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순수하고 지혜롭고 따뜻한

<프랑켄슈타인>(기예르모 델 토로, 2025)

by 안효원
f1.jpg


서곡: 폭탄을 쥔 사내


폭탄을 손에 쥔 사내가 있다. 불꽃이 튀면서 심지는 점점 줄어든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폭탄을 던질 줄도, 멀리 도망갈 줄도 모른다. 저 사내는 무슨 사연이 있기에 세상에서 가장 추운 곳에서 가장 뜨거운 폭탄을 쥐고 있을까. 행여 그의 눈빛에서 악의나 광기가 봤다면 그를 피해 도망갈 것이다. 하지만 그의 눈은 순수하고 슬퍼 보이기까지 하다.


f2.jpg


1부: 폭탄을 쥔 사내를 만든 사내


이 사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를 만든 사내를 이해해야 한다. 빅터 프랑켄슈타인, 당대 최고의 의사인 아버지와 재력 가문의 일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순수하고 따뜻해 보였다. 어머니와 노는 모습이 영락없는 아이였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필요한 아들은 맑은 아이가 아니었다. 자기 이름에 먹칠하지 않을 ‘공부만 잘하는 아이’면 족하다.


아버지는 아이의 암기 실력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체벌을 가한다. 체벌이라 하면 손이나 다리가 먼저 떠오르는데, 늙은 사내는 아이의 얼굴을 택한다. 얼굴 따위는 의사로 사는데 아무 필요가 없다면서 말이다. 회초리가 서늘한 바람을 내며 순식간에 아이의 얼굴을 강타한다. ‘얼굴은 허영이야’란 가르침(?)이 아이의 마음에 새겨질까? 아이는 얼굴 아닌 마음이 병들어 간다.


소년 빅터의 마음의 병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는 확신한다. 어머니와 아기 중에 아버지가 자신의 종족 보존을 위해 동생을 선택했음을…. 그날 밤 아이는 수호천사(혹은 악마)와 거래를 한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악해지기를 두려워하지 않겠다! 최고가 되어 보란 듯이 아버지 이름 위에 서고 말리라! 최고를 위해 존재할 뿐이다!


f3.jpg


2부: 프랑켄슈타인과 내란


성인이 된 빅터는 사람을 고치는 것을 넘어서 사람을 만들고자 했다. 역사상 어떤 의사도 할 수 없었던, 죽음을 극복하고, 생명을 창조하는 위대한 역사를 만들고 싶었다. 운 좋게(?) 재력가를 만나 든든한 후원을 받아 그는 시체를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전쟁과 기아, 범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자르고 수집해 세상에 없던(없어야 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이 광기 어린 과정을 보면서, 이렇게 좋은 작품을 보면서 이 생각이 떠올랐다는 게 매우 슬프지만, 12.3계엄과 내란이 떠올랐다. 광기(그리고 술기)가 가득한 한국의 사내는 군대, 경찰, 공무원 등 각 조직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고위급) 것들을 떼다가 계엄이라는 괴물을 만들었다. 문제없는 사회는 아니지만, 내란을 일으킬 문제는 전혀 없는 나라를 괴물이 지배하려고 했다.


내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자신들도 내란이 묻었는지, 아니면 그 욕망이 같은 괴를 하고 있는지, 내란을 끝낼 줄을 모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공부 잘하고 시험 잘 봐서 높은 자리에 간 사람들. 그 사람들도 어릴 적 빅터처럼 맞았나? 공부하는 기계가 되어 이성과 양심 따위는 개나 줘 버린 걸까? 확실한 것은 지금 우리가 여전히 괴물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


f4.jpg


에필로그: 순수하고 지혜롭고 따뜻한 사내


빅터는 자신이 만든 사내가 괴물이라 했지만, 사내는 순수하고 지혜롭고 따뜻하다. 사내를 그렇게 만든 건 두 사람, 자신의 존재를 귀히 봐준 여인과 자신의 흠은 ‘괜찮다’고 말해준 노인 덕분이다. 지금 한국사회가 마주한 괴물은 변할 것 같지가 않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우리가 사내가 되어, 서로 존중하고 위로하며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것. 작품의 결말 장면은, 내가 기대한 것과 정확히 일치하여, 소름이 돋았다.


이제 배의 방향을 돌릴 때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말이 줄어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