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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진 김에 쉬어가기

호캉스를 다녀와서 무리했는지 코로나에 걸렸다. 집에 온 다음 날부터 열이 나더니 기침을 하고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마침 가족들이 전부 외박을 해서 나 혼자 집에서 끙끙 앓고 약을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다. 일요일에 딸과 통화를 하다가 혹시 코로나가 아닌가 염려를 하길래 집에 있는 진단키트로 검사를 했더니 한 줄이 나왔다. 안심이 되었으나 목이 무척 쓰라리고 아파서(이런 목의 통증은 살면서 처음이다) 코로나에 대한 염려가 아주 사라진 건 아니었다.

기침과 가래도 심하고 침을 삼킬 때마다 목 안에 칼날이 있는 것처럼 쓰라리고 아파서 물도 마시기가 어려웠다. 월요일 아침, 다시 검사를 해보았더니 난생처음 보는 두 줄이 나타났다.

막상 두 줄인 걸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코로나가 전국을 휩쓸던 시절에도 걸리지 않고 무사히 버텨왔는데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코로나에 걸린 것일까.


딸은 요즘 코로나가 유행하기에 항바이러스 약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마침 자기 약국에 약이 있으니 근처 병원에 가서 진료를 보고 처방전을 받는 게 좋겠다고 해서 딸과 같이 출근했다.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해보니 역시 두 줄이었다. 항바이러스제를 처방하기 전에 간과 신장의 수치를 검사해야 한다고 해서 피검사를 하고 일반 감기약을 가지고 집으로 왔는데 약을 먹어도 전혀 낫질 않는다. 모든 약속을 다 취소하고 마스크를 하고 누웠는데 몸이 너무 무겁다.

다음날 일찍 병원에 가서 피검사 결과를 보니 다행히 수치가 괜찮아서 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다. 딸이 수액을 맞는 게 좋겠다고 해서 수액을 맞고 집으로 왔더니 조금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그날부터 12시간 간격으로 약을 먹었는데 3일 차가 되니 조금 효과가 보였다. 여전히 가래가 있고 목의 통증은 심했으나 열이 내리고 기침이 덜하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완전 쉬어서 나오지 않았고 그 시기에 전화한 친구는 깜짝 놀라서 어쩔 줄 모른다. 몸은 완전히 까부라져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누워 있어도 계속 잠이 오고 일어나면 핑 돌면서 어지러웠다.

장장 2주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어서 오로지 누워 자고 쉬는 것만 반복했다. 항바이러스제를 5일간 먹었는데 약을 다 먹어갈 즈음에 목의 통증이 조금 나아졌다. 면도칼을 삼키는 듯한 통증이 사라져 신기해서 자꾸 물을 먹을 정도였다. 2주가 지나며 코로나 증상은 사라졌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식욕도 없고 삶의 의욕이 없는 상태로 또 한 주가 지나갔다. 거의 3주를 코로나로 앓았던 거다.

예전에 엄마가 한 해가 다르게 몸이 달라진다고 해서 엄살 아니냐고 했는데 그 말을 급반성했다. 사람은 자기가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고는 모른다. 내가 아무리 노년의 삶을 이해한다고 해도 경험하지 않고는 모르는 법. 이번에 코로나를 통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허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이는 숫자가 아니다. 나이가 갖는 몸의 신호가 있기에 그걸 무시하고 마냥 젊은이처럼 살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나이에 갇혀 삶에 제약을 두면 안 되겠지만, 나이가 가진 조건을 무시하면 큰코다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그 나이에 맞게 살게 되겠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뛰어넘거나 무시해서는 몸에 탈이 올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셈이다. 몸이 아프니 매사가 느려지고 의욕이 사라지며 그동안 해왔던 일상의 패턴이 무너져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습관처럼 해오던 일이 생략되고 지연되었다. 60대의 몸과 70대의 몸이 딱 10년 차이가 아니라 곱하기로 나빠진다고 하던 어떤 책 속의 말이 떠올랐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이렇게 몸이 아프고 나면 그 길이 지금과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기에 지금 현재, 이 시간이 소중한 것이리라.

몸이 조금 회복되니 그제야 쌓아둔 책이 눈에 들어오고 열흘 이상 켜지 않았던 노트북을 열었다. 작년에 화제가 된 이혼 전문 변호사가 쓴 <굿 파트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인물들이 살아 있고 대사가 의미 있어서 꽤 괜찮은 드라마라고 생각이 든다. 극본을 쓴 최유나 변호사의 에세이 <우리 이만 헤어져요>와 <혼자와 함께 사이>를 읽었다.

에세이도 깔끔하면서 이혼 전문 변호사로 살아온 삶의 이력이 드러나 있어 흥미로웠다.

작가는 말한다.

'모든 것은 한시적이다'라고.

어떤 것이 영원할 거라 생각할수록 그 기간은 짧아진다. 이것이 관계의 속성이고, 우리 인간의 한계다.

우리는 매 순간 내 옆에 있는 사람과, 세상과 그리고 나 자신과 조금씩 이별하고 있다고.

그러면서 강조한다.

관계는 그냥 두면 자연히 멀어지다 소멸되는 것이 정상이다. 관계를 그냥 두어선 절대 안 된다고.

나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것이 좋은 관계 맺기의 기본이라고 말하는 이 글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맺어 온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결국, 내가 행복하기 위한, 좋은 관계를 갖는 데 필요한 것은 나 자신을 살피고 돌봐서 바로 서게 하는 일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거다.

혼자일 때도, 함께일 때도 나 자신을 많이 아껴주고 사랑한다면, 내가 지금 비혼이든 기혼이든 이혼이든 이 상태는 내 행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마무리하는 책을 덮으며 나는 최근에 SNS에서 읽은 짧은 글을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이 지나면 당신은 물론 당신의 친구, 가족, 당신을 아는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당신이 그토록 애써 장만한 집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고 당신을 기억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이 세상에 남지 않는다.”

100년도 안 되는 기간에 모든 것이 소멸되어 버리는 존재. 그 기간 동안 존재의 의미를 증명하고자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이 결국 '무'로 돌아간다면 나의 애씀과 노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더 나은 삶을 위한 인간의 노력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외부의 소음에 매몰되지 말고 나의 본연의 특성에 대해 이해하고 다독이고 보살피며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그러나, 무엇보다 건강해야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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