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조각글 모음
1.
성장, 커리어 개발, 자기 계발과 같은 키워드에 더 이상 두근대지 않는 지금, ‘이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는 질문에 맞닥뜨렸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원 없이 살다 가자”가 그나마 조정한 방향이었다. 하지만 계속 맴도는 질문. 원 없이 사는 게 뭔데? 많이 노는 거? 언젠가 같이 놀 친구, 놀 체력, 돈과 시간이 없어진다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거 아닌가? 더 포괄적인 방향이 필요하다.
내가 이런 질문을 품고 있다는 걸 사실은 알지 못했다. 어른 김장하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야, 머리에 전구가 켜지는 것처럼 명쾌함을 느끼며 소실된 방향 감각을 깨달았다. 특히 그의 지원을 받았던 제자와 지역사회 사람들이 김장하라는 어른을 일종의 기준으로 삼고, 본인도 ‘김장하 선생님이라면 이렇게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행동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혼자 누리는 부귀영화보다도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그를 보며, ‘경제적 자유’ ‘커리어’와 같은 개인의 성공이 최고의 가치라고 외치는 이들을 볼 때의 껄끄러움이 해소되는 것 같기도 했다. 개인의 성공에 몰두해야 하는 시기도 있겠지만은, 그 시기가 지나면,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잘 살기 위해 부러 노력하는 삶도 참 의미가 있겠다.
원 없이 산다는 건, 어쩌면 적어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산다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포괄적인 방향이긴 하나, 이렇게 생각하면 다양한 갈래로 다짐하게 된다. 내가 내리는 크고 작은 결정들이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길. 나의 이기심과 오만을 억누를 수 있길. 사소한 것에 감정을 쓰지 않고 진짜 화내야 하는 때를 아는 사람이 되길. 그래서 요즘은 일상에서 김장하 선생을 자주 떠올리며 살아간다.
2.
공연에 갔다 오면 집에서 나만의 뒤풀이를 한다. 오늘 보고 온 아티스트의 음악을 틀어놓고 멋대로 춤추며 맥주를 들이켠다. 가사가 귀에 더 잘 들어오며 감동하고, 리듬을 까딱까딱 타고, 멜로디를 따라 같이 흥얼거리며 음악에 심취할 수 있다. 때로는 음악이 주는 감동에 취해 (술에 취한 것일 수도 있다)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눈물을 닦으며 ‘주책이군…’하고 스스로를 비웃지만, 솔직히 음악을 즐기는 나에게도 취한다.
먼 옛날 삼성 애니콜을 광고하기 위해 냈던 <AnyBand>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가 생각난다. 뮤직비디오의 내용은 이렇다. 음악이 금지된 사회를 배경으로, 보아, 타블로, 시아준수, 진보라가 그에 저항하고자 모두가 들을 수 있는 광장에서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고 연주한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들은 음악과 자유를 되찾는다.
뜬금없이 그 뮤직비디오를 왜 말하느냐고?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음악을 되찾고 싶어 했는지 이해가 되겠거든… 음악에 취한 상태라 이런 점을 양해 바란다.
3.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돼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공연을 보고 벅차오른 채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좋아한다는 건 어쩌면 날 세이프존에서 벗어나게 하는 게 아닐까. 기꺼이 내가 해오던 방식과 루틴을 벗어나게 하는 것.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좋아하기 전, 원래의 나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하게 만든다.
4.
최근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라는 물음에 엄청나게 심플하게 대답했다.
“음… 그냥… 기타 치고 지냈어요.”
이렇게 말하면 종일 기타만 치고 있는 사람을 떠올릴 거라는 걸 아는데, 사실 그 정도로 열심히 치진 않는다. 그냥 딱 조금 좌절하고 뿌듯해할 정도로, 취미생의 수준으로 즐긴다. 잘 안 쳐지는 날에는 15분 연습하고 피크를 내려놓기도. 그래도 되는 거라 좋다. 일처럼 안 돼도 이고 지고 어떻게든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내가 원할 때 그만할 있으니까. 그게 취미가 가진 힘이겠지.
나는 사실 그동안 한 곡을 온전히 다 쳐본 적이 없었다. 곡마다 기타 솔로가 있는데, 아직 기타 솔로를 할 만큼의 실력이 안 되기 때문에… 그러다가 얼마 전에, 좋아하는 곡이 마침 기타가 쉬운 편이라 완곡할 수 있었다. (물론… 쉽다고 해도 2주 동안 연습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도움으로 녹음까지 해봤는데,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곡에 내가 연주한 기타 소리가 흘러나오는 기분은 해본 사람만 알 거다. 뮤트가 잘 안 돼서 소리가 지저분하게 나긴 해도, 아무튼 기분이 좋았다. 아마도 올해 최고의 자기 효능감이 아니었을까.
이 기쁨과 자기 효능감은 프로가 아니기에 느낄 수 있는 사치라고 생각한다. 내가 콘텐츠를 사이드로 만들었을 때 느꼈던 즐거움처럼. 지금은, 지금은 콘텐츠를 만드는 게 그만큼 순수하게 즐겁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젠 조금 더 일, 성과, 지표의 영역이 되었다.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어떤 점은 후회되기도 하고 어떤 점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쌀쌀한 날씨가 지나고, 조금 더워지니 귀신같이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줄었습니다. 이제 더 더워지면 페스티벌을 즐기느라 한동안 글을 못 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