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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계에이방인 Jun 16. 2023

당신이 행복 해지지 않는 이유

[행복의 기원] 서평


지금 행복한가? 아니면 불행한가.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 요즘처럼 온라인이 발달한 시대에선 유독 나만 불행한거 같다. 실질적이 만남도 줄어들고 3년 가까이 ‘코러나’라는 바이러스 때문에 더욱더 각자 물리적으로 고립 되었다. 그러면서 온라인 세상은 더욱더 확장되고 커졌다. 이제 거의 모든것이 온라인 세상에서 이루어진다. 인간관계도 마친가지다. 온통 SNS라는 온라인 세상에는 다들 행복해 보인다. 불행해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만 불행해 보인다. 이것은 비단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닐거다. 온라인에서는 세상 모든 한국인이 최고로 행복해 보이는데 정작 주위에는 행복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인의 행복

우리는 정답을 찾는 사회속에서 살아왔다. 아주 어린 초등학교때부터 수능시험까지 ‘정답’을 찾는 방법만을 배웠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배운다. 대학교도 마찬가지고 사회에 나와서도 미찬가지다. 정해져있는 임국적인 ‘정답’이 있다. 학생일때는 시험이었다면 사회에서는 문화다. 모두가 공통으로 지켜나가야 하는 법이나 규율과는 다르다. 문화는 공유된 이해, 가치관이다. 구성원간의 암묵적이 합의가 존재하는데 한국은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집단주의 문화가 깔려있다.

학자들이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널리 사용하는 개념 중 하나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다(Triandis 1995)-행복의 기원 160p. 개인과 집단간의 상호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인데 개인의 뜻대로 선택하고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문화는 개인주의 이고 집단이 개인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배척하는 문화는 집단주의 이다. 한국늘 포함한 아시아권 국가들이 집단주의 문화가 강하다. 이런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는 마치 정답이 정해져 있고 그 정답에 맞는 가치와 행동만이 옳은것 이라 강요 받는다.

흔히 정해져있는 행복의 정답 마냥 일류대학, 높은 연봉의 대기업, 비싼 차, 비싼 옷, 비싼 집 이런 조건들이 갖추지 못 하면 낙오자, 패배자 처럼 느껴진다. 이 조건들을 가만히 보면 결국 '..보단 나은' 이다. 남들보다 나은. 기준이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게 있다. 한국은 그만큼 타인의 시선에 많이 신경을 쓰면서 살아간다. 초집단주의에서 오는 부작용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개인의 자유는 현격히 떨어진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오죽하면 '가만히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개인의 개성을 죽이는 문화. 우리는 남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살아가고 있었다. 그 속에서 한국인은 심리적으로 탈진에 이르렀다. 결국 집단으로 무기력에 빠진 것이다.


행복

행복은 무엇일까?

행복: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네이버)

행복은 생각이 아니다. 만족감, 기쁨의 감정이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감정의 경험이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 행복해지기 어렵다.

불행한 사람음 긍정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의 본질적으로 ‘생각’이 아님 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생각을 고치리고 조언하고 있다.
-행복의 기원 16p

지금 당장 불행에 빠져서 삶이 무기력한데 '긍정적이 사고'를 가지라고 조언 해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집단적으로 이런 무기력에 빠진 상태이다. 정신승리로는 어림도 없다. 좀더 근복적인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행복은 기쁨의 감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행복을 느끼게 되었을까


인간이 농격사회를 거쳐 본격적으로 문명을 가진것은 6천년 전부터다. 인류가 처음 탄생한 것이 600만년 전이라 한다면 지금의 우리는 총 인류가 살아온 세월에 티클도 되지 않는다. 좀더 정량적으로 표현 하자면 600만년을 1년으로 압축한다면 지금 우리는 1년 중 고작 2시간밖에 되지 않는다.(-행복의 기원 37p). 우리 유전자는 여전히 초원에서 사냥하며 생존하던 그 유전자가 박혀있다. 그 당시의 가장 중요했던건 바로 생존이다. 말그래도 죽느냐 사느냐 였다. 무자비하 자연 환경과 다른 대부분의 동물들은 경쟁 상대였다. 생존이 가장 우리에겐 중요한 부분이었다. 600만년간 쌓아온 유전자는 항상 생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우리는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몸의 반응은 첫번재로 자기보호, 즉 생존이 디폴트 값이다. 대부분의 특성은 생존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행복을 느끼는걸까. 행복이 생존에 도움을 주는 것일까?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생존을 하기위해 행복이란 수단을 사용하게 되었다. 행복은 감정이다. 좋은 감정, 쾌감이다. 음식을 먹었을때 그 쾌감을 알아야 다시 또 사냥을 하러 나갈 것이다. 그리고 집단을 이루어야만 생존이 가능했던 시대에서 인간관계는 곧 생존이다. 인간관계에서 좋은 감정이 발생해야 했다.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며 모든 생각과 행위의 이유는 결국 생존을 위함이다.
-행복의 기원 48p


