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무 데도 안 갔어?
본의 아니게 일자리가 공중분해된 일이 있었다. 8부작 예정이던 파일럿 프로그램이 난데 없이 반토막이 난 것이다. 한 계절은 거뜬히 일개미로 임할 준비가 되어있었건만, 어쩌다 보니 일하는 시늉만 하다 끝나버렸더랬다. 계획에 없던 백수 생활. 얼마 없는 돈 아껴 가며 집순이로 사는 수밖에. 그런 근황을 누군가에게 전한 어느 날, 왜 여행을 가지 않았느냐는 말을 들었다.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주변인들에겐 ‘여행 좋아하는 사람’으로 분류된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당연히 여행 중’인 사람. 하지만 그때는 돈도 없고 여행을 갈 마음도 없었다. 그러니 동네 카페와 영화관, 가끔은 번화가와 미술관만 순회하는 일이 그닥 특이할 일도 못할 일도 아닌데, 다른 때처럼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 일상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당황스러웠다. 패배감 같은 것도 느꼈다. 왜지? 그동안 나는 나 좋으라고 여행을 다닌 게 아닌가? 주로 혼자 떠났던 여행. 말로는 오롯이 나를 위해서라고 해놓고, 사실 나는 ‘남에게 보여주는 나’를 위해 여행한 건 아닐까?
혹시 나 지금 ‘여행부심’ 갖고 있니?
많은 사람들이 여행에 대해 묻는다. 나는 여행하며 기록하는 사람도 아니고, 다른 이가 남긴 기록을 충실히 따르는 일도 드물다. 하지만 종종 여행 데이터베이스처럼 이용된다. 그러다 보니 많이 듣는 질문들 - “어디가 제일 좋아?”, “혼자 여행하기에 이 나라는 어떨까?”, “너 거기도 가봤어?”.
여행이라면 나름 짧지 않은 역사와 적지 않은 경험을 가진 터라, 신나게 대답을 해주는 일이 많다. 질문자의 취향에 맞는 곳을 함께 고민하고 찾아가는 일은 꽤나 즐겁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거기보다 여기가 끝내주지”, “여긴 정말 꼭 가야하는 곳이야“,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를걸” 같은, 상대의 취향보다 내 기준을 내세우는 말들을 덧붙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생각.
나 지금 ‘여행부심’ 부리고 있잖아!
‘자부심’이라는 단어에서 앞 글자를 탈락시키고 다른 단어와 합성한 ‘**부심’이라는 말이 흔해진 요즘. 본래 자부심이란 ‘자기 자신과 관련된 것에 대해 스스로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좋은 뜻을 가진 단어이건만, ‘자기 자신’을 뜻하는 글자(自)가 지워진 신조어는 언젠가부터 자랑의 뉘앙스로 사용되고 있었다.
여행지 추천이란 모름지기 여행자의 취향과 기호에 따라야 하는 것인데, 나는 종종 희소성과 특수성을 우선으로 했던 것이다. 이 때 ‘난 이미 다녀왔는데, 너도 좀 늦었지만 갔다와 봐’ 같은 태도는 기본 장착이다. 누가 보면 콜럼버스라도 되는 줄 알겠어.
함부로 여행 권하지 말 것
나에겐 3살 많은 오빠가 있다. 우리 남매의 여행 성향은 사뭇 다르다. 나는 정보가 없고 희소한 곳에도 여행지로서의 매력과 호기심을 느끼는 편이지만, 오빠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미식가인 오빠는 한때 수요미식회마냥 전국 방방곡곡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곳으로 차를 몰고 떠나곤 했는데, 맛이라는 테마가 있으니 그 열정으로 해외 여행도 좀 해볼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시간, 장소, 언어 모든 것이 낯선 환경에 있다는 것이 스트레스'라서 해외여행이 싫다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고. 아마 오빠도 그랬던 것인지, 30대 중반이지만 해외 여행 경험이 거의 없다.
