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울토마토 화분에 분무기로 물을 뿌렸다.
“칙칙.”
며칠 전 새끼손톱만 하던 이파리가 이제 엄지손톱만 해졌다. 색도 더 짙은 초록빛이 되었다. 기특한 녀석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방울토마토 새싹 화분은 지난주 학교에서 받아왔다. 반 전체가 받았는데, 벌써 죽인 애들도 있다. 어떤 애는 물을 안 줘서 죽이고, 어떤 애는 물을 많이 줘서 죽였다. 난 그런 애들과 다르다. 나는 화분에 입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방울아, 쑥쑥 잘 자라.”
5학년이나 된 남자애가 화분에게 말을 하다니. 이상한 거 안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만 한다.
그때였다. 부엌에서 설거지하던 엄마가 큰 소리로 말했다.
“민오야, 학원 가야지!”
베란다에 있던 나는 거실로 들어가 시계를 봤다. 3시 47분. 영어학원은 4시부터 시작이다. 학원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다. 지금 나가면 늦지 않을 거다. 나는 방에 들어가 학원 가방을 가지고 나왔다. 운동화를 신으며 엄마에게 외쳤다.
“다녀오겠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아파트 밖으로 나가면 바로 주차장이다. 빨리 걸으며 무심코 주차장 왼편을 흘깃 보다가 나는 우뚝 멈추어 섰다. 눈에 익은 차가 보였다.
“어어?”
발뒤꿈치에서 머리끝까지 찌릿했다. 전기가 몸을 훑고 지나간 것처럼. 콧구멍이 벌름거리고 숨이 거칠어졌다. 나는 중얼거렸다.
“토나스?”
거기 토나스가 있었다. 사람들이 보통 아만떼라고 부르는 검은 색 4인용 승용차. 토나스는 내가 붙여준 이름이다. 추억으로 가득한 우리 차. 분명히 아빠가 팔았다고 했는데, 어떻게 여기 아직 있는 거지? 그러고 보니 이 자리. 우리가 토나스를 자주 주차하던 곳이다. 그럼 나를 놀라게 하려고? 팔았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다시 가져온 건가?
나는 자석에 이끌리는 클립 같았다. 저절로 토나스 쪽으로 걸어갔다. 장수풍뎅이 등껍질처럼 검게 반들거리는 표면. 헤드라이트 끝부분이 올라가 개구쟁이가 장난치고 씩 웃는 것 같은 앞모습. 익숙하다. 이건 우리 토나스다.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가슴이 뛰었다. 나는 운전석 사이드미러에 손바닥을 댔다. 토나스와 악수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앞 유리 안쪽에 작은 고양이 모형이 보였다. 고양이 한쪽 발은 까딱까딱 앞뒤로 움직였다. 우리는 차에 저런 장식품을 둔 적 없는데?
나는 움찔 놀라 사이드미러에 댄 손을 뗐다. 차에서 두어 걸음 떨어졌다. 번호판을 봤다. 62가1306. 우리 차가 아니다. 토나스의 번호는 55모3603이다. 내가 잘못 본 것이다. 힘이 쪽 빠졌다.
영어학원에선 멍하게 앉아만 있었다. 내내 마음이 이상했다. 학원 끝나고 집으로 바로 들어가기 싫었다. 엄마한테 전화로 놀이터에서 좀 놀겠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는 주차장과 딱 붙어 있다. 나는 정글짐 꼭대기에 올라가 앉아 다리를 대롱대롱 흔들었다. 그 자리에서 내가 토나스로 착각한 검정 아만떼가 잘 보였다. 토나스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같은 모양 차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토나스가 우리 집에 온 건 내가 태어난 직후라고 했다. 갓 태어난 나를 산후조리원에서 안전하게 데려오려고 아빠는 혼자 운전 연습을 여러 번 했단다. 나는 우리 집에 차가 처음 생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너무 어렸으니까.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기분 좋은 순간은 대부분 차와 함께였다.
