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엄마와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있다.
올해 엄마랑 같이 자전거를 타는 건 처음이다. 6학년이라고 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 그런데도 예전 같으면 종알종알 엄마한테 늘어놓았을 말들을 잘 안 하게 되었다. 엄마랑 멀어진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오늘 엄마가 반차를 내고 자전거를 타자고 했을 때 기뻤다.
우리는 아파트 단지와 단지 사이에 있는 공원길을 따라 달렸다. 길 양쪽으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매년 보는 꽃길이지만 늘 눈부시다. 이 무렵에는 자전거 도로에도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닌다. 빨리 달릴 수 없다. 엄마와 난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꽃길을 즐겼다.
꽃잎 하나가 살랑, 하고 내 눈앞으로 떨어지는 순간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브로콜리 꼭 먹어야 해?”
엄마는 페달을 천천히 밟으면서 뭐라고? 라고 묻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평소보다 진한 엄마의 빨간 립스틱이 눈에 들어왔다. 나풀거리는 엄마의 연둣빛 긴 치마도. 나도 치마를 입고 올 걸 그랬나? 하고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처럼 긴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다. 나는 조금 더 크게 말했다.
“브.로.콜.리. 꼭 먹어야 되냐고.”
엄마는 알아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대답 대신 그런 걸 왜 묻느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페달을 힘주어 밟으며 크게 말했다.
“소정이가 그러는데 소정이네 엄마는 소정이가 브로콜리 안 먹으면 집을 나가버리시겠다고 했대. 브로콜리는 몸에 좋은 건데 안 먹는다고 소정이 엄마가 화가 났나 봐.”
나는 엄마 반응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엄마는 자전거 길로 들어선 사람을 피하느라 뒤로 쳐졌다. 그러니까 내 말을 못 들었을 것이다.
꽃길이 끝났다. 앞이 텅 비었다. 나는 페달을 세게 밟았다. 속도가 빨라지니 머릿속 생각도 휙휙 지나갔다.
소정이는 작년에 영어학원 다니며 만난 친구다. 어쩌다 보니 단짝이 되어 서로 속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다. 소정이는 편식한다고 꾸중을 많이 들었던 모양이다. 특히 브로콜리를 안 먹을 때마다 엄마가 화를 많이 낸다고 했다. 소정이 엄마는 몸에 좋은 브로콜리를 소정이가 왜 안 먹는지 이해할 수 없어 했단다. 하지만 소정이는 까끌까끌한 식감도 씹을 때마다 퍼지는 풀 냄새도 역겹다고 했다.
소정이는 내게 말했다. 편식 때문에 엄마가 화나는 날이 많아질수록 엄마의 옷차림이 화려해졌다고. 립스틱도 붉어졌고 밤에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일도 많아졌다고. 거기까지 이야기하고서 소정이는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아빠 엄마 이혼했어. 나는 엄마랑 둘이 살아.”
우리는 학원 1층에 있는 가게에 마주 앉아 버블티를 마시고 있었다. 버블티는 소정이가 사주었다. 소정이는 용돈을 많이 받았다. 나에게 먹을 걸 자주 사주었다.
“다 브로콜리 때문이야. 왜 그런 게 있나 몰라. 브로콜리 없다고 세상이 망하는 것도 아니잖아? 괜히 브로콜리가 있어가지고 엄마는 나를 싫어해. 내가 싫으니까 자꾸 밖에 나가는 거고 자꾸 밖에 나가니까 화장도 더 진해지는 거고.”
그런 건 아닐 거라고 말해주려는데 소정이가 울먹였다.
“서연아, 너도 엄마가 브로콜리 주면 꼭 먹어. 난 아빠랑은 연락도 잘 안 되는데 엄마까지 떠나면 어떻게 해?”
소정이가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한 건 이유가 있다. 우리 아빠는 내가 4학년 때 돌아가셨다. 나도 엄마랑 단둘이 산다.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세우고 자물쇠를 채우는데 엄마가 다가와 물었다.
“브로콜리가 뭐? 소정이가 왜?”
엄마는 내 말의 앞부분만 들었나 보다. 나는 엄마를 찬찬히 봤다. 청재킷을 입고 갈색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트린 엄마. 어른들이 하는 ‘혼자 살기 아깝다’는 말이 뭔지 정확히 모르지만 엄마가 예쁘다는 건 확실하다. 예쁜 건 좋은 거다. 예쁜 엄마를 보면 나도 기분이 좋아지니까. 하지만 엄마의 체리빛 입술이 반짝이는 걸 보니 마음이 가라앉는다.
