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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Sep 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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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등록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제 회원님이 입력하신 정보에 맞는 상대방과의 매칭이 가능해집니다."


이 주 전 친구 녀석은 연애를 시작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말하며 연애 정보회사를 소개해주었다.

"혼자 지낸 지도 벌써 몇 년이야. 불필요한 만남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고 너한테 딱이다. 이곳에 가입하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다행히도 지인이 근무하고 있는 덕분에 특별히 회원권을 구한 거니까. 친구 덕 본다고 생각하고 어서 가입해" 

그 당시에는 별로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의 말에도 별다른 호응을 하지 않았다.

"됐어, 무슨 연애를 해 그리고 시작할 때라니 그런 게 어디 있다고, 아직은 혼자가 더 편해" 

나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 간직하면 분명히 쓰게 되는 날이 올 테니까. 나중에 고맙다는 말이나 하지 마. 아 그리고 말인데 유효기간은 회원권 발행일로 일 년이니까. 그전에는 가입해야 된다." 

웃으며 넘겨버리고 말았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일 뿐이라면서, 

며칠 전에는 혼자 살고 있는 집에 갑작스레 부모님이 찾아왔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급한일이라도 생겼냐고 묻자 아버지는 "이제 우리 나이가 있으니 하루빨리 결혼을 서두르면 좋겠다." 

'아,, 결혼이라니 갑작스럽게 찾아올 만큼 중요한 말이 결혼 이야기였다니' 두 분은 번갈아가며 나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머니는 나의 등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려친다. 정신이 번쩍 들고 고통은 고통은 등줄기를 타고 온몸으로 전해지는 것 같다. 아버지 역시 한소리하며 거든다. "우리가 너에게 큰일을 바라니? 사지 멀쩡한 자식이 아무도 안 만나고 있으니 그게 답답해서 그러는 거지. 누군가를 만나려는 시도라도 하라는 거야" 그동안은 알아서 한다는 말들로 계속해서 미루기 바빴지만 더 이상 나의 말이 먹히지 않는 것 같다. 

할 말이 끝난 건지 두 분은 나갈 준비를 한다. "근처에서 모임이 있어 잠깐 들린 거야. 우리 할 말은 다했으니 이제 그만 가볼게 쉬어라." 한편으로는 아쉽고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밀려든다. "벌써 가시면 어떡해요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동시에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그리고 아버지는 "마음에도 없는 말하지 마라. 밥 잘 챙겨 먹고, 아까 했던 말 알지? 더 이상 긴말 안 할 테니까. 잘 판단해서 처신하길 바란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리고 결국 친구가 알려준 연애 정보회사에 찾아왔다. 광고에서 보았듯이 회사의 입구에는 회원 한 명 한 명의 정보를 철저하게 지킨다고 적혀 있다. 입구를 지나 일인용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게 된다. 정해진 층에서 내리게 되면 담당자가 나를 맞이한다. 그런 뒤 회원권을 확인하고 연결된 방으로 안내해준다.  

"안녕하세요. 저는 회원님의 가입 진행을 담당하게 된 김석준이라고 합니다. 우선 인적사항 작성 전 서명서에 먼저 사인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충 내용은 작성한 내용과 사실이 다를 시 법적 처벌이 될 수 있으니 필히 사실만을 적어달라는 말이 적혀있다. 가볍게 읽어 내려간 후 서명란에 사인을 했다. 다음장에는 평소에 즐겨하는 취미부터 좋아하는 영화 취향 가장 좋았던 기억과 좋지 못한 기억. 성격의 장점과 단점 세분화된 항목이 나열되어있다. 사실만을 적어야 하니 신중히 적어 내려 가지만, 적는 와중에도 이런 만남이 끌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여전할 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를 만나는 일 자체가 소모적으로 느껴질 뿐이다. 그렇기에 이곳을 알려준 친구의 마음과 부모님이 나에게 거는 기대에 대한 마음. 그런 마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만 지켜보려고 한다. 물론, 언제까지 혼자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몇 년 전 마지막 연애는 상처만을 남겨둔 채로 끝이 났다.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은 이성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자리 잡았고 그 덕분에 나와 맞는 상대는 더 이상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수준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바라보는 기준을 세세하게 분류한 뒤 단 한 가지라도 들어맞지 않으면 그대로 만남을 포기하거나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친구들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냐며 어떻게 한두 번 보고 상대방의 전체를 알 수 있겠냐고 말하기도 했지만 마음이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일을 나조차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마저도 핑계라고 말할 때면 알아서 생각하라는 말을 할 뿐이다. 최근에는 나의 신념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 일이 있었다. 