은빛 손잡이를 잡아당겨 문을 열고 뒷자리에 앉으면 모험을 시작하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바퀴가 굴러가며 내는 은은한 진동도, 아빠가 깜빡이를 켤 때 딸깍딸깍 반짝이던 초록 불빛도, 브레이크를 밟으면 저절로 몸이 앞으로 쏟아지는 느낌도 좋았다.
차를 타고 있으면 멀리, 더 멀리 가고 싶어졌다. 세상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래로 성을 만들 수 있다는 동해안 바닷가도, 호랑이가 있다는 백두산도, 스핑크스의 질문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는 피라미드도 다 가고 싶었다. 직접 운전을 하게 되면 일곱 날, 여덟 날 쉬지 않고 달려야지, 라고 생각하면 팔다리에 팽팽하게 힘이 들어갔다.
일곱 살 때, 나는 우리 차에 ‘토나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토나스는 그 무렵 유행하는 변신 로봇카 만화의 주인공이었다. 나는 그 만화 줄거리로 이야기 지으며 노는 걸 좋아했다. 이름을 지어주고 나니 이야기가 더 잘 생각났다. 차 타는 게 신났다. 가는 내내 이야기를 지으며 놀면 시간 가는 줄 몰랐으니까. 우리는 한해 한해 더 친해졌다. 나에게 토나스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모가 갑자기 미국 발령을 받은 건 두 달쯤 전이다. 발령받기 한 달 전 새 차를 산 이모는 손해 보고 팔기 아까워했다. 동생인 엄마에게 그 차를 주고 싶어 했다. 아빠, 엄마는 입이 함박만 하게 벌어졌다. 이모 차는 전기차라 주차 요금 할인되는 곳도 많고, 연료비도 적게 든다. 우리 가족에게 차는 한 대면 충분하니 토나스를 팔 거라고 했다. 신나서 나랑 한 약속은 까맣게 잊었다. 분명 아빠는 토나스를 나중에 나한테 주겠다고 했다. 물론 내가 졸라서 한 약속이지만 약속은 약속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토나스가 없었다. 값을 잘 쳐주는 중고 판매상이 있어 바로 팔았다고 했다. 나는 토나스와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속상해하는 나에게 아빠,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더 좋은 차가 생기는 거야. 마음 풀어.”
“아만떼 10년도 넘게 탔으니 바꿀 때 되었지.”
아빠 엄마 말은 아무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토나스를 잊어버리려고 노력도 했다. 거의 성공한 것 같았다. 조금 전 그 차를 보고 토나스로 착각하기 전까지는.
정글짐 위에 앉은 나는 다리를 좀 더 세게 흔들었다. 정글짐 봉에 발목이 탁탁 부딪혔다. 조금 아팠지만 계속 흔들었다.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제니···. 제니, 이리 와!”
나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덩치 큰 남자아이 한 명이 벤치 옆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나는 남자아이를 잘 보려고 엉덩이를 움직였다.
“제니야, 괜찮아. 이리 와 봐.”
처음 보는 애다. 나는 여기서 평생 살았기 때문에 이 단지 초등학생은 다 안다. 이사 왔을까? 아니면 친구 집에 놀러 왔을까? 몸집은 크지만 딱 봐도 초등학생이다.
그런데 제니? 자기가 키우는 강아지인가? 나는 몸을 기울이고 목을 길게 뺐다. 남자애가 제니라고 부르는 게 뭔지 보고 싶었다. 하얀 털이 조금 보였다. 귀가 뾰족한 게 고양이 같다.
“제니야, 제니야!”
남자애는 어지간히 열심이다. 그때 하얀 물체가 폴짝 뛰어 벤치 위로 올라갔다. 흰 배에 검은 등. 푸른 눈과 조금 잘린 꼬리. 어어? 쟨 쿠키잖아? 쿠키는 우리 단지에 오래 산 길고양이다. 나랑 친구들이 작년에 쿠키라고 이름 붙였다. 왜 쟤는 쿠키를 제니라고 부르지?
나는 정글짐 봉을 잡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벤치로 걸어가서 덩치 큰 남자애 옆으로 다가갔다. 남자애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내가 물었다.
“몇 학년이야?”
남자애가 말했다. 조금 겁먹은 것 같았다.
