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It's good to be back)!

oasis live '25 @고양종합운동장

by Charley

그러니까, 태초에 오아시스가 있었다.

지금의 나의 음악 취향의 8할은 오아시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들은 내 음악 감상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아시스가 내 아이팟 플레이리스트에 들어온 이후로 블러와 스웨이드, 버브 같은 그와 동시대에 활동한 밴드들이 하나둘씩 앨범 칸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틀즈, 데이빗 보위, 더 후 처럼 그들이 언급하거나 팬심을 드러낸 밴드의 음악으로까지 점차 그 가지를 뻗어 나갔다. 미국 틴 팝의 세계를 지나 제이 팝의 세계에 몸담고 있던 나는 오아시스의 가호 아래 다양한 색깔의 로큰롤과 조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가 한창 오아시스에 빠져있을 무렵에 이미 그들은 굉장한 일곱 장의 정규 앨범만 덩그러니 남겨놓고 멀리 떠나가 버린 존재였다. 이 말은 즉, 나는 오아시스를 좋아하게 된 이래에 각종 음악 다큐멘터리의 영상 자료, 이제는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는 메인로드에서의 역사적인 공연처럼 커다란 스타디움을 관객들로 가득 채운 그들의 대규모 라이브 공연을 경험한 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내 마음 한 구석에서 결핍의 형태를 띠는 무언가로 꽤나 오래 자리 잡게 되었다. 그 무렵에는 "갤러거즈 화해해."라는 말을 염불처럼 외우고 다녔을 정도니까, 뭐.

물론 한국을 투어 리스트에서 결코 빠트리지 않는 노엘 갤러거의 라이브는 되도록이면 항상 참석했고, 그때마다 작은 공연장에서 느낄 수 있는 아티스트와 관객 사이의 가까운 거리감과 호흡 같은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는 했다. 그렇지만 사람은 항상 가질 수 없는 것에 열광하기 마련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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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25년 10월 21일 20시. 음악적으로 너무나 친숙하지만 라이브 공연에 대해서는 완전히 미지의 세계인 오아시스의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내한 공연을 하는 아티스트 치고는 흔치 않은 지연 없는 정시 공연 시작이었다. 십 년도 더 전에 형제의 화해를 기원했던 나의 염원이 전해지기라도 한 듯 손을 맞잡고 무대 위에 등장한 노엘과 리암은 기나긴 기다림 끝에 시작된 첫 곡으로 Hello를 들려주었다. Hello가 오아시스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노래를 꼽을 때 상위권에 들어가는 곡은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 이보다 더 완벽하게 어울리는 그들의 다른 음악은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무대였고, "Hello (It's good to be back)"라는 노랫말은 마치 그 자리에 모여있는 우리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오아시스의 메시지 같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컴백이었다.


Hello에 이어 연주된 Acquiesce에서 두 형제가 주고받는 가사에 잠시 울컥하고, 지금까지 물리적인 매개체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던 그들의 음악들이 실제로 내 귀에 직접 꽂히는 것에 대한 감동에 사로잡혔다가 문득 다시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내가 이번 투어에서 가장 듣고 싶어 했던 곡 중 하나인 Slide Away의 전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사랑을 운운하는 노래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에 이 곡을 향한 나의 애정은 다소 이례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정말 완벽한 love song이고 오아시스의 초기 명곡의 대열에 끼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대작이므로 라이브로 듣는 것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뒤이어 개인적으로 오아시스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음악인 Live Forever와 Rock 'n' Roll Star가 연달아 연주되었을 때는 감정이 점점 고양되어서 관객으로서 오늘 이 공연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특히 Live Forever는 누가 나에게 오아시스의 가장 좋아하는 곡을 물으면 척수반사처럼 튀어 나갈 수준의 곡인 데다, "Maybe you're the same as me. We see things they'll never see. You and I are gonna live forever."라는 가사를 커다란 공연장에서 나와 같은 마음인 수많은 관객과 함께 따라 부르다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울림이 있었다. 아티스트와 같은 것을 느끼고 본, 이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음악이 선사하는 거대한 화학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는 느낌이 들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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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한 귀가 일정 때문에 마지막 앵콜 곡을 채 듣지 못하고 공연장 밖을 나섰다. 끝까지 몰입해서 공연을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쉬워지려는 찰나, 오아시스의 음악과 하나가 되기 위해 고양종합운동장 앞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쳤다. 경기장에서 대화역까지의 그렇게 길지도 짧지도 않은 거리를 걸으며 각자 나름대로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팬들과 함께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Champagne Supernova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니 이것도 나름대로 낭만적인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십 년을 훌쩍 넘는 기다림 끝에 마침내 경험한 오아시스의 공연은 단순히 좋아하는 밴드의 라이브를 본 것 이상의 의미였다.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것은 어쩌면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같은 음악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 순간을 공유하는 경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아시스가 내 음악 취향의 시작이었듯이, 이날의 공연은 또 다른 시작점이 될 것 같다. 이제 나는 오아시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날 밤 공연장의 열기와,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던 수많은 목소리들을, 그리고 "We're gonna live forever"를 외치던 그 순간의 벅찬 감정을 떠올리게 될 테니까.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다시 우리에게 와 준 오아시스에게, 그리고 이 멋진 순간을 함께한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It's good to be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