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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Oct 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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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듣다 보니 긴 시간이 흘러 있다. "민지 씨 이제 그만 일어날까요? 생각해보니 우리 공원을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만 했네요" 민지 씨는 멋쩍은 미소를 드러낸다. "그러게요. 제 이야기만 하느라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죄송해요" 나는 아니라며 손짓을 더하며 말했다. "빈말이 아니고 정말 좋았어요. 기회가 되면 저도 그 마을에 가보고 싶네요. 왠지 모르게 지금 상상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가 펼쳐질 것 같아요" "그럼요. 제가 말씀드렸던 그 이상으로 좋은 마을이에요." 조용한 듯하다가 이내 어디선가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뒤섞여 난다. 그것은 이 순간이 행복함에 머무르고 있음을 드러내는 웃음이다. 

공원을 걷는 사이 이 순간이 실제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만큼 너무나도 생생하고 또 그러길 바라는 나의 마음이 간절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첫 만남 때 하지 못했던 서로의 이야기들을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나와 잘 맞았으며 더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가만히 서 몇 발자국 앞서가는 민지 씨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연애 정보회사에서 내게 알려준 말들이 떠올랐다. 


"손쉽게 여러 상대와 다양한 데이트를 통해 스스로와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저희 회사의 주된 목적이지만 가장 좋은 것은 단 한 번에 매칭 된 상대와 실제 만남으로 성사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첫 만남부터 성급히 결정하시길 권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다만 궁금한 게 있다면 입력된 데이터 값에 의해 랜덤으로 상대를 만날 수 있다면 상대방도 본인이 누군가와 데이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만약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 실제로 만나길 원한다면 가상현실 속 누군가에게 실제로 만날 수 있겠냐는 의사를 전달해야 합니다. 물론 걱정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상대방이 그에 따른 답변이나 행동을 취하지는 않습니다. 말 그대로 실행 값을 입력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프로그램은 회원님이 상대방이 만날 의사를 드러냈음을 인지하고 첫 만남부터 마지막 순간까지의 영상을 상대방에게 전달합니다. 그 후 상대방이 회원님과의 순간을 확인한 뒤 마찬가지로 만나길 희망한다면 프로그램은 실제의 연락처를 서로에게 보내드리며 곧바로 저장되어 있던 영상은 삭제가 되니 그 점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렇군요. 그럼 한 가지만 더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른 누군가 역시 가상현실 속에서 저를 만나는 건가요?" 

"데이터 입력 시점으로 일주일간은 다른 상대방들이 회원님과 매칭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회원에게 적용되는 사항입니다. 일주일간은 온전히 원하는 이성을 찾는 일에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잠시 생각을 하는 동안 어디선가 나타난 강아지는 민지 씨의 곁으로 다가가 냄새를 맡더니 맘에 드는지 주변을 서성거린다. 덩치가 작은 강아지이다. 주인은 조심스레 목줄을 당기며 죄송하다는 말을 했지만 전혀 아니라며 손짓을 더한다."강아지를 만져봐도 될까요?" 괜찮다는 말을 듣자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요?"

여전히 몇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강아지의 이름을 부르며 쓰다듬는다. "반가워. 너 정말 기운이 좋구나" 몇십 초간 대화를 하더니 이내 멀어져 가던 강아지를 바라보며 잘 가라는 손짓을 더한다. 

나는 민지 씨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동물을 좋아하시나 봐요?" "네 정말 좋아해요. 어릴 적부터 강아지와 고양이랑 함께 자라서 그런지 주변에 닮은 모습을 한 친구들을 보면 더 정이 가더라고요. 뭐랄까, 또 제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얼마 전 고양이를 떠나보냈어요. 강아지는 작년에, 바보같이 떠올리면 눈물이 나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민지 씨의 눈시울이 붉어져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음 말을 이어가도록 기다렸다. "제겐 정말 가족 같은 친구들이었거든요. 오래오래 함께 살 줄 알았는데 차례대로 보내고 나니 못해준 것만 기억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집에 있을 때마다 기분이 이상해지더라고요. 내 집이 아닌 것 같고 남의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처럼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가방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슬며시 건넸다. "고마워요. 저 너무 바보 같죠? 웃다가 울다가 친구들이 이야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거든요. 분명 울게 뻔하다고 그런데 어쩌겠어요. 닮은 모습만 봐도 이렇게 생생히 떠오르는데"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고민을 하다 멈추고 말았다. 이런 상황 앞에서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어떤 행동이나 말로 써가 아닌 보이지 않는 너머의 마음 같은 것들로. 