“아? 나? 난 5학년.”
동갑이다. 학교에선 본 적 없다 내가 물었다.
“나도 5학년이야. 근데 하늘초 다녀?”
“아니, 이사만 오고 전학은 안 왔어. 지난주에 이사 왔어.”
그러면 그렇지.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본 적 없었나 보다. 중요한 건 다 알아냈다. 이제 용건을 말하면 된다.
“저기. 쟤 말이야.”
나는 벤치 아래 식빵 자세를 한 쿠키를 가리켰다. 남자애가 쿠키를 쳐다봤다. 내가 이어 말했다.
“쟤 이름은 쿠키야. 제니가 아니고. 그거 말해주려고.”
말을 하고 집으로 가려고 몸을 돌렸다.
“야, 저기!”
그때 남자애가 나를 불렀다. 내가 돌아보자 자기 휴대전화를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이리 와 봐. 뭐 보여줄게.”
남자애는 벤치에 앉았다. 뭘 보여준다는지 궁금해 나도 옆에 앉았다. 남자애는 휴대전화를 켜며 말했다.
“내 이름은 선후야. 강선후.”
선후는 휴대전화에 사진을 띄워 내게 보여주었다.
“이거 봐 봐.”
소파 위에 앉아 있는 고양이 사진이었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같았다. 낯익었다. 왜지? 내가 생각해 내려고 인상을 찌푸리자 선후가 나를 보며 웃었다.
“그지? 똑같지?”
그 말을 듣고 나는 벤치 옆 쿠키와 화면 속 고양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진짜 비슷했다. 선후가 말했다.
“얘 이름이 제니야. 작년에 하늘나라 갔어. 심장마비로 갑자기 떠나서 인사도 못 했어.”
며칠 후, 우리는 놀이터에서 또 마주쳤다. 선후는 반가워했다.
“그날 못 보여준 사진 있어. 볼래?”
마침 나는 학원 갈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선후 옆에 앉아 사진을 봤다. 선후는 사진을 한 장씩 넘겨 보여주며 설명했다.
“이거 봐. 이렇게 내 침대에 올라와 잘 때도 있었어. 털이 엄청 보드라워. 봐봐. 이렇게 놀잇감으로 놀아주면 엄청 좋아했어. 한 번은 제니가 없어져서 온 가족이 난리 난 적 있거든. 근데 봐봐. 이렇게 책장 꼭대기에 있었던 거야.”
그때 쿠키가 우리 가까이 와 어슬렁거렸다. 선후는 얼른 주머니에서 츄르를 꺼내 흔들며 쿠키에게 말했다.
“제니야, 잘 지냈어? 형아, 안 보고 싶었어?”
쿠키가 가까이 오자 선후는 츄르를 짜주며 등을 쓰다듬었다.
“제니 맛있게 먹고 아프지 마.”
선후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쿠키가 츄르를 다 먹고 가자 선후는 또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니가 얼마나 귀여웠는지, 자기를 얼마나 잘 따랐는지, 제니 발을 만지면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그러다 불쑥 물었다.
“넌 내 이야기 안 지겨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지겨운데.”
“다행이다. 우리 엄마는 나보고 너무 심하대. 제니가 죽은 지 6개월도 넘었는데 왜 아직도 제니제니거리냐고. 근데 봐. 내가 제니를 잊지 않으니까.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잖아?”
선후는 동의를 구하는 듯 나를 빤히 봤다. 나는 고개를 아주 살짝 끄덕였다. 제니는 죽었다. 쿠키가 제니는 아니다. 선후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닐 거다. 그냥 제니가 그리운 거다.
선후가 제니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사실 토나스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선후에게 토나스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차를 그리워하는 건 고양이를 그리워하는 것 보다 이상해 보이니까.
쿠키가 제니를 쏙 빼닮은 건 선후에게 좋은 일이다. 보고 싶은 걸 보는 거니까. 토나스랑 똑같은 차를 본 날 나에게도 좋은 일이 있었다. 토나스를 타고 여기저기 여행하는 꿈을 꾼 것이다. 기분 좋은 꿈이었다. 물론 선후 처지가 나보다 낫다. 나는 남의 차를 쓰다듬을 수도 츄르를 줄 수도 없으니까.