소정이가 그랬다. 엄마 립스틱 색깔이 바뀌면서 외출이 잦아졌다고. 남자 친구도 생긴 것 같다고. 내가 엄마에게 말했다.
“아니야, 아무것도.”
“뭔데?”
“아니라니까.”
엄마는 내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서 간질이는 시늉을 한다. 내가 손을 내저었다.
“하지 마!”
“알았어. 어서 가자.”
“어디 간다고 했지?”
“잊어버렸어? 너 운동화 산다고 했잖아.”
“아, 그렇지?”
나는 머쓱해하며 엄마랑 나란히 걸었다. 엄마 립스틱에 정신이 팔려 내 운동화를 사기로 한 걸 까맣게 잊고 말았으니까.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내 운동화를 먼저 챙긴다는 건 아직 남자 친구는 없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체리빛 립스틱은 낯설다. 나는 십삼 년 동안 엄마를 봐왔다. 엄마에 관해서라면 지구에서 내가 가장 잘 안다. 저런 색깔 립스틱을 엄마가 직접 샀을 리 없다. 저건 분명 누가 사준 거다. 누굴까? 만약 엄마에게도 남자 친구가 생겼고 저 체리빛 립스틱을 그 남자 친구가 사준 거라면?
갑자기 지난주 교실에서 있었던 소동이 떠올랐다. 김주미랑 박한울은 5학년 때부터 사귀는 사이다. 지난주 월요일이 김주미 생일이었는데 박한울이 틴트를 선물했다. 틴트는 진달래빛이었다. 얼굴이 하얀 김주미에게 잘 어울렸다. 그런데 박한울이랑 같이 다니는 이민규와 한정인이 이상한 소리를 떠들어댔다.
이민규가 이렇게 말했다.
“야, 박한울이 김주미한테 틴트를 왜 선물했겠냐. 쪽! 뽀뽀 좀 해달라 그런 뜻 아니겠어?”
한정인이 거들었다.
“김주미, 박한울 마음 알아줘라, 응?”
이민규와 한정인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정신이 나갔구나 했다. 들리는 말로는 셋이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채팅으로 욕을 주고받았는데 그러다 사이가 틀어졌다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심했다.
하지만 박주미는 기도 세고 성격도 쿨하다. 깔끔하게 이민규와 한정인을 무시했다. 그런데 며칠 후 점심시간 엎드려 자고 있는 박한울 목덜미에 누가 분홍 립스틱으로 입술 모양을 그려놓았다. 이민규나 한정인 짓일 거다. 발견한 남자애들은 난리가 났다. 김주미가 목에 키스해준 거냐며. 박한울 부럽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결국 김주미는 울었다.
물론 애들은 장난을 친 거다. 하지만 엄마에게 립스틱을 사준 남자 친구는 정말 엄마와 키스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만약 그 남자 친구가 엄마와 같이 살고 싶어 하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엄마가 나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할까? 그 남자는 결혼을 했을까? 엄마처럼 사별을 했을까? 그렇다면 아이가 있을 수도 있다. 난 생판 모르는 아이와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엄마가 생각에 빠져 걸음이 느려진 나를 불렀다.
“빨리 와. 뭐 하고 있어?”
나는 엄마에게 얼른 달려가며 대답했다.
“응!”
엄마 옆에 섰지만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소정이는 엄마가 남자 친구가 생긴 후로는 자기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가 들어오지 않는 날에는 냉장고에서 혼자 브로콜리를 꺼내 접시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바라보기도 한다고. 나도 브로콜리라면 질색이다.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까?
그때 엄마랑 내가 걷는 길 오른쪽에 야채 가게가 보였다. 야채와 과일들을 바구니에 담아 가게 밖에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마침 빨간 바구니에 브로콜리가 담겨 있다. 2개 3천 원. 내 상상 속 브로콜리는 튼튼한 줄기에 싱싱한 초록이었는데, 바구니 안 브로콜리는 어쩐지 시들하다.
브로콜리 옆에는 당근이 있다. 나는 당근에 눈이 갔다. 흙을 다 씻어낸 당근은 형광펜으로 칠한 것처럼 샛주황이다. 당근 끝의 뾰족한 부분이 마음을 콕 찔렀다. 옛날 생각이 났다.
