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학교/기무라 아키노리, 이사카와 다쿠지/목수책방/2019
작년 2024년도 10월 즈음, 김점선 작가 글쓰기 연수 참여했다가 그 연수 장소 옆 들녘책방에서 고른 책이다. 그곳은 생태책방이라 생태 관련 된 책들이 다양하게 있다. 그중 이 책이 끌렸다. '흙의 학교'라는 단출한 제목이 좋았다. 아버지 보다 7살 늦게 태어난 1949년생 일본 농부인 기무라 아키노라가 경험한 <기적의 사과 이야기>다. 아내가 농약에 약해 무농약 사과 재배를 시작한 이야기와 자연농법 중 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은 기무라 아키노리가 말한 내용을 <기적의 사과>의 저자인 이시카와 다쿠지가 정리한 내용이다. 그래서인지 글이 어딘가 답답한 문어체가 아닌 술술 읽히는 시원한 구어체이다.
이 책 주요 내용은 첫 장 '흙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나요?'를 시작으로 마지막 장 "자연의 시간을 산다는 것"까지 마흔네 꼭지의 흙의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학자가 하는 실험의 결과가 아닌 농부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임을 강조하며 농부 기무라는 겸손하게 자신이 체득한 흙의 대한 이야기를 나눠준다. 49년생인데도 일본 농업과 우리나라 농업은 비슷한 곳이 많다. 제초제를 사용한 시기와 경운기가 등장한 시기. 우리나라는 요즘 농업기계처럼 사용할 수 있는 소를 많이 키웠는데, 그 용도로 말을 키운 일본의 농업은 생소했다. 말이 물이 첨벙첨벙한 모내기용 논에 들어가 쟁기질을 할 수 있을까 상상해 본다.
중고등학교 시절 농업시간에 배운 농업 상식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 학교에서 하고 있는 학교생태텃밭 시간 배운 지혜도 다시금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효율성과 생산성을 이유로 '타인에게 등 떠밀려 마지못해하는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는 이야기에서, 우공이산처럼, 남들이 비웃어도, 돈이 되지 않아도 묵묵하게 자신을 소신을 걷는 유기농 농부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농부는 자신과 가족생계를 책임질 수 없는 생산량의 농업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 외 질인 칼이라 외웠던 질산, 인산, 칼륨 중 질소를 잡아주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있는 콩을 논이나 밭에 많이 심어야 땅이 건강해진다는 이야기, 흙도 연작으로 인해 피로해지면 쉬어야 한다는 것. 그때 소독을 한다는 것은 미생물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으로 땅에 좋지 않다는 것. 나무 가지치기를 할 때는 잎맥의 모양을 본떠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는 것. 해충을 잡아먹어서 육식에 가까운 익충보다 식물을 먹는 초식의 해충 얼굴이 더 해맑다는 것 등 어떻게 보면 작은 경험이지만 책을 읽는 나에게는 놀라운 발견이다.
이 책의 인상적인 부분은 "싹이 나기 전에 나오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꼭지글이었다. 콩이나 벼 등 다양한 농작물 씨앗을 심으면 당연히 싹이 먼저 나올 거라 생각한다. 사람은 역시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한다고 정답은 뿌리였다. 그다음이 싹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땅 위에서 내려다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흙 속에 감춰진 뿌리는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초록색 싹에만 집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뿌리가 먼저 나오는 이유는 일단 뿌리 끝에서 물이나 영양분을 빨아들여야 하니 말이다. 이것을 아이들이나 사람들에게 비유해 보면 인의예지라는 네 가지 이전에 어느 곳에서 누구에게 어떤 영양분과 물, 미생물을 만나는지가 중요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흙이라는 환경이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흙인 환경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 결과로 나온 싹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그것으로 아이들을 사람들을 판단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 뿌리를 튼튼하게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자연재배를 이야기한다. 과잉 비료 공급과 지나친 농약 살포, 미생물 하나 없는 무균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처럼, 아이들 스스로 면역력을 키우는 시간을 주지 않고, 알아서 다 해주는 온실 속 화초처럼 키워서는 안 된다고. '사과상자와 학교' 글에서 사과를 수확하면 어느 정도는 못난이 사과들이 나온다고 한다. 그 못난이의 기준이 모양이나, 생김새이다. 사과의 본질은 맛이나 영양은 아니다. 그 못난이 사과들은 주스나 식초처럼 가공품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버리는 게 아닌 그 사과의 쓸모에 맞게 사용되듯 학교에서 모두 다 똑같이 만들려는 획일적인 교육을 넘어 개성과 차이를 존중하는 교육을 하라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아이들이 뒤떨어지는 게 아이 책임이 아니라 환경 즉 어른책임이 아닐까 반문한다. 어릴 적 딸기농사를 지었던 시절 부모님은 항상 못난이 딸기를 - 비딸기적인 표현이지만 기형과 라고까지 했다. 먹으라고 하면서 이 아이들이 생김새는 장갑 글러브처럼 생겼어도 맛은 제일이라고 했던 말씀이 기억난다. 앞에서 이야기 나눴듯 싹 이전에 뿌리가 있듯, 열매 생김새 이전에 영양분과 맛을 이야기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니.
"언젠가 한 번은 깊은 숲 속에서 풀이나 나무에 햇빛이 어떻게 비치는지를 관찰하면서 하루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아침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계속 보고 또 본 결과 알게 된 것은, 어떤 풀도 하루 중 한 번은 어디에선가 햇빛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사광선을 잘 받지 못해도 하루에 한 번은 빛을 받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신비로운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어쩌면 키 큰 나무가 키 작은 식물을 위해 햇빛을 조금 양보해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무가 성장해 가면 밑의 가지가 자연스럽게 말라서 떨어집니다. 빛이 들지 않아서 효율이 좋지 않으니 가지를 떨어뜨리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나무는 자신의 밑에서 자라고 있는 잡초에게 조금이라도 빛이 전달되게 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가지를 떨어뜨리는 게 아닐까요? 왜냐하면 잡초가 자라는 편이 나무한테도 도움이 되니까요."
P.178
이 내용에 대한 과학적인 증명을 원하지 않는다. 이렇게 농사를 지으며 자신이 기른 사과나 익충과 해충의 표정을 관찰하고 땅의 온도를 재고 산속 민들레와 자신의 밭 민들레 관찰했던 작가(구술자)가 못다한 자연의 시간이 더 궁금해진다. 이렇게 자연의 시간을 살아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흙의 학교 이어 풀의 학교로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