친구 중 한 명은 연인과 떨어지면 죽을 것처럼 행동을 하더니 더 이상 안 되겠다며 육 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너무 섣부르게 결정한 거 아니야? 조금은 더 만나보지 그래?" 나의 말을 듣고도 우리는 첫눈에 서로를 알아봤다나 뭐라나,,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는 '그래 내 생각이 틀리길 바라 잘살아' 그런데 정확히 일 년째 되는 날 친구 부부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언제는 한시라도 곁에 없으면 죽을 것 같이 행동하더니 갑자기 무슨 일이야?" 친구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는다. "아니, 처음에는 모든 게 다 좋았는데 점점 다른 점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 어느 순간부터는 마주 보면 싸우기만 하고 안 맞는 걸 우리도 어쩔 수 없더라" 사람의 마음이란 무겁다가도 한없이 가벼워진다는데 딱 친구에게 들어맞는 말인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니 누군가에 대한 작은 기대조차 하고 싶지 않아 졌다.

"기기 작동법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장비를 머리에 착용하시면 자동으로 머리 둘례 사이즈에 맞게 조절이 됩니다. 오른쪽 상단 흰색 버튼을 누르시면 시작이 되고 가운데 노란색 버튼을 누르시면 멈춤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빨간색 버튼을 누르시면 종료가 됩니다. 사전 안내를 통해 아시겠지만 가상현실 속에서의 하루는 현실에서의 한 시간에 해당됩니다. 이제부터는 단 한 시간을 투자하시면 원하는 이성을 만 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장 큰 장점이라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사용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지금 당장 사용해보겠냐는 말에 "괜찮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뒤 천천히 해보도록 할게요" 가벼운 인사를 하고 장비를 챙겨 건물을 나왔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이 펼쳐진다. 문득 내손에 들린 무언가가 정말 다른 경험을 하게 해 줄지 궁금해진다. 더 이상 누군가를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무척  마음에 든다. 괜한 시간을 소비하지 않아도 되고 돈을 쓸 필요도 없다는 것도 그저 서로가 입력해놓은 데이터에 맞춰 연결된 가상현실 속 가짜의 만남을 즐기면 될 뿐이다. 

상대방의 의사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시작', '멈춤', '종료'만이 존재할뿐이다. 

가상 데이트를 통해 상대방이 마음에 든다면 실제로 만날 수 도 있고 연애는 물론 결혼까지 이어진 사례도 있다며 자부심 가득 찬 얼굴로 나를 보며 말한 게 생각난다. 단 서로가 동의를 해야만 가능하니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일지도 모른다. 형식적인 시스템에 맞춰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걸로 족할 뿐이다. 

집으로 돌아와 기기를 소파에 던져놓은 뒤 샤워를 했다. 오늘은 딱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업무로 쌓인 피로가 나를 짓누른다. 잠을 자는 일이 먼저다. 다음 날 친구는 내게 데이트에 대해서 묻는다. "어때? 마음에 드는 상대방은 있었어?" 대답하기가 귀찮지만 답변을 해주지 않으면 계속해서 물어볼게 뻔하기 때문에 약간의 거짓말을 더하기로 한다. "응 했어. 내가 정보 등록에 등산을 좋아한다고 입력해놨더니 마찬가지로 등산을 좋아하는 분이 매칭 되더라고 몇 마디 나누다 나랑 안 맞는 것 같아서 종료해버렸어" 친구는 나의 말을 듣고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어나간다. "그래도 조금은 참고 더 진행해보지 그랬어. 넌 그게 문제야 단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안 맞다고 생각되면 마음을 문을 닫아버리니까. 그래서 가상현실 데이트를 추천해준 거잖아 네 시간을 쓰기가 아깝게 느껴진다고 해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 정말 혼자 살게 될지도 몰라. 언제까지 우리의 젊음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해"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사무실로 들어와 버렸다. 휴대폰을 열어 입력해 둔 정보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로맨스 또는 스릴러.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 순위가 일 순위부터 십 순위까지 적혀있다.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 핸드폰의 화면을 뒤집어 책상 위에 올린다. 