"고맙단 말을 여러 번 하게 되네요. 덕분에 이제 괜찮아졌어요." 공원을 한 바퀴 돌아 입구에 다다랐다. 일상적인 데이트를 선택하고 민지 씨를 만났다. 지금 펼쳐지는 모습들이 '일상'이라는 가상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모습들이지만 어쩌면 현실 속에서는 일상적인 일들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대단하고 멋진 일들을 만들어가는 것보다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지켜 내는 일이 더 힘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나눈 대화, 머무르는 장소 모든 것들이 작지만 소중하게 느껴진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는 모습 앞에서 아무렇지 않을 거라 자부하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런 일들이 싫다가도 누군가를 알아가는 설렘이 기분이 좋기도 하다. 마음이라는 것은 알면 알수록 복잡할 뿐이다. 막상 실제로 만난다 해도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과 다른 감정을 느끼지는 않을까. 어쩌면 이런 생각들은 쓸데없는 생각에 불과할지도. 

우리가 만나기까지 필요한 것은 나의 결심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민지 씨가 나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서로의 순간에 머물러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 채로 끝이 나고 말 것이다.


"만약 상대방에게 의사를 전달하였음에도 만나기를 거절한다면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은 만나는 동안 저장된 데이터를 삭제하기 시작합니다. 그 즉시 가상현실을 종료한다고 해도 남겨진 기억들 또한 점차적으로 지워지게 되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기에 앞서서는 신중함을 더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렇지만 망설임으로 인해 인연을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더 궁금한 사항 있으신가요? 설명은 빠짐없이 모두 알려드린 것 같습니다."


공원에서 나와 주차된 차에 올라탔다. 민지 씨는 가까운 지하철에 내려주면 된다고 말한다. "제가 대려다 드릴게요."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차창 너머로 비추는 가로등 불빛에 의해 차 안은 밝아지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한다. "아까 공원에서 제 이야기 들으시더니 고양이를 되게 좋아한다고 하셨죠? 아까는 바보같이 눈물을 흘리느라 말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제 가족이 되어버린 친구들을 떠나보내고 다짐을 했었어요. 다시는 이런 슬플 일 들은 겪고 싶지 않다고, 용기가 나지 않더라고요. 똑같은 슬픔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지만 사는 일은 정말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났어요. 길거리에서 다친 채 쓰러져 있더라고요. 한눈에 보더라도 누군가 해를 입힌 것 같아 보이더라고요. 무시한 채 지나갈 수가 없어서 치료만 받게 해주자. 치료가 끝나 자 애정을 쏟아줄 수 있는 주인을 만나게 해 주자. 그러다 어는 순간에는 이미 제 가족이 되어 있더라고요." 힐끔 민지 씨를 바라보다 이내 시선은 다시 정면으로 향해갔다. 

"결국 오늘은 제 이야기만 하다가 끝이난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민지 씨는 나지막이 말을 꺼낸다.  그 순간 화물트럭이 큰소리를 내고 지나가는 바람에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네? 방금 트럭이 지나가는 바람에 듣지 못했어요. 다시 한번 말해줄래요?" 민지 씨는 천천히 다시 한번 말을 이어나간다. "그래서 말인데요. 우리 내일 또 만나요. 내일은 제 이야기 말고 용재 씨 이야기를 해요."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운 감정이 밀려든다. 이것은 그녀의 진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동시에 그저 입력된 값이 산출해낸 하나의 행동일 뿐이라며 혼란스러운 감정을 잠재웠다. "좋아요. 내일은 주말이니까. 근교로 나가는 거 어때요?" 민지 씨는 좋다고 말하며 "내일은 제 차로 움직여요." 차에서 내리며 "그럼 내일 약속한 시간에 집 앞으로 갈게요. 내일 봐요" 내게 인사를 하고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아주 잠시 동안 모습을 보이다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간다. 시간을 앞당겨 당장 내일 약속 시간으로 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내게는 지금의 감정을 풀어낼 시간이 필요하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민지 씨에게 연락을 했다. "잘 들어갔어요? 전 방금 집 도착했어요" 삼십 분이 지나고 답장이 온다. "네 저도 잘 들어왔어요. 피곤하실 텐데 푹 쉬고 내일 만나요." 간단한 인사를 하고 대화는 끝이 난다. 

