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팔아 돈을 버는
학교 교육연구재단에서 장학생을 모집한다고 한다. 모집 요건은 직전 학기 성적이 2.5 이상인 자로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자라고 한다. 제출 서류는 본인의 가정형편을 잘 나타낼 수 있도록 기술한 에세이와 부모님의 소득금액증명서. 금액이 꽤 크다. 한 학년당 한 명씩 선정하는데, 300만원이나 준다고 한다.
글을 쓰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대상으로 얼마나 이 장학금이 절실히 필요한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적절한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가정형편을 잘 나타낼 수 있도록 기술할 것’이라는 친절한 괄호 속 설명을 보고는 그만 ‘가난을 팔아 돈을 버는…’이라는 생각이 떠올라버려서, 할 일 리스트에 적어 두고 어영부영 미루다 결국 모집 기간이 하루 지나버렸다.
그래도 일단은 써 볼 생각이다. 정말로 돈이 필요하다면 가난이든 뭐든 팔아서 돈을 구해야겠지. 300만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책상 앞에 앉아 손가락을 놀리는 것으로, 빚을 갚기 위해 엄마가 한 작은 일거리를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는 것으로 그만한 돈을 준다면 꽤나 남는 장사이다.
나 말고도 간절히 저 돈이 필요한 학우들이 이미 제 시간에 에세이를 써서 냈을 수도 있겠지. 어쩌면 아무런 소득 없이 그저 누군가에게 거뭇거뭇한 우리 집 재정 상황을 드러내 보이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난 며칠간 시험과 논문 작성제 원서 접수 때문에 정신이 없었노라 변명하며, 혹시나 이미 늦었다면 이 글은 고려해주시지 않아도 된다 하면 혹여나 받아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