업무가 많아 야근을 해야 될 것 같다. 어느새 모두가 퇴근해버린 사무실에는 나 혼자 만이 남겨져있다. 공간의 고요함이 나를 감싸 안는다. 편안함에 빠져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혼자인 게 좋은 것 같아' 정신없이 업무를 끝내자 밤 열두 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가 보인다. 금요일 밤이 끝나기 전 퇴근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지만 결국 회사에서 토요일을 맞이하고 말았다. 더 이상의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다. 컴퓨터를 종료하고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나왔다. 넓은 차선을 두고 이따금 지나가는 차량들이 밤이 깊어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텅 빈 도로 덕분에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도착했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자 피곤함에 찌들어 있던 얼굴에 생기가 도는 것 같다. 수건으로 몸을 닦아내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소파에 앉았다. 이대로 잠들기에는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든다. 보고 싶었던 영화들을 볼까 했지만 그마저도 그렇게 끌리지는 않는다. 창문을 열자 시원한 공기가 집안으로 들어온다. 바깥은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혼자일 때 비로소 내가 된 기분을 만끽한다. 이내 다시 소파에 앉아 텅 빈 벽면을 바라봤다. 새벽녘 깨어있는 시간은 여느 다른 시간들과는 다른 기분을 선사한다. 평소라면 생각하지 못했을 생각의 틈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의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무엇을 이루어내기 위해 서로의 시간과 물질적인 재화들을 투자하는 걸까. 그럼으로써 진정 얻게 되는 건 무엇일까. 지금의 나로서는 어떠한 답이라도 내릴 수가 없다. 어쩌면 처음부터 질문이 잘못된 것 인지도 모른다. 목적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무엇을 얻어낸다는 조건 자체는 성립되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단순하면 좋으련만 어렵기만 할 뿐이다. 

몇 년 전 내게 이별을 고하던 여자 친구의 말들이 내 머릿속 깊숙이 파고들어 자리 잡고 있다. "미안해 우리가 이전만큼 서로를 사랑할 수는 없다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오랫동안 연애를 하다 보면 서로에 대한 설렘이 줄어들기 마련이지만 더 이상 사랑을 할 수없다고 단정 짓는 여자 친구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처음만큼 서로를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가 처음 만났을 당시 가져보지 못한 수많은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고.. 그리고 그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하루가 다르게 식어가는 감정들을 애써 모른 척 넘기며 지내왔던 일들의 결말이 이렇게 비참할 줄은 몰랐다. 아무리 애를 쓰고 달래 봐도 내게 마음이 식었다며 이별을 고하는 여자 친구를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한 달간은 제대로 밥도 먹지 못했다. 잠에 들 수도 없어 뜬눈으로 여러 날들을 지새웠다. 

두 달이 지나자 조금은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런 나에게 친구는 전화를 걸어와 "요즘도 많이 힘들어하고 있는 건 아니지?" 웃어넘기고 말았다. "조금은, 괜찮아진 것 같아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렇게 다급해. 무슨 일 있어?"

"네 전 여자 친구 너에게 사랑이 식어서 더 이상 연애를 할 수 없겠다고 이별을 고하더니 뒤에서는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더라"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잘 들었지? 네가 아쉬워할만한 가치도 없으니까 이제는 깔끔하게 잊어버려, 그런데 참 너무하다. 시험 준비하는 동안 네가 옆에서 얼마나 도움을 많이 줬는데.." 그 많고 많은 이별 사연을 접하고도 설마 했던 일들이 나에게 일어날 거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전적으로 상대방을 믿었기 때문이다. 통화를 끊고 화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런 뒤 대형 쓰레기봉투 하나를 꺼내왔다. 미련 때문에 버리지 못했던 것들이 집안 가득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모두 봉투 속으로 집어넣었다. 서랍을 하나하나 빠뜨리지 않고 열어 남아있는 모든 것들을 꺼냈다. 옷장을 열자 우리가 함께 산 옷들이 여럿 보인다. 다른 봉투를 가져와 옷들을 모두 담아냈다. 몇 시간 동안 온 집안을 뒤지자 흡사 도둑이라도 왔다간 것처럼 난장판이 된 모습을 하고 있다. 양손 가득 봉투를 들고 나왔다. 쓰레기봉투를 버리고 반대편에 들려있던 검정 봉지를 뜯어 헌 옷 수거함 속으로 구겨 넣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난장판이 된 것들을 정리했다. 웃음이 나왔다. 즐거워서라기보다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신기하게도 소식을 접하고 모든 것들을 정리하자 언제 이별을 겪었냐는 듯 평소의 삶으로 빠르게 돌아왔다. 그 후로 육 개월이 지났을 무렵. 전 여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뻔하디 뻔한 문자 메시지와 함께 말이다. "잘 지내? 우리가 자주 가던 식당을 지나가다 네 생각이 나서,," 마음속으로 '얼씨구'라는 말을 외침과 동시에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어떤 말로 써 답장을 해줘야 조금이나마 더 기분을 나쁘게 해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일말의 감정조차 남아있지 않던 상대에게 그런 말들조차도 아깝게 느껴졌다. 답장을 하지 않고 차단을 해버렸다.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속 시원하게 한마디 하지 그랬냐며 다들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몇 년 전 일을 떠올리니 괜스레 얼굴에는 웃음이 드러난다. 배에서는 꼬르륵 대는 소리가 들린다. 생각해 보니 이른 저녁을 먹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허기질만하다. 냉동실을 열어 간단하게 먹을거리들을 꺼냈다. 금방 배가 불러오자 곧장 잠에 들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깊어가는 밤이 무색할 만큼 나의 시간들은 이제야 활발이 움직이고 있다. 거실 한편에 놓여 있는 장비들이 보인다. 며칠 방치했다고 그새 먼지가 쌓여있다. 처음 장비를 건네주며 설명을 해줬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아 설명서를 다시 한번 읽어 내려갔다. '그래 이렇게 하는 거였어' 조심스레 장비를 착용했다. 일순간 사방이 밝아지고 시야에는 가상현실 접속을 가리키는 화면이 띄워진 뒤 첫 접속 시 주의사항과 안내사항을 알리는 음성메시지가 들린다. 선택유형은 다양했다. 


