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 물감, 아크릴 물감, 붓 등 각종 미술 도구들은 오랫동안 서랍장 어딘가에서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 방치되어 있었다. 각각의 도구는 서로 다른 시점에 내 품으로 들어왔다. 수채화 물감은 미술학원에 다니던 초등학생 시절에, 아크릴 물감은 대학생 때, 휴대용 스케치북과 색연필은 사회 초년생 때 구매했던 것들이다. 차곡차곡 나와 함께 나이 든 셈이다. 하지만 아이패드를 쓰기 시작하면서 이 도구들은 점차 잊혔다. 아이패드는 자유롭게 수정과 변형이 가능하지만, 손 그림은 한번 틀리면 수정이 어렵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뺏겼다.
그러던 중, 최근에 다시 붓을 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 집을 내 취향대로 꾸미고 싶어서였다. 집에 꽃을 두고 싶은데, 워낙 빨리 시들고 매번 꽃을 살 수도 없기 때문에 그림으로나마 좋아하는 색깔의 꽃과 화병을 수채화 물감으로 쓱 그려냈다.
근데 이게 웬걸? 만족감이 어마어마한 거다. 시각적인 만족감은 물론이고, 내 손으로 아름다운 걸 만들어냈다는 성취감이 들어 침대에 누웠다가도 다시 그림을 보려고 거실로 나오곤 했다. 그 이후로 많은 꽃과 화병을 그렸고 어느새 거실의 벽 한 켠에 줄지어 있게 됐다. 하나둘씩 완성된 그림을 벽에 붙일 때마다 벽은 다채로운 색깔과 형태로 가득 차고, 그 모습을 보며 흡족하게 미소 짓는다.
다만, 내 그림들은 선도 삐뚤빼뚤하고, 채색하다 튀어나온 곳도 많고, 채색 농도 조절에 실패해 얼룩덜룩한 곳도 많다. 디지털 드로잉에 익숙했던 터라, 처음엔 이런 부분들이 아주 눈에 거슬렸고 누가 보지도 않는데 창피하다고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이게 손 그림의 맛이지’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됐는데, 일종의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싶었다. 다른 그림 작가들의 작품에서 삐뚤빼뚤한 부분이 보이면, 그것마저 멋있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내 그림에는 엄격해지기를 그만두자. 좀 못해도, 어설퍼도 어때, 중간에 멈추지 않고 해낸 게 어디냐. 오히려 당당하게 어설픈 부분을 보이는 게 더 매력적이다. 잘하려는 척을 하거나 지나치게 잘하기 위해 내게 채찍질하지 말자 싶었다.
시기가 절묘했다. 일을 쉬고 있고 새 일터를 찾고 있는 지금, 문득 불안함 때문에 과거의 내 크고 작은 성과들마저 ‘별거 아닌 이력' 정도로 낮춰서 여기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어쩔 땐 나를 너무 사랑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엔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건 굳은살처럼 박여있는 습관인데, 지난 커리어 전환 시기에 이 습관을 극복했다. 하지만 여유가 없어지고 자신감이 줄어드니, 관성처럼 다시 공고의 직무 설명과 자격 요건을 보며 지난 시간을 후회 섞인 눈으로 바라보게 되더라.
다행히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려고 할 때마다 그렇게 생각하면 과거의 나에게 너무 미안한 짓을 하는 거 아니냐며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나에게 더 관대해져야겠다는, 나아가 다정하게 ‘우쭈쭈'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림은 일도 아니고 취미일 뿐인데, 엄격해질 필요는 더더욱 없으니까. 아마도 이 시기는 나에게 우쭈쭈해줘야만 잘, 무사히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던 걸지도.
그림을 그리는 동안엔 엄청나게 집중하기 때문에 잡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다는 점도 좋아서 계속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나에게 관대해지는 습관을 들이는 것 같기도 하다. 또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며 응원을 보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그림을 그린 것처럼 너는 매번 최선을 다해 일했고, 절대 헛된 시간을 보낸 게 아니다. 그림들이 모여 거실을 아름답게 만든 것처럼 내 경험들도 쌓여 분명 빛을 발할 때가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