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조각글 모음
1.
AI가 만든 그림을 보고 있자면, ‘너무 매끈해’라는 감상평이 자꾸 떠오른다. 아무런 고민 없이 제작된 티가 난달까, 뭉쳐진 물감이나 손이 떨려서 선이 올곧게 뻗어나가지 못한 실수의 흔적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정이 가지 않는다. 화가들의 화풍을 따라서 만들어진 AI 그림 역시 겉으로 보이는 화풍만 따라 할 뿐, 알맹이가 없는 느낌이고.
정이 가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A부터 Z까지 완벽해 보이는 사람은 너무 매끈해서 다가가 어깨에 기대면 미끄러질 것만 같다고 느낀다. 질투일까? 그보다는 나의 흠결을 영원히 이해해 주지 못할 것 같다는 공포 때문이리라. 나는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사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도 그의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발견하며 반가워 하곤 한다. (변태적인 취향인 걸까..?) 가령, 어색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다가 횡설수설하거나 지쳐서 눈이 반쯤 감기고 안광이 사라지는 그 찰나를 포착하는 게 좋다. 그리고 ‘당신도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동족을 만난 반가움에 그에게 정이 간다.
아차차, ‘정이 간다’는 것은 반드시 그를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에게 최소한의 감정이 생기는 것으로, 정이 가도 싫어할 수 있다. 그러니까 완벽한 사람에게는 어떠한 감정도 가지지 않지만, 정이 가는 사람에게는 내 감정을 어느 정도 소모하게 된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어쨌든 내게 어떤 감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감정이 메마른 현대사회에서는 드문 사건임은 틀림없다.
2.
글을 한창 재밌게 썼던 20~22년, 여느 글쓰는 사람들의 로망과 다르지 않게 ‘출간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있었다. 특히 ‘먹고 마시는 것에 진심인 사람’으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면서 야망을 실현할 초석을 다지기도 했다.
과거형으로 쓴 이유는 그 욕구가 이제 힘을 많이 잃었기 때문이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아무래도 에세이일텐데, 에세이 작가로서 두각을 낼 자신이 없다.(이왕 할 거면 두각을 드러낼 정도로 잘해야 한다는 혼자만의 강박이 있음을 깔끔하게 인정한다)
굳이 왜 이걸 설득하려는지 나도 모르겠지만, 자, 자, 일단 들어보시라. 개인적으로,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에세이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고 느낀다. 하나씩 살펴보며 내가 왜 에세이 작가로 성공하기 어려운지 살펴보자.
1. 작가가 호기심을 갖게 되는 존재감을 지니고 있는가?
지나치게 평범하다. ‘전업 이력이 있는 직장인’ 작가는 이제 너무 많아졌고, 더 늦기 전에 도전하고 싶어서 과감히 이전 일을 버리고 새로운 일에 뛰어든 이야기도 흔해졌다. 이 이야기가 흥미로우려면 세상에 잘 전해지지 않은, 희소성 있는 정체성을 띄고 있어야 한다. ‘먹고 마시는 것에 진심인 사람’으로 책을 내기엔, 내가 이제 먹고 마시는 데 진심이지 않기 때문에 불가하다.
2. 글을 끝내주게 잘 쓰는가?
가장 마음 아프고도 작가의 본질을 꿰뚫는 조건이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다지 높은 필력을 지니지 않았다. 킥킥 웃을 만큼 위트 있는 문장에 질투를 느껴서 어설프게 써보지만 타율은 낮으며, 깊은 여운을 남기는 문장은… 써본 적이 있나 싶다. 적당히는 쓰지만, 끝내주게 쓰지는 못 하는 사람의 슬픔을 아시오?
3.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가?
이건 에세이에 국한된 조건은 아니다. 좋은 글이란, 단순히 어떤 이야기를 늘어놓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녹아있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개별적인 에피소드들이어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 있어야 존재 가치가 있는(나무에게 미안하지 않은) 책일 테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정도로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 사실 이게 가장 큰 문제인 셈이다. 열성적으로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무언가가 없달까. 기타는 열정적으로 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기타 치는 거 좋아!’ 외의 이야기 말고 그 이상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대충 기타 에피소드 하나와 인생 이야기를 엮으며 억지로 메시지를 담으려면 할 수 있겠지만, 그러기는 싫은 게 사람 마음.
1, 2번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조건이니까 쿨하게 포기하고, 3번은… 아직 여지가 있긴 하나,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찾을 만큼 출간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는가? 그러니까 그 메시지를 찾으려고 노력할지, 이대로 지내며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발견하게 냅둘지가 관건일 것이다.
일단 기타 연습이나 할 거고, 질문을 던졌으니 ‘미래의 내가 알아서 정하길~’ 라고 무책임하게 튀어본다.
지인과 출간 욕심이 없어진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정리해 보면 재밌겠다 싶어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