샤워를  하고 소파에 앉아 생각을 했다. 우리가 실제로 만난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저 가장 현실이 만들어낸 일들에 불과하다 느끼던 것들을 실제로 마주한다면 나는 온전히 상대방의 진심만을 바라볼 수 있을까. 

이불속 깊숙이 고개를 파묻고 눈을 감는다. 서서히 눈이 감기고 가상현실 속의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꿈을 꾸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상현실 속에서 꿈을 꾸고 있다. 민지 씨는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반가운 마음을 더해 나 역시 민지 씨를 향해 나아간다. 우리의 거리가 한 팔만큼 가까워지자 민지 씨는 내게 말을 건넨다. "오래 기다렸죠?  미안해요. 차가 많이 막혀서요. 그럼 우리 갈까요?" 익숙한 듯 나를 앞질러 나아가는 민지 씨의 뒷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봤다. 민지 씨는 몇 발자국 앞서 가다 뒤돌아 나를 보더니 웃으며 말한다. "가만히 서서 뭐 하고 있어요. 늦겠어요 우리 빨리 가요." 잠시 동안 가만히 서있던 것은 우리가 향해가야 할 곳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야 하길래 늦겠다는 말을 더해내고 있을까. 

민지 씨에게 실제로 만나고 싶다는 의사는 전달된 상태인 걸까.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하나씩 물어보기로 했다. 꿈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민지 씨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민지 씨는 나의 말을 듣더니 "요즘 일하느라 많이 피곤하다고 하더니 본인이 말하고 잊어버리면 어떡해요. 보고 싶었던 연극이 있다면서 함께 보러 가자고 했잖아요 곧 있으면 시작하겠어요 어서요 빨리 가자니까요" 엉겁결에 내민 손을 잡았다. 두 손이 완전히 포개지자 이내 힘이 더해진다. 아무렇지 않게 손을 잡는 일이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마음속 한편에서는 편안해지는 기분을 맛본다. 민지 씨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이리저리로 흩날린다. 지금은 두 번째 질문을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동을 하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하나의 생각이 무거워져 가고 있다. 

당신이 입력해놓은 정보들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당신의 진짜 모습을 바라보며 느껴보고 싶다고. 예상되는 일들을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당신과 함께 겪어보고 싶다고. 꿈 속이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솔직해져 간다. 그 어떤 의심이나 걱정은 존재하지 않은 채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연극이다. 

처음엔 누구나 부정을 더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까지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과 오늘도 당연히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연하다고 느끼던 일들이 깨지는 순간 삶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려간다. 연극을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란 참 단순하고 복잡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고. 매 순간 소중한 것들을 쥐고 있었음에도 쥐어지고 있던 것들이 풀어지는 순간에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쥘 수 없었다면 그럼 이토록 절망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쥐어보지 않았더라면 절망을 더하는 일도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 그렇기에 단순하면서도 복잡할 뿐이다. 

민지 씨는 연극을 집중해서 보더니 끝에 가서는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가방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슬며시 민지 씨의 무릎 위에 올렸다. 민지 씨는 손수건을 보더니 나를 한번 쳐다보고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낸다. 

그리고 시선은 다시 정면으로 향해간다. 

연극을 보는 동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연극에 몰입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 둘 다 무언가를 보는 동안은 대화를 하기보다 집중을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니까, 이런 모습들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일들 앞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겹쳐 나아간다. 서로를 위해 무언가를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될 뿐이다. 

가상현실이기 때문에 마주할 수 있는 일들일까. 아니면 우리가 잘 맞는 걸까. 답은 나도 잘 모르겠다. 

막이 내리고 배우들이 무대 위에 올라 인사를 한다. 관객들의 호응에 나와 민지 씨 역시 박수로 답을 보냈다. 앞에서 사진 찍는 시간을 갖자 사람들은 줄지어 서 앞으로 나아간다. 나와 민지 씨는 그 모습을 보고 눈짓을 주고받으며 곧장 밖으로 나갔다. 바깥은 이미 밤이 되었고 우리는 헤어질 준비를 해야 했다.

