.


물론, ‘우리 뉴스레터가 점심시간에 난처한 직장인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이타적인 이유도 있지만, 대외적으로 기획 배경을 이야기할 때 적합하며, 오래 지속하기 위한 충분한 동기가 되긴 어렵다. 사실은 내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만들었고 지속했다는 게 가장 솔직한 답변이 되겠다.


(‘욕망’이라는 단어 자체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어 안 좋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자꾸 부연설명이 길어지고 있다.) 대체로 세상의 모든 게 각자의 욕망을 위해 생겨나지 않았나. 많은 서비스나 스타트업이 ‘어떤 분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시작하고 그럴듯한 명분을 갖다 붙이는 것처럼.


흥미로운 건, 커리어 상태에 따라 그 욕망은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였다는 것. 본업이 콘텐츠가 아니었던 때, 회사 밖에서 나만의 콘텐츠를 만든다는 건 나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줬다. 사실 ‘나 사실 이런 거 만들고 있는데, 모르지~?’하는 은밀한 도취감에 취해있기도 했다. 본업이 콘텐츠가 됐을 때는 회사에서는 성과 중심으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니, ‘뉴스레터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들 거야.’라는 욕망의 모습을 띠었다. 일을 쉬고 있는 지금은 콘텐츠를 계속 만들고 있다는 감각 또는 대책 없이 쉬고만 있지 않다는 자기 위로를 위해 계속하고 있다.


오래 지속한 또 다른 이유는 뉴스레터를 발행하면서 갖게 된 정체성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데,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뉴스레러'(나 홀로 밀고 있는 명칭)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뉴스레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한 경험도, 구독자와 소통한 경험도, 내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 등 뉴스레러로서 쌓아온 시간과 경험이 꽤나 마음에 들어서 이 정체성을 좀처럼 포기하기가 어렵다.


유독 이 정체성에 애착이 가는 이유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제 맥주 이것저것을 사 마시면, ‘애주가'로서의 정체성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뉴스레러라는 정체성은 직접 뉴스레터를 만들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소비적이지 않은' 정체성이기에 더 지키고 싶다. 뉴스레터를 그만두는 순간 이 정체성은 과거의 것이 된다는 게 아쉬워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고 뉴스레터를 오랫동안 발행하는 게 쉬웠던 건 아니다. 물론, 뉴스레터 작업에 들어가는 시간에 쉬거나 놀러다니고 싶었던 적도 많고 일이 힘들 때나 감정적으로 다운되어 있을 때도 주말마다 뉴스레터 작업을 하는 것이 버거웠다. 뉴스레터를 발행함으로써 돌아오는 보상이 거의 없다 보니, ‘이거 꾸준히 발행한다고 돈을 더 버는 것도, 유명해지는 것도 아닌데 굳이 왜 계속하고 있나'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구독자로부터 아무런 피드백이 없을 때마다 맥이 탁 풀리기도 했다.


그만두고 싶을 땐 나름대로 직관적인 솔루션이 도움이 된다. 뉴스레터 작업이 버겁다면, 잠시 방학을 가지는 것도 좋았다. 몇 주 동안 오롯이 주말 시간을 즐기고 돌아오면, 에너지가 다시 생기고 쉬는 동안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기도 해서 다시 즐거운 마음도 생기곤 했다. 회의감이 들 때면, 구독자에게 대놓고 피드백을 요구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크게 지쳤던 때가 한 번 있는데, ‘요즘 힘들다. 응원해달라!’라며 Joey 폼을 열어둔 적이 있다. 그때 구독자들이 전해 줬던 장문의, 진심의 메시지들이 정말 큰 힘이 됐고, 역시 사람을 움직이는 건 칭찬과 인정 욕구라는 점을 깨달았다. (최근에도 ‘우리 5주년 됐다. 축하해달라!’라고 또 대놓고 축하를 요구했다.)


본인이 지금 고등학생인데, 나중에 직장인 돼서도 이 뉴스레터를 보고 싶다며 오래오래 해달라는 응원을 전해주신 분이 있다. 깜찍하면서도 부담되는 메시지를 보고 같이하는 친구와 한참 웃었는데, 이런 피드백을 만날 때마다 뭉클해지면서 ‘역시 이 맛에 뉴스레터 만들지'라는 생각도 한다. 앞에서 거창하게 개인의 욕망 충족과 정체성 유지를 이유로 꼽았지만, 사실 가장 빠르게 동기부여가 되는 건 구독자의 반응이다. 아마 인스타그램, 유튜브 같은 공개적인 플랫폼보다 훨씬 폐쇄적으로 소통하는 창구인 만큼, 구독자의 칭찬과 응원만큼 임팩트가 센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차원에서, 구독자가 뉴스레터를 잘 보고 있는지, 뉴스레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와 같은 반응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창구를 잘 세팅해 놓는 것도 중요하겠다.)


‘언제까지 하게 될까?’ 이 질문은 언제나 맴돌고 있다. 몇년 동안 하겠다는 목표도 없고, 엄청난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때까지는, 내가 원하는 때까지는 해보고 싶다. 가끔 뉴스레터의 끝을 상상해 보곤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끝은 이렇다. 이 날짜를 기점으로 뉴스레터가 마무리된다고 미리 알리고, 구독자도 우리도 인사를 나눌 공간이나 기간을 두고, 정해진 날짜에 마무리하는 것. 그때까진 하던 대로 꾸준히, 매주 뉴스레터를 쓰고 그리고 발행하련다.



+ 발행하고 있는 뉴스레터 <슬점>의 링크입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점심메뉴와 동료와 가볍게 대화하기 좋은 대화 주제를 보내드립니다.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63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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