아빠랑 엄마는 원래 사이가 좋았다. 싸우는 걸 본 적 없다. 아빠가 아프기 시작한 건 내가 4학년 때부터다. 아빠가 아프고 나서 엄마 아빠는 더 사이가 좋아졌다. 하루하루가 아쉽다는 듯 서로 다정했다. 병원 치료로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아빠는 퇴원했다. 엄마는 처음 보는 음식들을 구해왔다. 즙이며 약초며 환 같은 것들. 하지만 아빠는 먹지 않았다. 엄마는 그걸 속상해했지만 아빠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런 날들 중 하루였다. 밥을 먹는데 반찬에 감자볶음이 있었다. 엄마는 감자와 당근을 가지런하게 썰어 아삭하게 볶아주었다. 나는 감자는 좋았지만, 당근은 싫었다. 그래서 반찬 그릇에는 당근만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내가 당근만 남긴 걸 본 엄마는 벌컥 화를 냈다.
“당근만 남겼구나. 편식하지 말라고 엄마가 했어, 안 했어? 몸에 좋다는데 왜 먹지를 않니? 엄마가 너한테 나쁜 걸 주겠니? 그러겠어?”
소리를 지르다가 엄마는 울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늘 다정했던 엄마가 나에게 갑자기 화를 냈지만, 상처받지 않았다. 어렸지만 나는 그 순간 알아차렸다. 몸에 좋다는데 왜 먹지를 않니? 그건 나한테 한 말이 아니었다. 아픈 아빠에게 화낼 수는 없었다. 엄마는 한 번쯤 힘껏 소리 지를 핑계가 필요했을 것이다. 당근은 좋은 핑곗거리였다.
머리에 반짝, 불빛이 켜졌다. 소정이 엄마에게도 브로콜리는 핑계가 아닐까? 그렇다면 브로콜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 왜 핑계가 필요한지가 더 중요하다. 소정이한테 이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지금이라도 당장? 나는 웃옷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전화를 할까? 지금?
아니다. 문제는 소정이가 아니다. 나다.
엄마랑 나는 비밀이 없었다. 뭐든 궁금하면 서로 물어보고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러니까 물어보면 된다. 그 립스틱 어디서 났냐고. 누가 사준 거냐고. 엄마가 살 만한 물건은 아니라고. 나는 엄마 팔을 잡았다.
“엄마!”
엄마가 말했다.
“브로콜리 어쩌구 하더니, 먹을래? 사줄까?”
내가 당근을 보고 있는 걸, 브로콜리로 오해했나 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럼, 왜?”
엄마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물어볼까? 물어보려면 지금 툭, 던지면 된다. 엄마 립스틱 색깔 바뀌었네? 샀어? 그렇게.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데 무섭다. 만약 내 질문에 엄마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면 어떻게 하지? 서연아, 엄마 남자 친구 생겼어. 이 립스틱 남자 친구가 선물로 준 거야. 그렇게 대답한다면? 아니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
나는 엄마 팔짱을 끼며 말했다.
“가자, 엄마.”
엄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싱겁긴.”
엄마가 손을 넣고 있는 청재킷 주머니에 나도 손을 넣었다. 엄마 손등을 만졌다. 보드라웠다. 코끝이 시큰했다. 엄마한테 안기고 싶다. 안겨서 펑펑 울고 싶다.
안 되겠다. 이대로는. 물어봐야겠다. 진실을 알고 싶다. 그 진실이 아무리 아프더라도. 나는 숨을 골랐다. 물어보자. 그냥 엄마한테 물어보는 거야.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엄마 청재킷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엄마를 마주 보고 똑바로 섰다. 이를 악물었다. 침을 삼켰다. 물어보자. 그래, 물어보는 거야.
그때였다. 엄마가 어깨에 메고 있던 에코백에 오른손을 집어넣었다. 반짝거리는 플라스틱 립스틱을 꺼냈다. 뚜껑을 열고 돌리더니 쓱쓱 입술에 발랐다. 위아래 입술을 맞비벼 문질렀다. 채리색이 입술에 곱게 물들었다. 그러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이거 좀 발라볼래? 수미 이모가 체험단인가 뭔가 선정돼서 리뷰 쓸 다섯 사람이 필요하다고 보냈어. 너도 발라보고 어떤지 말 좀 해줘라. 아유, 너무 빨개서 엄마는 영 어색하다.”
“어? 어.”
나는 엄마가 내민 립스틱을 쓱쓱 입술에 발랐다. 체리향이 은은하게 코끝에 풍겼다. 나랑 똑같은 색깔 립스틱을 한 엄마가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아유, 예쁘네. 봄이다, 봄.”
꽃잎 대여섯 장이 살랑 엄마와 나 사이로 떨어진다.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