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후반 뉴질랜드 워홀러의 고민
I've been in Wellington, New Zealand since 18th September, 2017
어느새 작년 일이 되었다. 입사한 지 딱 1년이 되는 시점에 퇴사를 하고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에 지원을 해서 비자 승인까지 받고, 현재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에서 생활하고 있는 중. 작년 5월에 비자 승인을 받고 항공권을 구입해서 9월에 뉴질랜드에 입국했다. 대학생 때부터 뉴질랜드에 워홀을 오고 싶다고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십 대 후반에 오게 될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
현재는 이곳에서 조금 더 머무르기 위해 워크 비자를 신청하고, 비자가 승인되길 기다리는 중. 워크 비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내가 신청한 워크 비자는 Essential Work Skill 이라는 워크 비자이다. 승인까지는 최대 69일이라는데 이제 신청한 지 한 달이 지나가는데 진행과정을 알 수 없어서 조금, 아니 많이 답답하다. 결과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어. 어느 쪽으로든 마음을 결정할 수 있도록.
아, 이곳에서의 내 직업은 Chef 이다. 현재 나름 바쁜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가진 학력도, 경력도 모두 외식분야와 관련된 것. 그래서 어쩌면 이 곳, 뉴질랜드에서 워크 비자를 신청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현재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고 있고 이와 관련된 학력과 경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제 요리는 그만하고 싶다. 그만하고 싶어. 나는 생각보다 맛에 대한 연구에 흥미가 없고 어찌 보면 나의 생존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 직업을 가지고 있단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레스토랑에서 일할 땐 ‘버틴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그때의 다이어리를 뒤적여보면 유독 눈에 많이 띄는 문장. 울기도 많이 울었고 내가 생각해도 정말 감정 없이 일을 하면서 버티고 있구나 란 생각이. 어떤 일이든지 항상 즐거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 전부터, 아니 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내 성격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래서 버티는 나 자신이 싫어서 어찌 보면 뉴질랜드로 ‘도피’를 한 건데 내가 여태껏 해온 익숙한 일을 이곳에서 계속하고 있구나.
어찌 보면 새로운 걸 시도할 수도 있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하지만 생존 영어를 구사하는 나로선 이곳에서 먹고 살아남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가진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여 취업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일하고 있는 레스토랑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봐도 괜찮은 편이다. 좋은 보스를 만났고 좋은 친구들과 같이 일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워크 비자 신청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기도 하고.
적응을 하고 어느 정도 먹고살만해지니까 스멀스멀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하, 인간이란 건 참으로 간사한 것. 쉐프는 내 직업이 아닌 거 같아 라는 생각이 다시 든다. 요리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사실 이 생각은 한국에 있을 때부터 참 많이 했는데 일하는 환경이 더 나아지고, 그러니까 조건이 더 좋아져도 아닌 건 아닌가 보다.
이 곳, 뉴질랜드에서 오래 살 생각은 없는터라 한국으로 돌아갈 텐데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살 수 있을까. 내가 가진 학력, 경력과 전혀 무관한 일을 시도할 수 있을까. 요리와 관계없는 다른 분야는 모르겠어서 학교를 들어가서 공부를 할까 싶기도 한데 내년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 나이 서른. 솔직히 겁이 난다. 하고 싶은 건 십 대 때 잠깐 꿈꾸었던 디자인과 관련된 것인데 비전공자인 내가 도전할 수 있는 일일까. 그리고 막연하게 꿈만을 좇을 수 없는 나이가 된 거 같아서, 현실을 더 직시하게 된 거 같아서 약간은 슬프기도 하다.
어렸을 땐 서른 살 정도가 되면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어느 정도 하면서 살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나이 정도가 되니 내가 그동안 뭐하고 산 건가 싶다.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고 인턴십도 해외로 다녀오고 직장생활도 했는데 생각보다 가진 돈도 없고, 경험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것 같은 기분. 내 손에 쥐어진 게 아무것도 없는 거 같다.
나이가 들면 그에 따라오는 장점이 있겠지만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나의 경우 새로운 걸 시도하는 데 겁부터 먼저 먹게 된다. 행동으로 무작정 옮기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기회비용을 따지고 어느 게 나을까 고민을 하고 불안함을 느끼는 것.
새로운 직업에 관한 건 뉴질랜드 생활을 접고 돌아갈 때 해도 늦지 않을까.
한밤 중에 고민을 가장한 하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