아까 하지 못했던 두 번째 질문을 건넸다.

"민지 씨 우리 실제로 만나보지 않을래요?" 나의 말을 듣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 잠에서 깨고 말았다.

웃음에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꿈이라기보다는 내가 겪은 경험이 꿈이라는 이름 아래 나타난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참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귀찮음이기도 하며 풀리지 않는 의구심이기도 하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거실로 나가자 창문을 넘어 들어온 햇빛이 거실을 비춰내고 있다. 약속시간은 오후 한 시이고 지금 시간은 오전 아홉 시이다. 앞으로 네 시간이 남았다. 

핸드폰을 들어 민지 씨에게 연락을 했다. "민지 씨 잘 잤어요? 오늘 날씨가 정말 좋아요" 십 분이 지나고 답장이 온다. " 네 저도 조금 전에 일어나서 바깥 날씨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네요" 민지 씨의 답장을 보고 다시 한번 창문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자 정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날씨에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모두 좋은 결과를 낼 것만 같다. 오늘은 민지 씨를 만나 마음속에 품어두던 이야기를 꺼내볼 생각이다. 아니라는 쪽으로 한없이 기울어져 있던 추는 어느새 맞다는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져 있다. 어디까지나 나의 바람이자 기대라는 전제하에 만약 민지 씨를 실제로 만난다고 해도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들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누구나 알지 않는가, 결국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실망감을 더할지는 모르나,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평생을 아쉬움 속에 살아간다는 것을. 그런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실망을 하더라도 직접 마주하고 싶을 뿐이다. 이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실제로 만남이 성사된다는 가정하에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준비를 끝 마치고 마지막으로 옷을 고르는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내고 있다. 분명 어젯밤 머릿속에서 그려둔 것들이 존재했지만 막상 마주하고 보니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유롭게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촉박해져 간다. 삼십 분 전 민지 씨는 출발 준비를 하겠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그 말을 보고 난 직후에는 더욱더 정신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몇 번, 아니 몇십 번을 거울 앞에서 고민을 했다. 그러다 결국 입는 옷은 어젯밤 생각했던 대로이다. 허탈한 마음에 웃고 있을 때 민지 씨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 네 도착했어요?" "아니요 아직이에요. 아마도 십분 뒤쯤에는 도착할 것 같아요." 알겠다는 답장을 보내고 시간을 맞춰 집을 나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밑으로 내려가는 동안 하나씩 줄어들어가는 숫자가 마치 맞추어둔 타이머가 울릴 준비를 하는 것 같다. 그만큼 긴장이 된다는 의미이다. 아파트를 벗아 나자 민지 씨의 차가 보인다. 이내 창문이 열리고 작은 틈 사이로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에 바보 같은 웃음을 더해내고 말았다. 차에 올라타자 민지 씨는 "딱 맞춰 내려왔네요. 저도 방금 도착했는데" 현관문 앞에서 서성였다고 말해볼까. 먼저 나가 기다릴 수도 그렇다고 늦게 내려갈 수도 없었다고.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마음을 비춰내는 것만 같아서. 바보 같은 생각을 드러내진 않았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그나저나 오늘 날씨가 정말 좋아서 기분이 좋아요" 차 안에서는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온다. 남녀 혼성으로 이루어진 그룹이다. 일절은 여자가 이 절은 남자가 마지막엔 함께 부르며 끝이 난다. 사십 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하면 큰 숲이 나타난다. 동네 공원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의 나무들이 빽빽이 자리 잡고 있는 그런 곳이다. 

자연스레 차 안을 둘러보다 뒷좌석에서 무언가에 무언가에 감싸진 쇼핑백을 발견했다. 물어볼까 하다가 묻기를 멈췄다. 그런데 민지 씨는 내가 본 것을 눈치챈 것인지 자연스레 이야기를 한다. "아 별건 아니고요. 그냥 간단하게 도시락을 준비했어요. 다시 한번 말하자면 정말 별건 아니에요. 그런데 아까 차에 타실 때 보니까 마찬가지로 무언가 담긴 쇼핑백을 가지고 타시던데 뭔지 물어봐도 돼요?" 민지 씨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웃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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