일요일 오후, 전화가 걸려왔다. 선후였다.
“민오야, 너 혹시 지금 시간 있어?”
“응. 괜찮은데.”
“그럼 나랑 점프점프 안 갈래? 내가 오늘 생일이라 너랑 놀고 싶어서.”
선후는 생일인데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놀 사람이 없다고 했다. 나랑 둘이라도 생일 파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금방 허락을 받았다.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얼른 1층으로 내려갔다. 1층 출입문에서 나를 기다리던 선후가 반가워하며 말했다.
“내가 엄마한테 차로 데려다 달라고 했어. 빨리 가서 많이 놀자.”
“그래.”
나는 신이 났다. 선후를 따라 주차장으로 갔다.
앞장선 선후가 어떤 차의 뒷문을 열었다.
나는 그 차를 보고 깜짝 놀라 멈추어 섰다.
검은색 아만떼. 지난번에 내가 토나스로 착각한 바로 그 차였기 때문이다. 그 차가, 선후네 차?
“민오야, 뭐해? 빨리 와.”
나는 정신을 차렸다. 뒷문으로 들어가며 선후 어머님께 인사를 했다. 선후는 뒷문을 닫아주고 앞으로 갔다. 앞문을 열고 엄마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운전석 뒷자리에 앉았다. 토나스를 탈 때 늘 내가 앉던 자리다. 모든 게 토나스와 똑같았다. 손잡이의 모양, 시트의 색깔, 창문의 높이까지. 다른 건 딱 하나. 운전대 앞 손을 까딱거리는 고양이뿐이었다.
차가 출발했다. 나는 시트에 엉덩이를 깊이 밀어 넣고 등받이에 최대한 등을 기댔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토나스가 나를 꼭 안아주며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것 같다. 나도 안다. 이 차는 토나스가 아니다. 하지만 잠깐 토나스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인사를 나눌 수 있다.
나는 앞자리의 선후와 선후 엄마가 눈치채지 못하게 손바닥을 맞대 양 무릎 사이에 넣었다. 눈을 감은 채 속으로 가만히 말했다.
‘토나스, 안녕. 나는 너랑 많이 행복했어. 고마워.’
덜컹, 하고 움직일 때 토나스도 나에게 대답해 주었다.
‘고마워, 민오야. 나도 너를 태우고 달린 날들, 잊지 못할 거야.’
‘점프점프’에 도착한 나와 선후는 신나게 놀았다. 실컷 뛰고 노는 동안 선후는 한 번도 제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도 토나스를 떠올리지 않았다.
“민오야, 빨리 와! 늦으면 차 막혀!”
여름휴가 가는 날이다. 현관에서 엄마가 재촉했다.
“잠깐만요. 여기 물 조금만 더 채우고요.”
몇 개월 사이 방울토마토는 쑥쑥 자라 내 키만 해졌다. 분갈이를 두 번이나 해 주었다. 나는 매일 이 녀석을 정성껏 돌본다. 우리 반에 아직 방울토마토를 죽이지 않고 키우는 건 나 하나다.
그런데 여름휴가로 일주일이나 집을 비우니 물주기가 걱정이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물통에 물을 넣고 노끈으로 화분 흙과 물통을 연결하라고 했다. 화분에 물이 부족해지면 물을 저절로 서서히 흡수해 촉촉해진다고. 어젯밤에 다 설치해 두었지만 혹시 물이 부족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나는 컵에 물을 따라 물통에 조금 더 넣었다. 그리고 잘 자란 방울토마토 줄기를 살살 만지며 조그맣게 말했다.
“방울아, 금방 올게. 잘 자라고 있어.”
이름을 붙이면 특별해진다. 말을 걸면 가까워진다. 누구와도. 무엇과도. 나는 그게 좋다.
현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민오야! 뭐 하니?”
내가 너무 시간을 끌었나? 엄마가 화났나 보다. 나는 방울이에게 손을 흔들고 현관으로 성큼성큼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