무엇이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의 이유는 생존이다. 우리는 홀로 살아갈수 없는 존재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서로 함께 협력했기에 지금가지 살아 남았다. 함께 한다는 '인간관게'의 DNA가 우리의 유전자 깊이 박혀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결국 우리에겐 식량과 '사람'이 필요하다. 행복이라는 쾌감은 누군가와 함계 할때 발생한다. 아무리 진귀한 장면을 목격 하더라도, 눈앞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어도 혼자라면 어떨까. 과연 그런것들이 의미가 있을까. 아무리 사소한 것들이라도 함께 해야지만 진짜 행복을 느낄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최고의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냐고? 2019년 8월 우리 아들과 처음으로 대면한 날이다. 그날의 충격, 마약 1톤은 때벼부은 듯한 깊은 환희의 순간 이었다. 쾌감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어떻게

행복이라는 쾌감은 경험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그래서 물질로는 큰 행복을 느깔수가 없다. 명품을 사는 경험은 분명 쾌감을 주겠지만 물건은 더이상 경험이 되어주지 못한다. 바로 적응이라는 우리의 능력 때문이다. 쾌감도 적응이되고 기분이 가라앉아야 또다시 쾌감을 찾아 나설것이다. 그리고 불쾌한 감정도 적응이 되어야 또다시 일상을 살아갈수 있다. 이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물질로 행복해질수 없다는 이유는 지금 가진 물질 보다 더 큰 물질로만 쾌감을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자원은 한정적이다. 행복이라는 쾌감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 기능이 계속 작동하기 위해선 본래값으로 돌아가는 초기화라는 적응 단계가 일어나야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할 것 인가. 행복은 단 한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생존을 위래 초기화라는 적응이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행복의 기원 124p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경험. 이것이 행복의 핵심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를 이루지 못하면 생존하기 가 힘들었다. 생존에는 사람과의 교류가 꼭 필요하다. 행복은 생존에 꼭 필요한 감정이다.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행복을 얻을수 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것 만큼 최고의 인생도 없을듯하다

다시 한국인의 행복
한국인이 행복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문화의 역할이 컸다. 사람이 우리에게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최악의 불쾌감도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위기 상황에선 뭉칠수록 큰 힘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선 오히려 피로감을 준다. 개인의 가치가 존중 받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는 넘어섰다.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고 경제적으로도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경제라는 위기를 극복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위기속에 있는것 처럼 초집단주의 문화에 빠져있다. 개이늬 가치와 존중은 말살되고 개인의 자유마저 통제하려고 한다. 문화속의 한국인들은 정해진 정답에 따라서 움직이기를 강요 받고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되었다. 남에게 평가 받기 위해, 남에게 행복하게 보이기 위해 살아간다.
인간에겐 자유 의지가 있다. 본능적으로 억압받기를 거부한다. 행복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이다. 그 개인적인 경험을 스스로가 선택할수 있어야 한다. 내 삶의 주인이 타인이 아닌 자신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 행복 해지길 원하지만 정작 어떻게 행복해지는 고민 해보지 않는다. 어쩌면 변화할 용기가 부족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동안 해왔던 관습에서 벗어나는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변화에는 고통이 따른다. 하지 않았던 것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행복의 절대 조건이지만 남을 위해 사는것은 바람직 하지 못하다. 서로 존중하며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행복한 모습이 아닐까


내가 바라는 것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나는 어떻게 행복해질수 있을까 가 아닌 나는 왜 행복해지고 싶은가 이다. 단순히 좋고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좋기 때문이 아니다. 앞서 얘기 했듯이 생존이다. 단, 나만의 생존이 아니라 함꼐 생존 해나가고 싶다. 내 주위에 행복한 사람들과 함꼐 하고 싶다. 내가 그들에게 약간이라도 영향력을 끼칠수 있으면 좋겠다. 행복할수 있는 문화를 가꿔나가고 싶다.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다. 부모가 된다는것은 그동안 살왔던 세계와는 다른 스케일의 영역이다. 나의 다음 세대는 자신의 기준을 똑바로 세우고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질수 있는 청년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비싼 교육을 시켜줄수있는 제력이 안되지만 함께 공부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줄수있는 그런 문화 공동체를 만들어 내고 싶다. 혼자서는 불가능 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 내가 바뀌어야 주위가 바뀐다. 그래서 함꼐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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