가까운 친구 중 하나는 고등학생 시기를 해외에서 보냈다. 영어를 잘하고 대외활동을 좋아하지만 여행엔 흥미가 없단다. 함께 어울리던 대학 동기들이 해외 체험단 활동에 응모해 호주에 갈 기회가 생겼을 때 필요한 활동만 며칠만에 끝마치고 돌아오질 않나, 남들은 가고 싶어하는 해외 출장엘 영어를 잘 한다는 이유로 가게 되었어도 뿌듯해하지도 않는다. 그 친구는 해외 생활과 영어 실력, 활발한 성격 때문에 여행도 좋아할 거라는 오해를 사곤 하는데, 사실 친구가 스트레스를 풀고 편안함을 느끼는 방법은 혼자 고독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때문에 여행하기 딱 좋은 조건인데 왜 떠나지 않느냔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여행하는 게 싫어!” 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실제로 저 말을 뱉어본 적도 있는데, 그 뒤에 쏟아지는 ‘젊을 때 더 넓은 세상을 봐야 한다’, ‘가보지 않아서 모른다’는 말들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단다. 친구의 바람을 대신 전해본다. 제발 여행 좀 함부로 권하지 말라고!
여행은 의무가 아니다
여행이 점점 쉽고 흔해진다. 내가 막 해외여행을 시작한 10여 년 전과만 비교해도 그렇다. 10년 전엔 직항이 없던 라오스에 이젠 저가항공을 타고 갈 수 있게 됐고, 값비싼 런던과 파리의 호텔비를 에어비앤비로 대체할 수 있게 됐으며, 가이드북에만 의존하던 여행 정보를 블로그와 SNS, 심지어 어플에서도 쉽게 얻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행을 꼭 가야하는 건 아니다. 여행은 하와이안 피자 먹기나 겨울코트 옷소매 위 핸드메이드 태그 제거 같은 일. 즉, 기호의 문제이지 의무가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여행을 좋아한대도 여행을 할 수 없는 상황도 존재한다. ‘마음 먹으면 시간 내긴 쉽지’, ‘나라면 그거 할 시간에 진작에 떠났을 것’ 같은 말은 누군가에겐 조언이 아닌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세상엔 여행이 아니고서라도 스트레스를 풀 수 있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여행부심’을 앞세워 여행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굴었던 태도를 반성한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내게 여행은 현실의 도피도, 자아 탐색의 기회도, 용감무쌍한 선택도 아니었다. 내게 여행은 낯선 장소에서 익숙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하지 않던 행동들을 새로운 곳에 갔다고 해서 무턱대고 해보는 일은 드물다. 서울에 살면서도 좋아하기에 자주 하던 것들 - 산책, 카페 탐방, 전시회와 음악회 가기, 낙서하기, 글쓰기, 가끔 우울하기, 상상하기를 낯선 곳에서도 이어간 일상의 여행. 그것이 별 것 아닐 수도, 특별해질 수도 있는지 여부 역시 기호의 문제다.
지금 나는 정말 떠나고 싶은가?
다른 이에게 함부로 여행 권하지 않기. 물론 이 문제는 예민하고, 그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
나는 나에게 함부로 여행을 권한 적이 있었나?
여행 권유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귀가 팔랑거리고 몸이 들뜨고 손이 근질거린다. 혹은 나만 뒤쳐진 건 아닐지 걱정스럽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에게 섣불리 여행을 권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충동적인 여행도 인생 여행이 될 수 있다. 다만 떠날 결심을 하기 전, 정말 떠나고 싶은지를 먼저 물어보는 일만은 잊지 않기를. 여행의 의미? 그런 건 떠나기 전이든 여행 중이든 돌아온 후든 언제든 질문하고 답을 구할 수 있다. 당신에게 여행이 직업이 아니라 유흥이라면, 여행을 해답으론 받아들이되 정답으로 여기지는 않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여행이라는 단어에서 힘을 좀 뺄 때도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