1. 일반적인

2. 운동

3. 문학

4. 이색적인

5. 자연 


.

.

.


큰 카테고리를 선택하면 그에 맞춰 세분화된 데이트로 다시 한번 작은 카테고리가 등장한다. 

다른 유형은 평소에도 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색적인 데이트 코스를 선택했다. 그러자 소 카테고리 내에서 다시 선택란이 화면이 띄워진다. 그중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선택하자 안내 문구에서는 '이대로 진행을 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나온다. '예'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접속을 시작하겠다는 문구와 함께 사방이 어두워진다. 

잠시 후 밝아진 화면 내에서는 곧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내비게이션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정해진 장소에 주차를 하고 내리자 먼발치에서 내게 인사를 하며 다가오는 상대방을 마주한다. 이 정도일 줄을 몰랐다. 어디까지나 가상현실의 일부분 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을 무참히 깨버리고 말았다. 상대방과 손이 닿을 만큼 가까워지자 머리 위로 정보를 알려주는 내용이 나타났다. 

'이름' , '나이'.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상대방은 나에게 "저는 연애를 하게 된다면 남자 친구와 이색적인 것들을 많이 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가볍게 맞장구를 쳤다. "이색적인 것들 좋죠. 저 역시 평소에는 접해보지 않은 것들을 하는 걸 좋아해요" 이야기는 끊기지 않고 잘 이어져 나갔다.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착륙장에 도착해 준비되어있는 교육영상을 시청한다. 우리는 기본적인 비행 코스를 체험하기로 했다. 어디까지나 가상이기 때문에 실제로 진행을 하는 것보다는 덜하겠지만 어떤 상황을 미리 체험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숙련된 강사의 안내에 따라 비행 준비를 했다. 각각 배정된 강사분들과 비행 시작 준비를 하고 비행이 끝난 뒤 만나자는 인사를 했다. 발이 지면에서 떨어져 허공을 떠다니자 마치 나의 몸에 수백 개의 풍선을 매달려 있는 기분이 느껴짐과 동시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차오른다. 가상현실이 아닌 실제로 먼저 접해보았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면서 말이다. 무사히 체험을 끝내고 다시 만났다. "어땠어요 괜찮아요?" 상대방은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네 정말 재미있어요. 평소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렇게 나와 이색적인 것들을 즐기곤 해요. 남자 친구가 생긴다면 매주 함께 다니며 이렇게 많은 것들을 하고 싶어요" 상대방을 말을 듣는 순간 나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표정관리가 되지 않자 상대방은 나에게 무슨 일이냐며 묻는다. 그 말에 나는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기회만 된다면 매주 이렇게 다니고 싶다니, 물론 즐거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주 가끔, 한 번씩 즐기는 일에 만족할 뿐인데 당황스럽기만 하다. 일시정지를 풀고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 아, 그래요? 즐겁긴 하겠지만 자주 와서 이렇게 하기에는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부담이 되지 않을까요?" 나를 빤히 쳐다본다. "당연하죠 바람이 그럴 뿐이지 그렇게는 할 수 없겠죠" 마음속으로 '다행이다. 그래, 말이 그런 것뿐이었어'라는 혼잣말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다니지는 못하더라도 저는 주말 내내 붙어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요" 멋쩍은 듯 말했다. "혼자이지 않기 위해 연애를 한다지만 적어도 혼자 있는 시간도 즐길 줄 알아야 함께일 때 더욱 건강한 연애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얼굴에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가득하다. "글쎄요. 저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네요" 

"왜요? 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거죠?" 나의 질문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차근차근 말하며 나를 설득시키려고 하고 있다. 몇십 분을 그 상태로 상대방을 바라보다 이내 '종료'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초기화면이 띄어진 상태로 '추가적으로 진행을 하시겠습니까?' 문구가 보인다. '아니오'를 선택하고 장비를 벗었다. 설명대로 실제의 시간은 아주 조금이 흘러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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