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487명으로 연결된 고독
4.
장례식 다음 날, 나는 회사에 병가를 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남자의 얼굴이, 분홍빛 혓바닥이, 시뻘건 흙바닥이 계속 떠올랐다.
하지만 이상했다.
30년 전에는 그저 무섭기만 했던 그 장면이, 지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그는 왜 그곳에 있었을까?
그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는 무엇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리고 가장 무서운 질문: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5.
2호선 아침 8시. 출근길이었다.
300명이 한 칸에 밀려 들어온다. 어깨와 어깨가 닿는다. 숨소리가 들린다. 누군가의 향수 냄새가 난다.
이렇게 가까이 있지만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누군가 쓰러져도 다들 모른 척할 것이다. 아니, 모른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모르는 것이다.
300명이 함께 있지만 300명이 각자 혼자다.
문득 생각했다. 만약 내가 오늘 죽는다면 이 중 누가 알아챌까?
회사에서는 "왜 안 왔지?" 정도일 것이다.
가족들에게 전화가 갈 것이다. 장례식이 치러질 것이다. 조문객들이 올 것이다.
하지만 진짜로, 진심으로 나를 알았던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나도 무연고가 될 수 있구나.
그날, 나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검색했다.
"1994년 자살 사건 ○○초등학교 뒷산“
6.
기사는 단 한 줄이었다.
"○○초등학교 인근 야산에서 40대 남성 A씨 자살... 유가족 없어 무연고 처리"
'무연고'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신원은 확인되었지만, 연락할 가족이 없었다. 친구도, 직장도, 아무도.
나는 더 검색했다.
무연고 사망자 통계:
2010년: 1,300명
2020년: 3,000명
2024년: 4,200명
숫자가 늘어난다. 사람들이 사라진다. 아무도 찾지 않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에게도 분명 카톡 친구가 있었을 것이다.
연락처 목록이 있었을 것이다.
연결되어 있었지만 결국 무연고로 죽었다.
우리는 무엇이 다를까?
7.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켰다.
밤 11시 53분. 인스타그램 피드가 흐른다. 행복한 사진들. 맛있는 음식들. 여행 사진들. "#멋지다" "#친구들과여행" "#가족여행"
친구 목록: 487명.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해본다. 1분... 2분...
아무도 떠오르지 않는다.
487명의 친구가 있지만 나는 혼자다.
스크롤을 내린다. 계속 내린다. 멈추지 않는다.
멈추면 고요해지니까. 고요해지면 들리니까. 내 안의 그 소리가.
"너도 무연고야.“
8.
그 주말, 나는 30년 만에 그 마을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초등학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담장은 새로 칠해졌고, 운동장은 넓어졌지만, 뒤편의 산은 그대로였다.
"저기 좀 올라가 봐도 될까요?"
수위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세요. 요즘 아무도 안 올라가서 길이 험해요."
산을 오르며, 나는 생각했다.
왜 나는 30년 만에 여기로 돌아왔을까?
그 남자를 위해서?
아니다. 나를 위해서다.
나는 지금 힘들다. 매일 출근하고, 일하고, 밥 먹고, 자고, 또 출근한다.
487명의 친구가 있지만 혼자다.
가족이 있지만 외롭다.
연결되어 있지만 단절되어 있다.
그리고 두렵다.
나도 그 남자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그래서 나는 그에게로 돌아왔다.
그가 왜 그랬는지 알고 싶어서.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서.
다음 3화에서 계속됩니다.
그 산, 그 소나무,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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