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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의 생각노트 Aug 26. 2022

부산역 맛집 ‘포항참가자미물회’

나만 알고 있기 아까운 세계 맛집들 - 부산

#한국을 떠난 지 6개월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다.

한국을 떠난 지 정확히 6개월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한 달 보다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가족들을 방문하러 간 우리 부부는 가서도 재택으로 일하고 지내는 대신 1주일간의 휴가를 얻어 남쪽 지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가 여행한 지역은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에 속한 경주, 부산, 남해였다. 남편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길래 생각 없이 여행을 예약했지만 생각해보니 나름 일본의 더위를 피해 한국으로 떠나온 건데 오히려 한국에서 가장 더운 지역으로 피서를 떠나버린 셈이다.


#여행 넷째 날 오후 두 시. 여기는 부산.

부산에서 남해로 떠나는 일정을 위해 우리는 부산역으로 향했다. 여행을 준비하던 차에 KTX를 타면 경북 여행 지원 이벤트가 있다길래 경주에서 소비한 모든 영수증을 하나로 모아 KTX역 어디든 가능한 줄 알고 부산역으로 갔었던 건데, 경북 여행 지원은 부산이 포함되지 않아 지원비 지급이 어렵다는 게 아닌가. 생각지 못한 전개였지만 우리 두 사람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주린 배를 해결하기 위해 부산역 맛집을 찾아보았다.


검색을 해보니 부산에서는 밀면, 돼지국밥, 비빔만두(어렸을 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부산역 근처 차이나타운의 중국음식이 유명하다길래 유명하다는 식당을 향해 걸어갔지만 점심시간과 상관없이 길게 늘어진 줄을 보니 기다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우리 두 사람은 전투력을 너무나 쉽게 상실했다.


열심히 구글맵을 보던 남편이 그럼 여기 역 근처 ‘포항 참가자미 횟집’은 어떠냐며 사진 가득한 후기들을 보여주었다. 회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한 번도 먹어보자 못한 음식이라 (도저히 물속에 들어간 회를 상상할 수 없었다) 선뜻 가자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곳이 아니면 역에서 파는 김밥이나 빵을 먹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음식 선정에 실패가 적은 남편의 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부산역 택시 탑승장에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던 식당

다른 집들과는 달리 문 앞에 줄 서는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물회 한 그릇이 18,000원, 회덮밥이 15,000원이라니. 물회 시세를 모르는 한국 초보들에게는 도대체 이 가격이 비싼 건지 싼 건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눈퉁이를 맞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 하며 용감히 식당 문을 열었다.  


#태어나 처음 먹은 물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밖에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내부가 넓고 식사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았다. 보이지 않는 구석까지 프라이빗하게 먹을 수 있는 룸도 설치되어 있는 거 보니 이상한 곳은 아닌가 보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젊은 사람들보다는 부모님 나이쯤 되시는 어른분들이 빼곡히 식당을 메우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오는 손님들은 우리처럼 어느 누구도 메뉴를 공부하는 사람이 없었다. 들어오시는 모든 분들이 단골인 마냥 ‘물회요’ 한마디만 외치고 자기 잔에 물을 따라 마시며 식사를 기다렸다.


물회라는 음식이 생소한 우리가 물회를 먹어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게 보이셨는지 나이가 지긋하신 여사장님 (대충 머리 스타일하고 선글라스에서 나오는 포스를 보고 우리는 저분이 사장님일 거라는 짐작을 했다) ‘우리는 물회가 제일 유명하니까 물회 드소’ 라며 반 강압적인 주문을 받았다. 부산에서는 스피드가 생명이니까 더 이상 고민하면 화낼 것 같아 나름 빠른 시간 안에 결단(?)을 내렸다.


‘그럼 물회 하나에 회덮밥 하나요…’


식사 자리 옆에서는 오픈 주방 안에 여러 사람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어떤 분은 회를 뜨고, 어떤 분들은 과일과 야채를 손질하고, 어떤 분들은 소스를 준비했다. 홀에는 적어도 다섯 명 정도 되시는 이모님들이 바쁘게 주문을 받고 엄청난 스피드로 음식을 서빙하시는 모습이 적어도 여기 물회는 싱싱할 수 있겠다는 신뢰감을 심겨주었다.


#본식 전 몸풀기

멸치, 어묵, 김치, 가지나물

본식이 나오기 전에 밑반찬부터 나왔다.


멸치볶음, 어묵볶음, 김치, 가지나물 그리고 미역국. 부산에 맞게 짭짤한 밑반찬이 평소에 모든 음식을 심심하게 먹는 나에게는 조금 짜게 느껴졌지만 남편에게는 적당했다고 한다 (물회와 회덮밥이 워낙 신선하다 보니 살짝 짭짤한 반찬들이 본식과는  어울렸던 것 같다). 미역국은 가자미 뼈를 넣고 고은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깊은 해산물 향이 가득해서 내가 더 좋아했던 것 같다.



# 대망의 본식

얇게 썰린 양배추, 오이, 양파 그리고 깻잎들 위에 올라간 가자미회, 그리고 김가루와 곱게 간 들깻가루가 듬뿍 올라간 회덮밥. 동일한 야채 베이스에 양념된 가자미회, 달달하고 시원한 배와 듬뿍 올려진 들깻가루가 가득했던 물회, 그리고 얼린 양념소스까지. 개운하다는 말이 추운 겨울날 뜨거운 국물로 뱃속을 따뜻이 채우면 나오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시원하고 상큼하게 개운한 맛을 차가운 음식에서 그것도 '물회'라는 음식에서 느낄 수 있어서 우리 두 사람에게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회뿐만이 아니라 회덮밥도 고소한 들깻가루속에 시원하고 아삭한 야채들의 조합이 정말이지 일본에서 당장 다시 한번 더 먹고싶은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참고로 남편은 새콤달콤한 물회, 나는 개운하고 깔끔한 회덮밥이 더 좋았다).


회덮밥과 물회, 그리고 먹다가 정신 차려서 찍은 사진


그렇게 물회와의 첫 만남을 잊을 수 없던 우리 두 사람은 남해여행을 다녀와 부산역에서 서울역으로 향하는 길에 한 번 더 물회와 회덮밥을 먹었다고 한다.


웬만하면 좋아하는 식당은 혼자 조용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나만 알기보다 진짜 좋은 음식점은 오랫동안 잘 돼서 우리가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런 식당들을 기록해본다.


아 또 먹고 싶다.

물회!!


20220826

부산역,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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