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조각글 모음
1.
5월에 인디 밴드 씬은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시작은 한 밴드 멤버의 갑작스러운 탈퇴였다. 알고 보니 미성년자 팬에게 치근덕거렸고, 그 탓에 팀을 나오게 된 거였다. 그런데 또 알고 보니 그 팀의 다른 멤버도 비슷한 전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아예 인디 밴드 멤버들의 구린 전적이 정리된 구글 문서가 만들어져서 돌았다.
‘이것들… 참 다채롭게 이상한 망언과 행실을 하고 돌아다녔네’라며 조금은 먼 발치에 떨어져서 흥미롭게 문서를 읽다가 스크롤을 멈췄다. 내가 좋아하던 밴드의 멤버 이름과 그가 한 짓이 적혀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이마를 짚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소 여성 문제에 지지하는 발언을 자주 했던 터라, 배신감이 더 컸다. 그리고 다음 날, 그가 (사과문 같지 않은) 사과문을 올렸고 잡혀있던 모든 공연 일정이 취소됐다.
이제 그의 노래를 배경으로 잔디밭에서 아이들과 손을 잡고 뛰어놀던 장면을 떠올리며 더 이상 즐거워할 수 없다. 한창 힘들었을 때 노래 가사를 들으며 위로를 받았던 노래도 다시는 들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중이 환호를 보내던 그 순간에도 피해자는 불쾌한 기억을 안고 살아왔을 거라는 점이 통탄스러웠다. 일하다가도 불쑥불쑥 화가 올라왔고, 그 멤버 개인 외에도 이 씬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왔다.
동시에, 공연을 쫓아다닐 만큼 깊게 좋아하지는 않아서 참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며 역시 애정의 상한선을 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특정 뮤지션을 깊게 좋아하진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려다가, 그 선을 그어두는 게 맞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멈칫했다. 있는 힘껏 좋아하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도 분명 있는데, 상한선을 정하면 그 즐거움을 포기하는 거 아닌가. 나중에 상처받을까 봐 미리 거리를 두는 건 어쩌면 똥이 무서워 된장을 못 담그는 형국이 아닌가. 답은 찾지 못했다만,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인간들이 참 싫다.
얼굴이 알려진 유명 셀럽은 아니면서 본인의 영역에선 추앙받아, ‘뭐라도 된 듯한’ 기분에 취해 뒤에서 더러운 짓을 하고 다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진짜 뭐라도 된 사람 역시 올바르게 살아야 하지만). 이 생각이 한번 들고 나니, 공연장에서 어느 밴드를 보더라도 훨씬 차가워진 눈과 마음으로 무대를 보게 된다. 몇 안 되는 일상 속 즐거움을 하나 잃어서 슬프기 그지없다.
2.
집 바로 앞에 천이 있어서 자주 산책하러 나가곤 한다. 특히 이번 5월에는 날씨가 좋을 때마다 걸었다. 귀여운 오리를 보는 것도 좋지만, 온화한 표정의 사람들을 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성별, 나이, 국적 상관없이 오리를 보며 멈춰 서곤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아장아장 발을 떼는 아이, 서로 까르르 웃으며 사진을 찍어주는 관광객들 등 그냥 보고 있으면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3.
예전엔 기획이 엎어지면 속상해하거나 화가 났는데, 이젠 별 타격이 없다. 그냥 조금 짜증은 나지만, 빠르게 받아들이고 다시 기획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예전엔 일과 나를 동일시했고 일에 나를 많이 담아내려고 했기에, 지적을 받으면 나에 대한 공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반면, 지금은 일은 일이고 나는 나라는 생각이 확고해져 덜 흔들리게 된 것 같다.
뭐가 좋고 나쁘고는 없어서, 옛날을 과거의 영광처럼 생각하며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감정의 온도가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그저 이런 변화가 신기할 따름이다. 앞으로 나는 또 어떻게 달라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