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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인 Sep 24. 2024

<수고했어, 오늘도>도 끝까지 듣기

안녕? 나야, 불안

저녁 시간, 즐겨 듣는 라디오에서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가 흘러나왔다. 일로 힘들어하던 사회 초년생 시절 위로를 전해 주던 노래. 하지만 이 익숙한 멜로디를 듣자, 머릿속에 낯선 생각이 떠올랐다.

‘난 이 노래 들을 자격이 없는데’


왜냐하면 오늘 난 일하지 않았으니까. 밥을 해 먹고, 집안일 좀 하고, 누워서 이것저것 콘텐츠를 보고, 저녁 바람 좀 쐬려고 산책을 나온 하루였으니까. “수고했다"는 말을 들을 만큼 대단한 것을 하지 않았으니까.


이런 생각을 한 나에게 깜짝 놀라서 황급히 생각을 밀어내려고 했다.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렇게 죄책감을 느끼고 의기소침해 있다니. 일이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만드냐며 헛웃음이 나왔다. 일을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네. 아니,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도대체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일하지 않는 나를 한심하게 여기도록 세뇌한 이 시장 구조에 열받았으나, ‘이미 세뇌당한 이상 어쩌겠냐, 이겨내는 수밖에’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사실 일상의 대부분은 아주 평화롭게 보낸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요리를 하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들을 하며 안온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가 불쑥 불안이 “나야, 불안"하며 튀어나와 순식간에 머릿속을 시꺼먼 먹구름으로 채운다. 그때마다 안온하게 보낸 시간을 후려치곤 채용 공고를 뒤적거린다. 하지만 채용 공고를 보면 볼수록 나랑 맞아 보이는 곳이나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기는 어렵고, 불안이 더 커지기 마련이다.


이 불안의 사이클은 공백기 내내 지속될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꿈꿨던 것처럼 “평화롭게" 이 시기를 넘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정신력을 꽉 붙잡는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어느 때보다도 스스로에게 많은, 격려의 말을 해줘야 한다는 것도. 문득 수많은 명언을 다이어리에 쓰면서 의지를 다졌던 고3 수험생 시절이 떠올라 ‘아, 또 그 짓을 해야 한다니!’ 싶어 실소가 나오기도 한다.


이 시리즈의 제목 “꺾였는데도 그냥 사는 법”을 처음 지을 땐, ‘이렇게 이렇게 해서 힘든 시기를 잘 극복했답니다~’의 방향으로 글을 썼으면 했는데, 아쉽게도 그건 어렵게 됐다. 꺾인 곳에서 진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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