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다 살아지더라
미국출장 전까지 해외를 거의 나가본 적이 없었다. 20대 첫 해외는 스리랑카로 봉사활동을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라오스로의 해외봉사, 단 두 번에 불과했다. 서른이 되어서야 다녀온 해외여행도 가까운 나라만 두어 번 구경하고 왔다. 그런 내가 해외출장이라니. 심지에 한 달을 살아야 한다. 바로 드는 생각은 '나 외국에서 살아본 적 없는데, 어떻게 하지?'였다. 지금까지 다녀온 해외는 머물다 잠깐이면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인지하에 갔었다. 미국은 심지어 지구 반대편에 있었다. 시간이 아예 한국과 반대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옷은 얼마나 준비해야 할지, 식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든 게 고민이었다. 다행히도 숙소는 제공이 되었다. 특히 옷이 너무 없었다. 대학교 다닐 때는 이것저것 입어보면서 시도 차원에서 여러 옷도 사 입었지만 일을 시작하고는 정말이지 옷을 거의 사지 않았다. 목 늘어난 반팔티에 보풀 가득한 슬랙스와 와이드 팬츠만 몇 장이었다. 근무지가 공장이라 유니폼이 있어 옷에 정말 신경 쓰지 않고 다녔을뿐더러, 돈을 모아야 한다는 강박에 옷 사는 돈이 그렇게 아까웠다. (술 값은 그렇게 대차게 쓰면서 말이다.)
그래서 옷부터 샀다. 선물 받은 백화점 상품권을 싹싹 긁어모아서 백화점으로 향했다. '이럴 수가 반팔티 한 장이 몇십만 원이라니..' 상품권이 아니었다면 한 장도 못 샀을 것이다. 물론 한 장만 조금 좋은 옷을 사고 SPA 브랜드를 가서 단정해 보이는 옷을 몇 벌 샀다. 그리고는 부족하면 가서 사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 조금은 안심을 하고 미국으로 향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비교적 한국보다 저렴한 브랜드 옷을 몇 벌 사 입었다. 내가 브랜드 옷을 입다니 어색했다.
식사도 문제였다. 나는 슈퍼코리안으로서 철저한 한식파다. 미국의 햄버거, 당연히 유명하다. 하지만 매번 저녁으로는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서는 주변에 햄버거 가게 밖에 없어서 미국의 모든 햄버거 브랜드를 먹을 수밖에 없었고, 돌아와서 지금까지 햄버거를 잘 먹지 않았다. 정말 감사하게도 일할 때 점심으로 한국 주재원분들을 위한 한식 메뉴가 있어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가끔 저녁으로 주재원분들과 한식당에 갔을 때도 무척이나 기뻤다. 먹고 살아온 것이, 아는 맛이 이렇게 무섭다.
돌이켜보면 미국에서만 할 수 있는 생활을 해보자라고 생각하고 지냈다. 조금 어색하더라도, 어쩌면 물리더라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언제 또 미국에서 살면서 이런 소중한 생활을 느껴볼까 싶었다. 그 과정에서 느꼈던 새로움과 미국의 삶의 방식에 대한 깨달음, 이해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한국에서의 내 삶의 방식이 그립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경험에 대한 열린 마음과 일상의 소중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미국에서의 생활이었다.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상황에 놓이면 살아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